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WTO의 교착상태와 세계화론자 프로젝트의 위기상황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5-01-20 21:46
조회
1797
WTO의_교착상태와_세계화론자_프로젝트의_위기.hwp

WTO의 교착상태와 세계화론자 프로젝트의 위기상황:
WTO에 관한 최근 현황과 세계적 동향 *

글쓴이: 월덴 벨로 Walden Bello (Focus on the Global South)
옮긴이: 이미화 (기사연)


이 발표문은 2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는 오는 9월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될 제5차 WTO 각료회의에서 다루어질 협상에 관한 최근의 전개상황과 관련된 논평이며, 이의 대부분은 제네바에 주둔한 Focus on the Global South의 대외책임자인 Aileen Kwa로부터 제공된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두 번째는 WTO의 발전적 전개방향과 이와는 다른 양상의 모습을 띤 세계적 정황을 묘사한 것이다.


I. WTO의 최근 전개양상

1. 아마도 최근 제네바에서 전개된 WTO의 진척상황을 최선으로 성격지우라면 현재 WTO의 협상문제는 실질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고 하겠다.

- 이러한 교착상태는 필경 농업협상분야의 분열된 양상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농업협상분야의 스투아트 하빈손(Stuart Harbinson) 의장이 마련한 초안은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고아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미국과 케른 그룹(Cairns Group)은 제안된 관세감축안이 너무 얄팍하다고 본 반면, 유럽과 일본은 너무 두터운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개도국들은 의장의 초안에서 개도국들을 위한 매우 실질적인 관세감축안이 요구된다는 사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또한 의장이 제안한 “전략적 생산품”에 대한 폭넓은 개념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보다 낮은 관세감축안을 적용시키기 위하여 적지 않은 “전략적 생산품목”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서로 협상의 우위를 다투면서 개도국들의 전열을 분열시켰다는 점이다. 브라질, 우루과이, 태국 등 Cairns Group에 속한 국가들은 미국의 편에서 유럽연합과 일본의 입장에 반대하는 형국이다. 한편 유럽연합은 우루과이라운드의 형태보다 더 유동적인 형태의 자유화로 교체될 농업의 자유화를 위한 대안을 바라는 인도와 그밖에 여러 개도국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힘이 실려졌다. 어쨌든 이의 장기적이고도 단기적인 문제는 바로 칸쿤 각료회의 이전에 협상의 양식들에 관한 합의가 전혀 이루어질 기미가 없다는 데에 있다.

- 무역과 관련된 지적소유권(TRIPs)과 공공보건의료 분야에서는 미국의 역할과 관련하여 어떤 유연성도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미국은 3가지 질병인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말라리아, 결핵과 관련된 의약품인 경우에만 특허권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입장을 계속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개도국들이 거부해왔기 때문에, 미국은 현재 공공보건의료의 문제점을 위하여 특허권의 통제 완화방식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보건의료의 위기상황”(public health crises)에 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고 하겠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미국의 협상단들은 개도국 협상단들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만일 협상에서의 어떤 변화를 원한다면 제약회사기업들에게 직접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혼란스러운 문제는 사무총장인 수파차이 박사 자신이 “실제로는 미국에서 브라질과 인도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제조업들은 원칙적으로 특허권의 억제완화로 인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협상의 난항에 대한 이들의 책임을 유포시키고 있는 판국이다.

- 새로운 이슈인 투자자유화, 경쟁정책, 정부조달투명성, 무역원활화에 관하여 유럽연합은 현재 유럽연합 쪽의 변화양상에서 농업의 자유화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들 이슈들에 관한 협상들을 착수하기 위한 결정을 단독으로 처리하고자 노력중이다. 이들은 개도국들에게 이들 이슈들의 자유화는 자신들의 고유한 상품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일부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하여, 전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은 이들 네 가지 분야에 관한 협상들이 단독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개별처리방안”(unbundle)을 제안했다. 유럽연합은 공식적으로 미국의 이러한 제안에 동의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들 네 가지 분야를 함께 처리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입장이다. 유럽연합은 또한 현재 얼마나 많은 모임들이 이루어져야하는가 등의 절차상 양식문제들에 대하여 칸쿤에서 합의하기로 예정되어있는 양식들에 관한 협상들로 국한시킨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독립적 양식에 대한 개도국들의 우려를 회피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이러한 입장은 이들 협상들의 주체들과 일차적인 합의 없이 협상들을 착수하기 위하여, 백지수표를 유도해내려는 시도라며 개도국들로부터 거센 반감을 사고 있다.

