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공든탑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08-08 22:54
조회
3048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말이 있지만, 요사이 남북문제를 보고 있노라면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 30년간 한국교회는 남북 간에 화해와 통일을 위한 탑 쌓는데 공들여 왔다.
당시 한국 교회는 우리 민족의 모든 모순을 해결하는 길은 오직 민족화해와 통일에 있다고 확신을 하였다.
그런 확신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공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1978년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기는 박정권의 말기로서, 다 아는 바이지만 통일문제는 입 밖에도 낼 수 없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때 한국교회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이 일에 몸을 바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우선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의 기독교인들과 함께 <한·일교회협의회>를 통하여 ‘한반도 통일’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또한 같은 분단국가인 독일의 기독교인들과 <한·독교회협의회>에서 양국의 통일문제를 논의하고 한국교회 내에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정식기구를 두기로 한 것은 1981년이었다.
그 결의에 따라 NCC 내에 <통일문제연구원>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계속된 당국의 단속과 방해로 말미암아 국내에서는 모임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 <세계교회협의회>(WCC)가 1984년 일본 도잔소에서 ‘동북아 평화와 정의 협의회를 개최하고 세계교회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공동 노력해 줄 것을 제안하였다. 이와 같은 세계교회의 격려에 힘입어 한국교회는 1985년에야 겨우 당국의 물셀 틈 없는 저지를 뚫고 <통일문제연구원> 운영위원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위스의 글리온에서 민족의 분단 이래 남북의 기독교인들이 함께 만나, 예배와 성찬식을 거행하는 감격을 누렸으니, 그것이 역사적인 <제1차 글리온 회의>였다.
그런 후 한국교회는 스스로는 갈 수 없는 북측에, 미국, 일본 유럽의 기독교인들을 방문케 하고 한국교회의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였다.
그러다 마침내는 한국의 기독교 대표가 공식적으로 북을 방문하고 북쪽 기독교와 당국의 지도자들을 만나고, 북의 교회와 ‘남북 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을 지키자고 합의하고 돌아 온 것은 1992년이었다. 모르면 몰라도, 민간인, 당국자를 망라하여 분단이후 남측 인사가 북측을 공식 방문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실로 한국교회가 평화·통일의 탑을 쌓기 시작한지 14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남북 당국자들도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와 접촉을 시도하고 신뢰를 쌓아 갔고, 마침내는 남측 최고지도자가 북을 방문하는 통일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기에 이른 것이다.
그와 함께 남북은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들을 통해 “평화공존과 평화번영‘을 공동의 목표로 삼아 민족 통일의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 것이 엊그제 일이었다. 그 동안 핵문제 등 걸림돌도 있었지만, 양측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주체로 우뚝 서서 주변 4강대국의 합의와 협력을 얻어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의 길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북정책을 내세우는 현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또다시 남북 간에는 대화 단절과 상호비방 등으로 그 동안 조심스럽게 다져 온 신뢰관계에 금이 가고 있다.
30년간 정성들여 쌓아 온, 통일로 향한 한국교회의 공든 탑이 무너지고 우리의 억장도 함께 무너지는 현실이다.
엊그제 이 대통령이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된 남북기본 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의 이행을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나기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옛말처럼, 이 메시지의 진정성이 북측에 전달되어 민족통일의 공든 탑이 더욱 더 탄탄하게 쌓아져 가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비는 마음이다.
( 김경남 원장의 글 국민일보 2008.8.2 '지혜의 아침'에 게재)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