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논문

2007년 이후 한국 사회 전망 1- "2.13이후 한반도 정세,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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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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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합의 이후 한반도 정세 평가와 전망

김창수 (민주 평통 정책 전문 위원)

1. 2.13 합의의 의의와 정세개요

5차 3단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2.13 합의)가 합의되었다. 북한 핵문제는 90년대 초반부터 15년이 넘게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켜온 핵심적인 사안이다. 2.13합의는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90년대 이후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94년의 제네바합의, 2000년의 북미공동선언,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약속이다. 이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2.13 합의의 내용이 돋보인다.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과정에서 드러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조치는 “북한의 핵 폐기(비핵화)와 북미관계개선”이다. 그동안 ‘북한의 핵 폐기 절차와 북미관계개선’을 위한 조치들을 어떤 순서에 따라서 배치하고 진행할 것인가라는 아주 단순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2.13합의는 북 핵 폐기의 절차로 ‘핵 폐쇄(초기단계)→ 핵 불능→ 핵 폐기’의 3단계를 정하였다. 60일 이내에 완료될 초기단계서 북한은 핵폐쇄를 하고, 이에 상응해서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이행해야할 행동조치들을 설정하였다. 그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합의와 다른 점은 이행을 쉽게 하기 위해 초기단계를 설정하고, 초기단계의 행동조치와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초기단계조치를 이행하면 다음단계로 발전시키는 추진력은 생길 것이다. 그러나 2단계 핵 불능, 3단계 핵 폐기에 상응하는 조치들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1단계조치의 이행여부와 ‘2단계 북한 핵 불능과 에너지지원, 3단계 북한 핵 폐기와 북미 국교정상화’에 대한 합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북핵문제의 방향이 좌우될 것이다. 2.13 합의 이후 단기적으로는 해빙 분위기가 만들어지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아직도 불확실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13 합의의 배경은 북한 핵실험 이후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부시행정부는 중간선거 이후 이라크전과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내부의 비판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과 전격적인 합의를 했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미국은 북한이 요구해온 북미양자접촉을 1월중순에 베를린에서 개최했다. 여기서 BDA 해제를 약속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지난 6년 동안 추진해온 대북정책을 전술적으로 전환했다고 하더라도 이른 시일 안에 과거의 대북강경정책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합의사항 이행이 지체되면서 북한핵문제 해결의 속도가 더뎌질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BDA 해제의 범위와 위폐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 핵 프로그램 신고 대상에 핵무기와 고농축우라늄 포함 여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논란, 일본의 납북자 문제제기 등 합의사항 이행의 걸림돌들이 많이 있다. 초기단계조치 이후 열린 것으로 예상하는 6자 외무장관회담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걸림돌들을 처리할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2.13 합의 이후 남한 사회내부에서 대북정책 추진의 동력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예상되는 2.13 합의 이행의 걸림돌들은 남북관계에서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에 봄볕이 내리쬘 것이다. 이 남북관계 유화국면에서, 앞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여러 걸림돌을 딛고 넘어갈 수 있는 힘을 마련해야 한다. 북핵문제와 남북관계가 병행 발전하는 것이 걸림돌을 넘을 힘을 비축하게 만들 것이다.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병행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조치를 마련할 수 있다. 그렇다면 6자회담에서 한국정부의 역할을 높이게 될 것이다. 한국정부는 정상회담을 성과를 바탕으로 6자회담이 발전할 수 있는 추동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13 합의 이후에도 남북정상회담의 전망은 밝지만 않다. 남북한 당국의 의지가 불분명하고, 국내정치적으로 이미 정상회담이 지나치게 정치 쟁점화 되어 있어서 이를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또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대선용이라는 시비 때문에 합의사항을 이행하는데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2.13 합의국면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다른 요인으로 예상할 수 있는 남북미 3자 정상회담 개최다. 작년 11월 18일에 부시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남북미 3자 정상의 한국전쟁 종전선언은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고, 또 그 취지와 내용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2.13 합의 이행과정에서 미국의 힐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부상의 교차방문, 6자 외무장관회담 개최, 라이스 방북 등이 이루어진다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준비가 자연스럽게 다져지는 셈이다. 북한 핵 폐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걸림돌들을 정치적으로 타결하기 위한 필요성도 충분히 있다.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북핵 폐기, 북미수교, 종전과 한반도 평화선언 등이 주요의제가 될 것이다.