- 개도국들의 커다란 두 가지 관심분야에 대한 협상에 있어서는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이는 특별차별대우와 이행(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 and Implementation)에 관한 문제로서, 후자문제는 몇 주 전 방콕회의에서 만났던 유럽연합의 통상최고책임자인 파스칼 라미(Pascal Lamy)가 이행문제와 관련하여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최 우선순위 두세 가지 사안에 대해 합의할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 거리낌 없이 개도국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점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2. 이러한 모든 사항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렇다면 칸쿤 각료회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몇 주 전, 방콕회의에서 우리는 파스칼 라미에게 이러한 물음을 제기했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답변은 이러한 질문을 빗겨가는 것이었으며, 2004년까지 마무리 지을 협상들을 위한 도하 각료회의의 요구사항에 따른 전반적인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몇몇 분야에서 협상의 3분의 2가 통과됐으며, 몇몇 분야에서는 절반 정도가, 그리고 나머지 분야에서는 3분의 1이 통과된 상황이며, 지적재산소유권에서는 98%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때문에, 상황은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단순하게 대답했다.

현 시점에서, 각료들의 역할은 포괄적 타협을 가져오기 위하여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협상들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원 국가들이 현재까지 너무 많은 핵심 분야에 있어서 협상의 양식들조차 합의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WTO는 차기 칸쿤 각료회의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현시점에서 어찌하여 WTO의 핵심관료들이 협상중인 이슈들에 관한 합의사항들을 발표하게 될 차기 공식선언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도하각료회의 이후 진행된 활동상황에 대하여 여러 협상그룹들이 마련한 짧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협상들에 관한 “진행보고서”의 형태로서 “코뮈니케”(communique)를 발표하는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3. 칸쿤 각료회의에서는 최근의 미국과 유럽 사이의 무역관계가 보다 악화된 상황이기 때문에, 도하와 같은 형태의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희망은 더욱 무색해졌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은 WTO의 사법배심원이 WTO의 규칙위반으로 판명한 수출업자들을 위한 세금우대조치에 대하여 2003년 말까지 미국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해왔다.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간주돼왔던 사안으로, 미국은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한 유럽연합의 사실상 전면금지조치(moratorium)에 대항하여 WTO에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기존의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무역마찰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라크침공으로 빚어진 미국과 프랑스, 독일 간의 보다 악화된 대립양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최근의 이러한 움직임은 칸쿤 각료회의 이전에 농업과 그밖에 여러 무역문제들에 있어서 협상의 양식들에 관한 합의적 위치에 도달해야 할 양측으로서는 결코 좋은 징조들이라 할 수 없다. 1999년 시애틀의 3차 WTO 각료회의가 무산되었던 것은 시애틀 회의장소에서 발생한 개도국들의 반란과 길거리의 대규모 대중시위뿐만 아니라, 농업과 환경 및 노동기준에 관한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해결되지 않은 마찰 때문이라는 점을 반드시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통상대표인 로버트 조엘맄(Rovert Zoelick)과 유럽연합의 통상최고책임자인 파스탈 라미는 개인적으로 긴밀한 친구관계이지만, 칸쿤 각료회의에 앞서 워싱턴과 브뤼셀 사이의 이견을 해소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는 현실에 놓여 있지만, 현재 주어진 상황적 여건들은 2001년 11월 도하각료회의 이전보다 더욱 어려운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은 테러주의와의 전쟁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력개입에 관하여 공동의 입장을 취했었으며, 워싱턴은 아직 철강수입에 관한 40%의 보호관세조치를 제기하지 않았었으며, 미국의 농업종사자들을 위한 1,000억 달러의 국가보조금이 이미 통과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엘맄과 라미가 도하 각료회의에서 마침내 이루어냈던 것처럼 미국과 유럽연합의 협정을 이루어내기 위한 수완가로서 발휘할 이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II. WTO 협상에 대한 세계적 상황과 위기국면

WTO의 난항을 이해하기 위한 콘텍스트로는 세계화론자 프로젝트의 위기상황,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의 주요특징으로 나타난 일방주의에 있다고 하겠다.

