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용서받을 수 있는 일본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05-13 22:53
조회
2921
용서받을 수 있는 일본

지난 5월 9일 <광화문 열린 시민 광장>에서 어느 종교단체가 주최한 ‘일본헌법 9조의 실현’을 위한 조그마한 평화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올 5월 3일 일본평화 헌법의 발효 61주년을 기념하여 일본의 양심인사들이 요청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1970, 80년대 일본의 일부 양심인사들이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고 연대했던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교수, 문인, 언론인 등, 지식인들은 <한일연대회의>를 조직하여, 정치범 후원 등 민주화 운동의 지원에 앞장섰었다. 월간지 <세카이>는 매달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연재기사를 실어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지성들에게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의 실상을 알렸다.
개신교는 <한국 민주화를 위한 일본 기독교인 긴급회의>를 조직하여 민주화 운동의 소식을 일본어로 변역하고 소식지를 만들어 일본 전 지역에 배포하여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대한 후원을 확대하였다.
가톨릭은 양국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상호 연대하여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청년 학생들은 점심을 싸들고 다니며 한국 민주화를 위한 집회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름 없는 가정주부들은 뜨개질을 하여 양말이나, 장갑, 속옷들을 만들어 감옥에 갇힌 한국의 정치범들의 옥바라지를 하였다.
이들이 이렇게 한 것은 과거 자국의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희생당한 우리나라에 대한 죄책의 반성으로 표시였다.
그런 그들이 최근 자국의 평화헌법 개악의 위험성을 앞에 두고 이제는 역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아시아 각국에 협력과 연대를 요청한 것이다.
평화헌법은 그 서문에 일본은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와 세계 민중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각오를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 헌법 9조는 전쟁의 포기, 무력보유 금지, 교전권 부인의 내용을 담고 있어 일본정부가 어떤 상황 하에서도 전쟁수행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았다.
그들은 자기 정부가 1999년 이래 9조를 삭제하는 등 평화헌법을 개악하려는 것은 재무장을 통해 군국주의화에로의 길로 나아가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이런 기도가 자국의 평화는 물론 아시아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 평화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여겨 , 헌법 9조를 포함한 평화헌법을 지키고자 애쓰면서 아시아의 민중들의 연대를 요청한 것이다.
일본의 국수주의적 우익세력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일본의 보수정치가와 언론, 그리고 이들의 왜곡된 선전에 기만당하는 다수 국민들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의 이런 행위는 자국의 국익에 반하는 매국적 행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 이런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나라라면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바대로 우리가 그 나라를 용서하지 못할 까닭이 있을까?

일본의 지배를 경험하고 60년 동안 그 나라에서 살아온 80 고령의 한 재일동포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인식을 묻고 ‘진실’을 밝히는 일은 세기를 걸쳐 지속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일본인 ‘과거를 묻어두고 미래를 설계 한다’라는 역사인식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의 감성으로는 ‘화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역사인식을 공유했을 때만 양국 간에 책임과 비난의 관계가 지양되고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확인했습니다."
과거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재무장을 통하여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자 하는 나라를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과연 국민 화합의 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이 글은 5월 19일자 국민일보 토요컬럼'지혜의 아침'에 실린 김경남 원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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