공지사항
2008. 한일 생명평화역사기행을 마치고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09-22 23:50
조회
2682
언제나처럼 새로운 만남은 설레임과 더불어 두려움이다. 불혹의 나이라는데 소녀의 설레임으로 밤잠을 설치고 생명평화역사 기행의 길동무 54명을 맞으러갔다. 2007년에 함께 한 길동무들은 13살 어린소녀들부터 60세의 어르신들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나의 나이가 어색하지 않았는데, 올 기행에서는 모두가 청년들이다. 나는 마음만 그들과 같다.
부산행 버스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 기행에 대한 기대감을 이야기하고, 노래도 부르고, ‘우리학교’라는 다큐멘터리도 보았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좀 무겁다. 2007년도와 굳이 비교하지 않으려 하는데도 자꾸 비교가 된다. 주로 20대-30대 초 길동무들이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나의 주책도 먹히지 않는다. 기도만 할뿐…….
시모노세키행 배에서 부산에서 합류한 사람들과의 나눔을 하고, 고쿠라교회에서의 교류회 준비도 하고, 그런데 몸이 좌우로 흔들린다. 아니 배가 흔들린다. 파도가 좀 성이 났나보다. 다른 길동무들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화장실이 분주하고……. 80 여 년 전 우리가 탄 이배보다 더 열악한 배를 타고 이런 풍랑을 맞으며 이 뱃길을 떠났던 선조들을 생각하기에는 지금의 내 몸 상태가 이성적이지 못하다. 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일본 기타큐슈에서 처음 만났던 주문홍 목사님이 이번에도 제일 먼저 반겨주신다. 작년에 한참 공사 중이던 교회당이 다 지어졌다. 소박하니 아름다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일본말과 한국말을 번갈아 가며 드린 예배가 비몽사몽간에 끝나고(배 멀미 후유증이라 고집하고 싶다), 교회에서 준비해 주신 맛난 카레밥을 먹었다. 참으로 맛났다. 54명이라는 대식구를 위해 귀한 수고를 해주신 고쿠라교회에 너무 감사드린다. 목사님 말씀 중 ‘기타큐슈의 교회들의 교인 수는 주로 20-30여명이며, 그 교인으로도 지역에서 많은 사회선교활동을 하면서 충분히 교회가 지속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작은 교인수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교회를 나설 때 드는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다음번에는 꼭 극복하길 소망하며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신 고쿠라교회 교인 분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주문홍목사님, 가와모토 요시야키 목사님, 김정자 장로님께서 이번에도 우리를 위해 또 땀을 흘리시며 귀한 말씀을 전해주셨다. 영생원과 오다야마묘지- 우리 선조들이 강제징집으로 끌려와 죽도록 고생하시다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 남기고 돌아가신 분들의 넋이 묻힌 곳. 작년에는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는데……. 묻혀있는 분들의 위해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묵직하다. 우리들의 기행이 재일동포의 사람다운 삶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분께 폐가 되지 않기를, 응원의 힘이 되기를, 길동무들 가슴에 그분들을 고이 담아가기를 기도한다.
원폭이 떨어졌던 나가사키 원폭투하지에서 평화를 갈구해본다. 이곳에서 물을 보면, 온몸이 타들어가 지독한 목마름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영혼들이 내 발목을 붙잡는 것 같아 움찔거려진다. 원폭으로 죽어간 사람들 속에는 일본인만이 아니라 그곳에 강제징집 되어왔던 우리 선조들도 누워계신다. 그분들에게 조국의 품을 전해드리고 싶어 종이학을 접어(길동무들의 평화의 기도와 함께) 한반도를 만들어 보여 드렸다. 돌아서면서 그분들이 갈망한 조국의 물과 흙을 가져다 드렸다면... 생각해 보았다.
큰 악을 응징하기위해 쓰는 폭력이 결국 그 악을 행한 사람보다 선한 민초들의 더 많은 희생으로 다가온다는 역사현실을 접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곳에 오면 악을 선으로 막을 방법을 구하게 된다. 평화로 가는 길은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는 길인 것 같다.
배 멀미와 기행의 강행군으로 비몽사몽 찡그린 얼굴을 하던 길동무들의 조금씩 살아난다. 소또매의 경치(350년 전 이곳에 숨어 들어온 기독인들에게도 이렇게 아름답게 비쳤을까?) 와 친환경 점심을 먹고는 더 살아났다. 펄펄 뛰고 왁자지껄 웃는다. 가장 슬픈 곳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을 접한 우리는 생기를 되찾았다.
동지사대학에서 윤동주시인의 일제하 기독교인으로서 고뇌를 담은 ‘십자가’ 노래를 들으며 그분의 마음을 읽는다. ‘괴로웠던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리라.’ 참 신앙인 기독인으로써 조국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고 당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구하였건만, 오늘 한반도의 우리 기독인은 어떠한가? .…….