1. 우선 세계화론자 프로젝트의 특징과 이의 진척상황을 개괄해보면 다음과 같다.

- 세계화는 세계기업의 이윤추구 논리에 의해 범지구적으로 추진된 자본과 생산 그리고 시장의 가속화된 통합을 의미한다.

- 이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통치수단을 동반한 전개과정이며, 민영화와 규제철폐 그리고 무역자유화를 제도화시킴으로써 “시장의 자유화”(liberating the market)를 중점으로 한 체제이다.

- 세계화는 시기적으로 2번의 단계를 거쳤다. 첫 번째는 19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지속됐었으며, 두 번째는 1980년대 초부터 오늘날까지 전개되어지고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세계화가 단절된 시기에는 상당한 정도의 국가적 개입으로 특징지어진 국가자본주의 경제의 지배형태가 두드러졌으며, 무역과 자본의 흐름에 대해서는 상당한 규제의 성격을 띤 국제적 경제시스템을 보여주었다.

2. 세계화의 두 번째 시기는 1995년 WTO의 창립과 함께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이의 성과를 가져온 승리주의는 1996년 싱가포르 WTO 각료회의에서 세계은행, WTO, IMF에 의한 공동선언에서 보여주었는데, 이들 세 기구들은 향후 곧 시행해야 할 과제로서 범지구적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세계 경제 통치체제의 기본 틀이 창출될 수 있도록 WTO, IMF, 세계은행의 정책들이 하나가 되는 “결집력”(coherence)을 가져와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들과 이의 설립을 추진한 나머지 군단들은 강력한 경제국가나 빈약한 경제국가 모두에게 적용될 “규칙에 입각한”(rule-based) 세계무역의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WTO는 자본주의적 세계통치체제의 옥석이라며 축배를 들었다. 조르지 소로스에 따르면, WTO의 중요성은 “미국이 기꺼이 자체의 국가법을 종속시키고자 하는 유일한 국제기구”로서 존재한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3. 하지만 겨우 5년이 지나면서 세계화론자의 프로젝트는 내부의 “강경파”(hard)인 대처-레이건 버전이건 “온건파”(soft)로서 “안전망”(safety nets)을 갖춘 세계화의 모습을 주장하는 블레어-소로스 버전이건 간에, 결과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이러한 위기적 상황을 보여주는 3대 주요 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첫 번째는 1997년도 아시아의 금융위기에서 나타났다. 이는 세계화의 교리 가운데 하나인 자본거래의 자유화가 심각하게 동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는 또한 동아시아의 경제를 붕괴시킨 주요 요인으로서, 인도네시아의 2천2백만 인구와 태국의 1백만 인구가 불과 수개월 만에 빈곤선 이하의 삶으로 추락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자유화된 자본유통의 으뜸가는 세계기구인 IMF의 스탈린그라드(Stalingrad of the IMF)였으며, 세계은행과 더불어 조성됐던 구조적 재조정 프로그램이 경기부양책을 제도화시키면서 가난을 보다 증폭시키고 불평등을 보다 심화시키면서 거의 예외 없이 실패했었다는 점을 보여주었던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평을 불러왔던 것이다.

경제위기와 더불어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결과적으로 세계화론자의 프로젝트에 대한 합법성과 신빙성에 있어서 중대한 위기를 초래했으며, 신자유주의의 주요 두뇌집단이었던 제프레시 사치스(Jeffresy Sachs),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조르지 소로스(George Soros) 등의 이탈현상을 가져왔다.

- 두 번째 위기국면은 1999년 12월 시애틀의 제3차 WTO 각료회의에서 나타났다. 이는 치명적인 폭발력으로 표출되었던 3가지 휘발성 요인의 융합에 기인한 것으로, 시애틀 회의장에서 보여준 개도국들의 거센 반발, 길거리에서 보여준 5만 명의 거대한 항의시위, 그리고 특히 농업분야에서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미해결된 무역마찰이 주된 요인이었다.

