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세계화는 기술 아닌 정치의 문제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5-01-20 21:43
조회
1631
오마이뉴스[대안칼럼] 세계화의 역사적 사실을 통한 비판적 고찰

장하준 교수 (캠브리지 대학, 경제학)


<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안칼럼]을 신설했습니다.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0여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할 예정입니다.(칼럼진 명단은 아래 덧붙인 글 참고) 이번 글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경제학)가 외환위기이후 한국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1990년대 초반부터 글로벌라이제이션 (globalisation) 혹은 세계화가 경제논쟁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국제기준)에 맞는 각종 정책과 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나라는 세계화의 흐름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어 왔다.

물론 글로벌 스탠더드의 주창자들도 국제 기준으로 여겨지는 정책이나 제도 중에 국민정서나 사회관행에 잘 맞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송과 통신의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하여 상품의 교역비용이 줄어들고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국경 없는" 세상에서 이러한 감정적인 이유에 치우쳐서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나라는 당장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추구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천명 이후, 그리고 특히 1997년 환란 이후, 우리의 "비정상적인", 혹은 "국제규범에 맞지 않는" 정책과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우리의 앞날에 희망이 없다는 주장이 여론의 주류가 되었다.


세계화는 선택이 아닌 필연인가?

그러나 과연 이러한 주장이 맞는 것인가? 정말 세계화에 의해 국경이 허물어져 결국은 완전히 없어질까? 그리고 이러한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정책과 제도를 완전히 뜯어 고쳐 국제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과연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인가?

세계화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논의 밑에 깔고 있는 것은 세계화를 가져 온 것이 궁극적으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국제 교역과 통신의 비용의 급감(急減)이라는 전제이다.

이러한 비용의 급감은 무역을 증가시켰고, 생산설비 이전을 촉진시켜 기업의 초국적화(超國籍化)를 가져왔으며, 금융자본의 순간적 국제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등 종전의 국경을 무의미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국경 없는 세계"(borderless world) 혹은 "하나의 세계"(one world)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논의에 힘을 실어 준 것은, 물론 선진국과 일부 중진국에 국한된 이야기이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퍼지기 시작한 인터넷과 이메일이다. 인터넷은 세계 어디에 앉아서도 전화선만 있으면 전세계의 정보를 접하게 해주었고, 이메일은 빨라도 며칠씩 걸리는 국제 특급우편, 그리고 빠르기는 하지만 번거롭고 비용도 비싼 팩스를 대신하여 아무리 많은 양의 정보도 1-2분 안에 세계 어느 곳에나 받아보고 보낼 수 있게 해줌으로써 많은 사람의 생활을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첨단 기술의 혜택이 소수의 엘리트만이 아닌 대중에게까지 퍼지면서, 세계화는 기술발전에 의한 현상이라는 관념이 광범하게 퍼지게 되었다.


"세계화 반대는 진보를 부정하는 과거 지향적?”

세계화를 이 같이 과학-기술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로 보게 되면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보를 부정하는 과거 지향적인 인물들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세계화론자들이 종종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영국 산업혁명 초기에 기계를 파괴함으로써 산업화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러다이트(Luddite) 운동가들에 비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과연 과학-기술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으로 돌아가 그 이후 세계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대략 1870년대부터 1914년의 1차 세계대전 때까지) 세계경제는 요즘만큼 "세계화" 되어 있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국민 경제에서 국제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요즘보다 같거나 높았으며, 무역장벽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식민지화 되어있고 중국, 태국, 터키, 남미제국 등 식민지화 되지 않은 나라들은 불평등조약에 의해 관세자주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요즘보다도 훨씬 낮았다.

기업의 초국적화도 요즘만큼은 못하지만 고도로 진전되어 있었다. 특히 선진국간의 자본의 흐름은 국민소득 대비로 하면 지금의 1배반 내지 2배에 달하였으며, 총인구 대비 이민의 비율(즉, 사람의 국제적 흐름)은 지금과 비하면 5배 가량으로 월등히 높은 등 여러 면에서 이 당시 세계 경제는 지금보다도 더 "세계화"되어 있었다.


오히려 100년전에 유행했던 ‘세계화’

그러나 19세기말 20세기초의 세계화는 계속되지 않았다. 제국주의를 추구하는 선진국간의 세계 분할 투쟁 때문에 일어난 1차 대전, 그리고 투기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한 원인이 되어 일어난 1929년의 대공황을 거치면서 국제 무역과 국제 금융이 붕괴되고, 2차 대전 때에 이르면 세계화는 20세기 최저의 수준으로 추락하게 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20세기 초반에 무절제하게 진전된 세계화에 따른 국제 경제체제의 붕괴를 맛본 여러 나라들은 경제 개방에 신중을 기하였고, 따라서 국제적 무역, 금융 제도도 무절제한 세계화 보다는 규제된 경제 통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재편되었다.

세계화가 급격히 진전된 것은 주요선진국들을 필두로 세계 각국이 정책을 변경해 개방을 추구한 1980년대 이후인데, 세계화의 정도는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야 19세기말 20세기 초의 수준을 회복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인터넷을 빼고는 이미 현대적 수송, 통신 기술이 모두 존재하고 있었던 1960년대, 1970년대의 세계화 수준이 증기선과 유선전신에 의존하던 19세기말 20세기 초보다도 낮았다는 점이다.

1960-70년대에 세계화 수준이 낮았던 것은 2차대전 이후 세계 각국이 국가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세계화의 속도를 규제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지, 수송, 통신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세계화가 수송, 통신 기술의 발달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 한다고 세계화의 정도를 결정짓는 데에 기술발전이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다. 증기선이나 유선전신도 없었던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고도의 세계화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그 다음부터 세계화가 어느 정도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특히 강대국에 의하여) 정치적, 정책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기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기술수준은 세계화의 한계를 규정하지만, 그 한계 내에서 정확히 어느 정도 세계화가 일어나는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화가 기술이 아닌 정치의 문제라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의 방식과 정도를 비판하는 것은 결코 세계화론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과거 지향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세계화론자들이 추구하는 무절제한 세계화는 20세기 초에서와 같이 세계 경제 시스템의 혼란과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세계화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장기적인 세계 경제의 통합을 돕는 길인 것이다.

-----------------
** 이글은 오마이뉴스의 대안칼럼을 <대안연대회의>가 소개한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