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오륙도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07-07 22:53
조회
2913
오륙도


요사이 촛불집회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촛불들은,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향도가 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도 그 100여년의 역사 속에서, 두어 번은 촛불역할을 했던 적이 있었다.
개항과 일제 강점기 초기에 그랬었다. 강탈당해가는 조국을 살리는 일에 기독교가 무엇인가 역할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조선 민중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3·1독립만세사건 민족대표 33인중 과반수인 17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이 그 당시 조선민중들에게 그런 기대를 갖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70-80년대의 암울했던 시절에 또 한 번 기독교가 촛불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군사정권은 국민들의 민주화의 열망을 친북·공산주의로 몰아 효과적으로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 맑스가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기 때문에 종교는 공산주의가 될 수 없다.”는 논법에서, 군사정권은 종교 특히 기독교를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완전히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린 것은 아니었다.
군사정권은 1970년대 초반부터 성직자들의 구속과 탄압을 시작하였고 후반부터는 부단히 산업선교 등 교회 활동을 용공시하고 탄압을 기도하였다.
하지만 국내 기독교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국외 기독교인들의 협력, 연대의 덕택에 기독교의 소리를 완전히 잠재우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는, 그 “어둡고 괴로운 긴 밤”을 밝히는 촛불의 역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기독교를 우산 삼아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저항의 소리와 몸짓은 커져갔다.

1980년 이후, 그 칠흑 같은 밤은 지나가 새벽이 동터 오르자, 민주화라는 태양 밑에서는 기독교라는 촛불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고 보일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가 더 이상 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기를 중단하거나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 중 더러는 어둠의 세력의 동업자라는 의심과 지탄을 받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되었다.
이런 상황을 개탄한 젊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누렸던 과거의 영광은 어디 갔느냐” 하고 물어 왔다.
이에 대해 그 시대를 아파하며 살아왔던 한 인사는 ‘기독교는 오륙도와 같다’고 했다.
다 알다시피 오륙도는 조용필의 국민가요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유명해진 섬으로서, 조수간만에 따라 다섯이 되었다가 여섯이 되었다가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민중들의 민주화의 열망이 커질 때마다 어김없이, 그 열망을 압살하기 위한 군사정권의 탄압조류는 학원 간첩단, 남파간첩단, 자생간첩단, 월북어부 간첩단, 재일교포간첩단, 반미친북세력, 등의 형태로 밀려 왔었다. 그때마다 다른 민주세력들은 숨을 죽여야 했고, 기독교만이 홀로 남아 촛불이 되기를 반복하였다.
“기독교는 졸지도 않고 잠들지도 않고 여기에 그대로 있다. 다만 조류에 따라 주변이 숨었다 나타났다 할 때 마다,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게 되기도 할 따름이다. 언젠가 새로운 탄압의 조류가 밀려와 모든 소리를 침묵시킬 때가 오면 기독교라는 촛불은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오륙도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위와 관련해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는 엄격히 대처하겠다“고 함으로써 공안정국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와 함께 요사이 정국을 보고 있노라면 또다시 낡은 메카시즘식 탄압의 조류가 밀려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조류로 말미암아 100만 촛불들의 그 거대한 섬도 물밑으로 모습을 숨기고 말 것인가. 그리고 기독교는 또다시 홀로 세상의 빛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100만의 촛불들이 보여준, 1987년 민중 항쟁이래 20년 동안 진화되어 온 민주·시민의식을 판단해 본다면, 기독교 오륙도론이 재현될 것 같지는 않다는, 이 대통령 쪽에게나 기독교 쪽에게나 비관적인 전망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008년 7월 5일자 국민일보 <지혜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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