2. 2.13합의의 분석과 전망

최근에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3월초에 열린 김계관 북한 부상의 방북시점에서는 북미수교의 전망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로 정세가 더욱 긴박해졌다. 작년 10월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었다.
김계관 부상의 방미 이후 BDA 문제 해결이 지연되자 정세는 다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한반도 정세변화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되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대응해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94년의 제네바합의는 미국이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시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의 북미관계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부시행정부의 대북인식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세를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9.19 공동성명이 네오콘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합의된 것인 반면에, 2.13 합의는 네오콘의 퇴장 이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북미사이의 신뢰를 조성해가는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북미관계의 변화는 작년 11월 18일 부시대통령의 하노이 발언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부시대통령이 상당히 놀랄만한 제안을 하였다.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대북 제안은 크게 세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미국의 대북경제지원 참여 등이다.

특히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서 부시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리가 함께 임기 중에 북핵문제를 다 해결하자”며, “자, 저쪽에 김정일이 앉아 있고 여기에 당신과 내가 앉아서 함께 종전서명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명했다고 한다.
물론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제안’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 △구체적으로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참가하는 3자의 종전서명식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부시 대통령의 하노이 발언이 미국의 대북정책전환의 출발점이라면, 부시대통령의 임기 중에 북미관계가 도달할 종착점은 종전선언과 북미수교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낙관 할 수는 없다. 2.13 합의의 이행과정에는 숱한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어 BDA 문제가 2.13 합의의 첫 번째 난관이 되고 있다. 3월 14일로 예정되었던 BDA에 의한 북한계좌 동결해제가 아직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김계관 부상은 미국 방문시에 핵 폐기 프로세스를 BDA 문제와 연계할 뜻임을 강력히 시사했기 때문에 BDA의 진전이 없는 2.13 합의 이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BDA를 '돈세탁 우려대상기관'에서 '돈세탁 대상기관'으로 공식 지정하였다. 이는 미국이 BDA에 의한 불법자금세탁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앞으로 돈세탁에 연루된 BDA 임원들을 기소해야 한다. 최근 북미관계를 고려해서 BDA 임원들에 대해 가벼운 조치를 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BDA 가 불법세탁은행으로 지정되면서 BDA에 묶여 있는 북한의 자금이 아직도 북한으로 송금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초순 김계관 북한 외상의 미국방문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BDA에 동결된 북한 계좌 해제가 발표되던 3월 19일까지만 해도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해제된 북한자금의 대북송금이 지연되고 6차 6자회담이 결렬되면서 2.13 합의 이행은 지금 잠시 주춤거리고 있다.

3월 19일 전후로 해서 한국정부의 고위관계자들은 기술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송금이 지연되고 있으나 곧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6차 6자회담이 결렬된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북한자금 송금방법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송금이 지연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한 이유 그 자체이다. 그것은 바로 BDA가 불법자금세탁을 했다는 사실이다. BDA의 북한자금을 북한의 은행으로 송금하기로 한 기관은 중국은행(BOC)이다. 중국은행은 송금을 해도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는 미국정부의 보증에도 불구하고 불법세탁 때문에 혹시나 피해를 입을지 우려해서 송금을 거부했다.

지난 18개월 동안 6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았던 BDA 문제는 제3국을 통해서 북한의 은행으로 송금이 이루어진다면 마무리되는 수순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BDA의 불법세탁문제는 북한의 위조지폐 유통협의와 관련해서 언제 어떤 식으로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둘째, 핵프로그램 목록협의(초기조치)와 신고과정(불능화단계)에서 고농축우라늄(HEU), 과거 추출한 플루토늄,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 문제가 매끄럽게 해결되지 못할 수도 있다.

HEU는 2002년에 제기된 이후 계속 논란을 빚어왔다. 그러나 최근 송민순 외무장관은 한겨레신문과 인터뷰(3.9)에서 “북에 고농축유라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우라늄농축프로그램(EUP)이란 말이 더 적절하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도 이미 2005년부터 고농축을 빼고 그냥 우라늄농축프로그램(EUP)라고 말해왔다. 따라서 북한이 파키스탄에서 수입한 20여개의 원심분리기와 러시아에서 수입한 알미늄관에 대한 용도를 밝히는 선에서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와 미국이 50kg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구체적 사용내역을 핵 프로그램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3월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분리해 논의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핵 프로그램 목록에서 북한이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제외할 경우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북미관계에서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가 지정에서 해제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고, 일본인 납치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