- 세 번째 위기국면은 2001년 3월의 주식시장 폭락과 클린턴시대의 벼락경기 종말에서 나타났다. 이는 본질적으로 과잉생산설비의 위기에 대한 징후로서, 대량의 과잉생산능력 자체가 주요 조짐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주가폭락에 앞서, 1997년 이래 미국 기업의 이익은 뚜렷한 성장세를 가져오지 못했었다. 이는 산업분야의 과잉설비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이의 가장 눈에 띠는 징표로는 세계적으로 설비용량의 2.5%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주요 전자통신 분야에서 나타났다. 실물경제의 침체현상은 자본으로 하여금 금융 분야로 전환하도록 주도했었으며, 결과적으로 주식가치의 고공 상승을 가져왔다. 하지만 금융계의 수익성은 실물경제의 이윤율과 너무 큰 편차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가의 폭락은 불가피했으며, 마침내 2001년 3월 발생한 주가폭락사태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최장의 경기침체와 불황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단순히 정상적인 기업들의 주기적인 하강국면으로만 볼 수 없는 형국이다. 이는 경제학자인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가 일컬은 소위 콘드라티에프 파장(Kondratieff Wave)에 입각한 하강국면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콘드라티에프는 새로운 상승국면 이전에 장기간의 경기침체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기술과학의 폭발에 따른 상승국면과 새로운 기술과학의 소진에 따른 하강국면으로 나타나는 50-60년 주기의 “장기파동”(long wave)을 매개로 한 자본주의의 진행과정을 관찰했던 경제학자이다. 현재 우리는 60년대 후기와 70년대에 발생했던 경기의 파도인 물마루 사이의 골에 놓여있는 것이다.

4. 세계화, 신자유주의, 그리고 과잉생산설비의 위기현상은 부시행정부의 경제정책을, 그중에서도 일방주의자적인 공세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정황을 제공해준다고 하겠다. 세계화론자가 추구하는 공동의 프로젝트는 세계경제를 확대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세계적인 자본주의 엘리트층의 공동이익과 이들의 근본적인 상호의존 관계를 표명했다. 하지만 세계화는 국가별 엘리트층 사이의 경쟁관계를 타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지배계층 엘리트들은 미국의 군산복합체에서 보여주듯이 성격상 보다 국수주의적일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한 생존과 번영의 논리에 있어서 보다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는 파벌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 정말로 80년대 이래 확산되고 있는 세계경제체제에 있어서, 세계적 자본주의 계층의 공동 이익을 강조하는 보다 세계화론적인 지배엘리트주의 집단과 미국기업 이윤의 지상권이 보장되기를 원하는 보다 국수주의적인 패권주의자적 파벌 집단 사이의 분명한 대립양상이 존재해왔던 것이다.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가 지적한바와 같이, 빌 클린턴과 그의 재무부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의 정책들은 세계 자본주의 계층의 번영을 근간으로 한 세계경제의 확대 발전에 일차적인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면, 이들은 1990년대 중반에 일본과 독일 경제의 회복을 촉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강력한 달러화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이들은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분야를 위한 시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보다 초기의 국수주의자였던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경제를 위하여 일본과 독일의 경제를 희생시키면서 미국경제를 위한 경쟁력을 만회하기 위하여 약한 달러화정책을 도입했었다. 현재 우리는 조지 부시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약한 달러화정책을 비롯해 이전의 국수주의적 경제정책들로 후퇴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중심 국가들의 경제들을 희생시키면서 미국경제를 소생시키고,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조건들 가운데서도 세계적 자본주의 계층의 이익보다는 미국기업의 엘리트층을 위한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5. 부시행정부는 경제적으로 미국기업 엘리트층의 세계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일방주의적인 국수주의적 정치경제정책을 펼침으로써 클린턴시기의 세계화론자주의적인 정치경제정책을 대체시켰는데, 이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를 보장하려는 공격적인 군사정책과 병행한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접근법으로 나타난 몇 가지 두드러진 다른 양상들을 지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 부시의 정치경제는 미국의 경제적 파워를 반영하지 않는 절차를 보증하는 문제에 있어서, 미국이라는 국가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세계화의 과정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시장유일의 정책을 허용한다는 것은 주요한 미국기업들을 세계화정책의 희생물로 가져올 수 있으며, 이로써 미국경제의 유익을 양보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시장정책이라는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무역과 투자 그리고 정부의 계약과 관련된 처리문제에 있어서 매우 보호주의적인 입장을 띠고 있는 집단을 보게 된다. 이는 마치 부시주의자의 좌우명은 미국을 위해서는 보호주의이며 나머지 우리를 위해서는 자유무역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 이는 필경 다국간상호자유무역주의가 일반적으로 세계적 자본주의 계급의 이익을 촉진시키는 반면, 다방면에 있어서 특정한 미국기업의 이익에는 저촉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까닭으로, 세계경제 통치체제의 방안으로 나타난 다국간상호무역주의 자체를 경계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WTO를 향한 부시 추종자들의 이율배반적 모순이 확산되는 모습은 미국이 WTO에서 적지 않은 통치력을 상실했다는 점과, 미국의 자본을 손상시키게 되며 전반적으로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이익을 담보하게 될 통치체제라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 부시 추종자들에게 있어서 전략적 파워란 궁극적인 힘의 논리를 의미한다. 경제적 파워는 전략적 파워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는 부시통치 아래서 지배엘리트계층의 주요 파벌주의가 바로 냉전에서 승리했던 군수산업체의 권력조직에 있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축과 더불어 세계화론자와 일방주의자 또는 국수주의자 사이의 마찰은 중국에 대한 접근법에서 나타난다. 세계화론자의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중국의 중요성을 하나의 투자 지역 및 미국의 자본을 위한 시장으로 간주하면서 중국과의 교류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반면에 국수주의자들은 중국을 하나의 전략적인 적국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중국의 성장을 지원하기 보다는 이를 견제하려는 입장이다.