공생공빈= 함께 살기 위해 함께 가난해 진다. ‘더불어 함께 살기위해서는 나의 욕심을 버려야만 한다’는 진리 앞에서 나는 또 부끄러워진다. 옳음을 위해 부를 버리고, 긴 시간 꺾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고 꿈을 키워가는 스치다 다카시 교수님의 삶이 아름답다. 우리는 자꾸 큰 것을 찾는데 이분들은 그렇지 않다. 커지면서 오는 부작용을 생각해서인지 작지만 알찬 것을 일궈 가신다. 나눔을 아는 일본인들을 만나면 그 곧음과 선함에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스르르 무너진다. 일본과 일본인, 소수의 이기주의자들과 다수의 일본인은 구별해야지…….
재일동포를 만나면 이상하다. 막연히 같은 형제자매라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도 그들을 부를 때는 일본사람이라고 한다. 재일동포는 우리를 한 형제라고 다가오는데 우리는 그들을 낯설게 대한다. 재일동포들은 우리말과 문화를 너무도 소중히 여기는데 우리는 남의 말과 문화를 쫓는다. 재일동포와 교류회에서 재일동포들이 보여준 사물놀이에 우리는 난생 처음 부른 민요를 답했다. 굳이 내 것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알고 소중히 하여야겠다. 그래야 남의 땅에서 고국을 그리며 사는 내 형제 자매가 뿌듯할 것 같다.
우토로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경상도가 고향이라신다. 우리 길동무들 또 울컥해 한다. 할머니 우지마라 하신다. 역사는 한번 쓰여지면 지우기가 어렵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바른 역사, 억울하게 고통 받는 사람이 없는 역사를 쓰기위해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머니께 드릴 눈물이다.
KCC에서 김성원 장로님과 5명의 기독청년들을 만났다. 우리가 준비해 간 기도회를 하고, 애찬식을 하였다. 예수의 보혈로, 우리 선조들의 고난의 역사로, 함께 사는 세상을 일구어 가는 분들의 땀으로, 우리 길동무들이 거듭남을 다짐하는 시간을 갖았다. 길동무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는 시간이었다. 서로를 보듬어 주며 생명 평화의 역사를 꿈꿔보았다. 그날 우리가 눈물로 나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새 삶을 다짐하였던 그 마음 그대로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타가와현 석탄박물관에서 석탄을 캐던 모습을 보았다. 2인1조, 지어미와 지아비, 아비와 자식, 어미와 자식이 짝이 되어 석탄을 캔다. 찌는 듯 한 더위에 남녀모두 아랫도리만 가린채, 조금만 갱 속을 기어 다닌다, 개처럼. 지금의 우리가 저 위치라면 아마도 생명을 포기 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서로 지켜줄 사람과 돌아갈 고향을 그리며 버티셨겠지……. 안내를 해주신 이누가이 목사님은 일본인으로 이러한 한일의 역사에 반성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신다. 함께, 그렇다 함께!
돌아오는 배안에서, 차안에서 서로 마지막 나눔을 한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도 중요하다. 길동무 모두가 좋은 언니, 동생, 친구를 만나서 너무 행복하단다. 보고 배운 것은 혼란스러워 정리가 잘 되지 않지만 제자리로 돌아가 곱씹어본단다. 제발이지 스스로 잊어버리지만 않기를 바란단다. 기행을 통해 길동무들이 보고, 듣고, 느꼈던 것과 같이 풍요와 이기와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평화에 생명을 소중이하는 너와 나,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기행지 하나하나에서 몰랐던 한일간의 역사와 잘못 알고 있었던 재일동포의 역사와 현재, 일본에 대한 선입관과 악감정을 조금은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람들이 독특함에도 서로 함께 호흡하면서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우리 역사에 대한 일본에 대한 새로운 앎과 도전을 길동무들 가슴에 남긴 것 같다.
9월 20일, 기행 참가자들이 기행을 마치고 한 달 만에 다시 만나는 날이다. 서로의 삶의 자리에서 기행에서 보고 배운 것이 어떻게 녹아들고 있는지 나누는 자리다. 기행으로 좀 더 성장 했을 것이라 믿어본다.
마지막으로 기행 내 너무나 좋은 날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기적이 이런 걸까요. 차를 타고 지나갈 때 마구 내리던 비가 우리가 차에서 내리면 뚝 그쳐 작력하던 태양빛을 피하게 해주던 것. 평화공원에서 가랑비가 굵은 빗방울로 변하다 우리의 기도가 끝나자 뚝 그쳐버린 것, 기행 내내 적당한 바람과 구름으로 더위와의 전쟁은 수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