예상대로 일본인 납치문제로 북일 실무회담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일본인 납치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국가지정에서 해제하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은 1988년부터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작년 5월에도 '국가별 테러리즘 보고서'에서 북한을 이란, 쿠바, 시리아, 리비아, 수단 등과 함께 테러지원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테러지원국 해제는 미 행정부의 재량사항이다. 미 국무부는 해마다 4월에 국제사회의 테러 관련 평가를 담아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 전년도 11월까지 자료 조사를 마치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테러지원국으로 지목된 국가명단이 공개된다. 2007년에 발표할 테러지원국에 대한 평가는 행정적으로는 이미 끝났다고 볼 수 있다.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려면 미행정부가 45일 이전에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2·13합의 2조는 “합의 2조에는 '60일 이내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해제가 아니라 해제 절차에 착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테러지원국 명단발표는 4월이나 5월초이므로 이 기간을 고려할 때 의회보고절차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힘들다.

이와 같은 실무적인 절차 때문에 2007년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이 빠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발표를 늦추거나, 북한과 협의 결과에 따라 추후에 별도로 특별보고서를 통해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쟁점이 될 수 있다. 2000년 3월 이후 미국은 북한과 3차례에 걸쳐서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 이때 미국이 제시한 조건은 △테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표명 △최근 6개월간 테러를 하지 않았다는 것 입증 △테러방지 국제협약 가입 △과거행위에 대한 필요한 조치 이행이었다. 북한은 과거행위에 대한 필요한 조치이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북한은 9.11 이후 반테러선언을 하였고, 최근 6개월간 테러를 하지 않았으며, 2001년 유엔에서 테러자금 조달 억제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는 등 반테러 국제협약 12개 가운데 7개 협약에 서명했다.

문제는 과거행위에 대한 필요조치 이행이다. 2005년에 미국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테러문제로 간주한다는 일장을 밝히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가 일본에 의해 계속 제기될 경우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이 복잡해진다. 2002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수상에게 납치문제를 사과하였고, 북한은 생존 납치자 들을 일본에 돌려보냈다. 그러나 일본이 납치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어 현안이 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네오콘들은 과거행위에 대한 북한의 필요조치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3월 10일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문제는 납치문제와 연계돼 있다"며 "현재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일본인 납치 뿐 아니라 남한인 납치 문제도 함께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의 강경파들도 납치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고, 행정적으로도 절차가 필요하므로 테러지원국 해제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미국은 이란, 쿠바, 시리아, 베네수엘라, 북한 등 5개국이 대테러활동 비 협력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명단에서 북한을 빼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이런 조치를 취하면서 테러 지원 국가 해제를 위한 절차를 계속 밟아나가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넷째, 초기단계에서 핵 폐쇄조치를 취한 이후 다음 단계인 불능화단계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불능화 단계에서 북한과 관련국들이 취해야할 상호조치가 합의되어야 한다.

4월 13일까지 북한의 폐쇄조치가 완료되면 불능화단계로 이행한다. 불능화단계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불능화의 개념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불능화와 핵 폐기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불능화 단계에서 북미의 상호조치를 합의해야 한다. 불능화에 포함되는 핵시설의 범위, 대상, 방법 등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6차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이에 대해 협의할 것이다.

또 불능화 단계에서 95만t 중유에 해당하는 지원을 둘러싸고 각국의 자기 몫 줄이기 시도도 예상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이미 추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부채탕감을, 중국은 지금까지의 북한에 대한 중유지원을 불능화 단계에서 지원해야할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다섯째, 북한이 어느 시점에서 경수로 제공을 요구할 것인지도 쟁점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은 핵 폐기 이후라고 못박고 있으나, 북한이 경수로 지원 없이 핵 불능화나 핵 폐기를 선행할지 의문이다. 북한이 불능화에 대한 상호조치로 경수로 제공을 주장할 경우 이룰 둘러싸고 지루한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 북한의 행동조치로서 불능화와 핵 폐기가 일정에 올라 있으나, 불능화와 핵 폐기단계에서 미국 등 관련국이 취해야할 상응조치는 합의되지 않았다. 상응조치가 충실하지 못할 경우 불능화와 핵 폐기로 이행은 지연될 것이다.