6. 따라서 워싱턴의 일방주의자적 경제 전략들의 핵심적 구성요소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오일에 대한 통치권으로,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오일이 부족한 중국에 대해서도 전략적으로 직접적인 통치력을 발휘하려는 움직임

- 무역과 투자 문제에 있어서 공격적인 입장의 보호무역제도

- 중심에 있는 경제국가들 사이의 경쟁자들에게 경제적 위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미국경제를 위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취하고 있는 달러화가치에 대한 공격적인 시장조정 작업

- 미국의 주요산업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다국적 기구들에 대한 공격적인 조정의 처리방식으로, 이러한 모습은 WTO뿐만 아니라 IMF에서도 공공연히 볼 수 있다. 이는 예를 들어 IMF가 개도국들에게 채무자로부터의 보호조치를 취해주면서 개도국들의 채무관계를 재조정할 수 있도록 제안한 채무재조정독립체제(Sovereign Debt Restructuring Mechanism)의 기획안을 최근에 미국 재무부가 무력화시킨 사실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미나 상당히 빈약한 채무관계제도라고밖에 할 수 없는 SDRM까지도 미국은행들의 이윤추구를 쫒는 미국 재무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7. 범지구적 정치경제적 통치제도로서의 다국간상호자유무역주의의 커다란 이점은 바로 여러 동맹국들을 위한 제도에 대한 방어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이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는 대중들 가운데 다소의 합법성과 여론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방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대 확장주의, 또는 미국의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원들 사이의 잘못된 결합적 요소에 있다고 하겠다.

성공적인 제국주의적 통치경영을 위한 주된 근거는 국가적 세계적 경제를 팽창시키는 데에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이 세상에서 오랫동안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이를 위한 방편에는 경제적 정치적 자원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자원 또한 마찬가지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합법성 없이, 소위 그람시(Gramsci)가 일컫는 지배계층의 “합의” 없이, 단순한 제국주의적 경영방식의 통치제도는 견고할 수 없다고 하겠다.

