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논문

6.15와 6.25 - 과거와 미래, 혹은 증오와 화해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7-04 22:07
조회
1404
6.15와 6.25 - 과거와 미래, 혹은 증오와 화해
권혁률 (CBS 보도국 교계뉴스팀장)

올해 6월은 유난히 뜨거웠다. 더위가 비교적 일찍 찾아온 탓도 있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가 여느 때보다도 뜨겁게 달궈졌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사일이나 인공위성 발사에 사용될 수 있는 로켓추진체)문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연기 등으로 논란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올해 6월이 유독 뜨거웠던 것은 이같이 겉으로 드러난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땅의 보수세력들은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사실을 곧 ‘노무현 좌파정권’의 실패, 나아가 이땅의 진보세력의 무능과 실패로 몰아붙이면서 해묵은 이념논쟁을 되살리는 기세를 올렸던 것이다.
단적인 사례로 드러난 것이 어느해보다도 많았던 6.25관련 행사와 일부 언론의 6.25관련 기획보도라 할 것이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6.25관련 행사를 다름아닌 교계가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꺼져가던 6.25에 대한 관심을 살리는데 보수언론과 우익단체, 보수 교계가 삼박자를 맞춘 것이다.

풍성한 6.25 행사, 위축된 6.15 행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박종순 대표회장을 비롯해 임원들과 상임위원장들이 6월 21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했다. 이들은 현충원을 참배한 뒤 곧바로 열차로 이동해 부산 UN 참전용사 기념공원를 찾아 헌화하면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추모했다.
이어 한기총은 재향군인회와 공동주최로 한국전쟁에 참가한 해외참전 용사를 초청해 국제행사를 가졌다. 6월 23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제행사에는 미국을 비롯해 터키와 벨기에, 태국 등에서 모두 143명이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한기총 박종순 대표회장은 UN회원국 가운데 21개국이 참전해 15만 2,440 명이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로서는 지난날의 우정과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다"면서 "오늘 이 자리는 지난날 우리를 위해 피 흘려준 우방참전국 용사들을 모시고 고마움을 전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또한 비 비 벨 유엔사 사령관은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참전용사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번영이 가능했다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이어 한국전쟁 발발 당일인 6월 25일 주일 오후에는 영락교회에서 6.25 상기 한국교회 특별기도회가 열려 전쟁반대와 한미동맹 강화, 한반도 평화를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는 6.25전상자와 국군장병을 위한 특별헌금 시간을 갖고 모아진 헌금을 보훈병원에서 치료중인 국군장병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사용하였다.

한편 전국의 여러 교회들도 25일 주일을 북한선교주일로 지키고 북한선교를 위한 한끼 금식과 함께 국군장병들을 위해 헌금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한국기독군인연합회와 한국군종목사단도 22일부터 24일까지 오산리 최자실 금식기도원에서 기독장병 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6.25상기 기독장병 구국성회를 갖고 군선교를 통한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의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물론 교계에는 이같은 6.25 기념행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해마다 6월 15일부터 25일까지 11일을 민족화해주간으로 지키고 있다. 올해도 이 기간을 민족화해주간으로 선포하고 기도문을 발표하였다. 교회협의회는 전국교회가 민족화해주간 기도를 통해 우리 민족의 평화와 화해를 소망하는 한편 한국교회가 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5월 정신이 살아 숨쉬는 빛고을 광주에서는 6.15공동선언 발표 6주년을 기념하여 남북해외의 대표들이 참석한 6.15민족통일대축전이 14-17일까지 진행됐으며 진보진영의 기독교계 인사들은 이 행사에 적극 참여해 북한기독교인과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 6월 27일에는 기독교회관에서 기독교평화포럼이 열려 현시기 한반도 평화실현과 평화운동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같은 행사들을 종합해보면 사실 외형상으로는 교계의 6.15관련 행사가 지난해에 비해 특별히 축소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예년처럼 민족화해주간도 선포하였고, 6.15공동행사도 예전처럼 남과 북, 해외 3자의 민관대표가 함께 참석한 가운데-비록 북측 대표단의 위상이 지난해보다는 조금 약화됐지만-성공리에 개최되었다. 약진하는 진보세력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세력들이 올해 유난히 6.25관련 행사에 공을 들여 예년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행사를 펼치면서 세를 과시하려 애썼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를 보면 “6.15정신을 살려 남북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논의보다는 “6.25를 잊으면 안된다”는 식으로 대북 대결의식을 고취하는 주장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었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6.15정신 계승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역시 우리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예년에 비해 위축되었음도 엄연한 현실이다.

둘이 하나되어, 과거보다는 미래를

그렇다면 이같은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물론 6.25를 통해서 지금 우리 사회가 얻을 교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참화를 기억하면서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이라는 비극적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수호의 의지를 확인하는 일, 또 이 땅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도록 민족화해의 의지를 확인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올해 전개된 각종 6.25 기념행사에서 이같은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한기총이 개최한 6.25 기념예배에서 발표된 결의문을 살펴보면 우선 북한의 핵개발과 그에 이은 미사일 발사강행에 우려와 실망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굳건한 안보태세 확립을 간과한 어떤 감상적 통일논의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못박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평화적 통일의 주체세력으로서 북한동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벌여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에 기여할 것을 다짐한다”고 덧붙인 것이 과거와는 조금 달라진 면모라고 할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는 6.15 행사가 남과 북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모색하며 화해를 다짐하는 것이라면, 6.25기념행사는 자칫하면 과거의 아픈 상처에 연연하며 증오심과 적대의식을 부추기는 퇴행적 행태에 머물기 쉬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6.15’는 하나(1)가 되자는 것이고 ‘6.25’는 계속 둘(2)이 되자는 것이라는 비유까지 나오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보다 분명한 선택을 해야할 시점에 서있다. 우리 사회의 퇴행적 이념대립에 편승하면서 ‘과거에 집착하는 증오’를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미래를 향한 화해’를 위해 노력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6.25의 아픈 경험과 교훈을 승화시키면서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6.15정신이 제대로 실천되도록 선도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그립다.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에스겔 3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