고대 로마제국은 장기적인 통치제도의 안전성 보장이라는 유사한 문제에 봉착하여, 제국의 영토 곳곳에 지배그룹과 노예가 아닌 계층들에게 로마시민권의 확대 방안을 제안했으며, 그 당시로서는 가장 방대한 규모로 집단적인 대중의 충성심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결과 700년이란 세월의 제국통치를 유지시켰던 것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자들은 소위 군사적 지배통치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러한 “도덕적 요소”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8. 과대확장논리는 상대적인 것으로, 이에 대한 커다란 반작용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사실, 과대 확장된 힘은 이에 대한 저항세력이 보다 거대한 규모로 증가될 경우에는 자체의 물리적 파워를 상당한 정도로 증강시킨다 할지라도 보다 악화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과대확장논리에 따른 주요 지표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식민지 통치체제를 위하여 안보의 토대로서 복무하게 될 이라크의 새로운 정치질서 창출에 대한 워싱턴의 무능력

? 카불 외곽지역의 아프가니스탄 내 친미정권을 강화시키는데 있어서 실패한 점

? 중요한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워싱턴의 전폭적 지지를 업고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반란을 진압할 수 없는 무능력 상황

? 중동지역과 동남아시아지역의 아랍계통과 이슬람계의 거센 반감의 확대로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을 위한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확산을 가져온 결과로서, 이는 바로 오사마 빈라덴이 최우선으로 바라던 요건이었다.

? 냉전체제의 대서양연합체제 몰락,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대응체제로서의 새로운 연합의 형태 출현

? 미국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 및 경제적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범지구적 시민사회운동의 확대 발전양상으로, 가장 최근의 범지구적 반전운동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표출이라 할 수 있다.
? 부시행정부가 중동문제로 골몰한 시기에 워싱턴 고유의 뒷마당인 브라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에서 출현한 반신자유주의운동, 반미운동 세력들의 부상.

? 군비지출이 적자예산으로 이루어지고, 적자지출이 점점 외부자원의 금융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이미 경기침체의 고통을 겪으면서 보다 심화된 경제계의 압력과 긴장관계를 유발시키는 현상 속에서 미국경제에 대한 군사주의의 부정적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현상.

요컨대, 우리는 장기간의 경제적 위기, 세계적 저항의 확산, 중심 국가들 사이의 힘의 영향력 재현, 그리고 제국주의자 내부의 분명한 모순현상 재출현 등으로 특징짓는 역사적 대 혼란기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적지 않게 미국의 파워를 존중해야하겠지만, 우리는 이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심각할 정도로 과대 확장되어 있다는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완력에 대한 징후들이 출현했다는 점은, 사실 전략적으로 약점을 나타내는 징조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오는 9월 칸쿤에서 열릴 5차 WTO 각료회의를 위한 준비활동에 있어서 우리의 과제를 위하여 앞서 언급한 분석내용에 대하여 중요한 해설을 밝히고 싶다. 이들은 다국간상호자유무역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IMF와 세계은행, WTO 체제를 떠받치기 위하여 미국의 경쟁자들과 협력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다국간 기구들에서 제도화된 미국의 헤게모니도, 그리고 일방적으로 자행된 미국의 헤게모니도 가난하고 억압받는 국가들을 위하여 그 어떤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 판국이다. 이들 모두는 우리의 골칫거리임이 밝혀졌다. 이에 반하여, 향후 시급한 우리의 과제로는 WTO, 세계은행, IMF의 체제를 해체시킬 수 없다면, 이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미국과 그밖에 경제 강국들 사이의 첨예화된 경쟁력이라는 좋은 기회 자체를 활용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는 칸쿤 각료회의를 좌절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집단적인 노력을 한층 더 강화시켜야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WTO의 지도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WTO를 위한 NGO자문위원회 설치에 대한 제안을 경계했으면 한다. 이러한 발상은 바로 우리의 전열을 분열시키고, 번복할 수 없는 합법성의 위기에 갇혀있는 세계자본주의기구의 엘리트층을 떠받치기 위하여 우리의 한가운데에 투입시킨 트로이의 목마라고 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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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2003년 5월 12-13일 멕시코에서 개최된 FTAA와 WTO반대 세계대회에서 발표됐으며, 계속하여 필자가 5월 18-21일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국제평화협의회에서도 요약본으로 발표한 것을 기사연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 이의 원문은 Focus on the Global South의 홈페이지(http://focusweb.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파일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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