여섯째, 미국의 네오콘들이 지속적으로 2.13 합의 이행을 가로막을 것이다. 미국의 네오콘 들은 북한 핵 프로그램 신고의 불철저성, 납치문제, 북한 인권문제와 위폐 등을 문제 삼아서 북미관계 진전에 대해 발목잡기를 시도할 것이다. 미 국무부가 3월 6일 연례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폭압정권중 하나"라고 평가한 것도 빌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네오콘의 핵심인물인 체니 부통령이 리크 게이트와 건강문제로 퇴임할 가능성이 있고 그 자리를 라이스가 승계할 수도 있어서, 강경파의 구심이 약화되는 것은 또다른 변수가 될 것이다.

일곱째,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복병이다.

북한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3월 25일부터 31일까지 실시된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RSOI)과 독수리합동군사연습(FE)도 북한은 줄곧 반대해왔다. 지난 3월 10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RSOI)과 독수리 합동군사연습(Foal Eagle)이 핵 포기 협상과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94년 제네바 합의 이전에 미국이 팀스피리트(TS) 훈련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RSOI-FE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한 보강조치 차원에서 지속한다는 것이 한미양국의 입장이므로 RSOI-FE는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나, 한미군사훈련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2.13 합의가 소중한 것은 이런 걸림돌들을 넘어설 수 있는 고위급 협의구조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2.13 합의에서 약속한 바와 같이 6자 외무장관회담이 열린다면 여기서 많은 사안들에 대한 조정이 될 것이다. 초기단계에서 발생한 쟁점 해결, 불능화 단계와 핵 폐기 단계의 상호조치에 대한 합의 등이 6자 외무장관회담에서 이루어진다면 큰 고비를 넘어설 것이다.
6자 외무장관회담이 열린다면 거기서 북미 외무장관회담이 열릴 것은 확실하다. 북미 외무장관회담이 열린다면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도 가능해진다. 2.13 합의 이후 북미 정상회담, 남북미 3자 정상회담,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 6자 정상회담 등 위한 여러 가지 형태의 정상회담이 예상되어 왔다. 라이스의 방북은 이 가운데 하나가 실현되는 기초를 닦을 것이다.
또 9.19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남북미중 4자 평화포럼이 열릴 경우 부시대통령의 종전선언 발언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본 궤도에 오를 것이다. 남·북·미 종전선언으로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를 갈무리한다면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더라도 북미관계 정상화의 초석은 마련되는 셈이다. 아울러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북미중 4자 평화포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다뤄지면 길고 길었던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운명을 다하게 된다.

3. 남북정상회담과 북핵 해결

남북 정상회담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가열되고 있으나 정작 정상회담을 할 주역들은 조용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종일관 정상회담은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정상회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약속하였다. 남과 북은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2차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6.15 선언 이후 7년이 지나는 동안 정상회담에 대해 근접한 적은 2차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5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측의 제안으로 이르쿠츠크에서 김대중, 김정일, 푸틴의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무산되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이 남쪽으로 내려와야 한다, 서울에 오지 못하면 제주도나 휴전선 가까이라도 와서 해야 한다며 내가 (러시아 측의 제안을) 거절해 진전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때 정상회담에 합의하지 못한 이유는 개최장소 때문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도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말이 무성했다. 실제로 정상회담 개최를 남북이 합의한 적도 있었다. 2005년 6월 17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했을 때이다.
정동영 장관은 2006년 12월 2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던 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때의 합의가 6.15 선언 이후 정상회담에 대한 남북 양쪽의 공식적인 첫 번째 합의이다.

6.15 공동선언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시기와 장소를 명기하였다.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한 내용은 ‘적절한 시기’를 가능한 빠른 시일내‘로, 회담 장소를 ’서울‘이 아닌 ’김정일 위원장이 선택하는 제3의 장소‘로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두 달 후에 서울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에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한 북측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였다. 이때 김기남 비서는 현충원을 방문하여 남측 여론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8.15 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북측 인사들은 남측과 정상회담에 대한 후속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렵이 정상회담 개최에 가장 근접한 시기였을 것이다.

이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어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무르익었으나, 미국이 북한의 위조지폐문제를 제기하며 9.19 공동성명이 이행되지 않음으로써 정상회담 논의도 실종되고 말았다.

정 전 장관은 2005년 당시 정상회담에 대해 북측과 협의한 사실을 여러차례 공개하였다. 장관에 재임 중이던 2005년 12월 28일에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6.17 면담에서 2차 정상회담에 대해서 제기했고 대화를 나눴고 개최 원칙에 합의”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상회담에 대한 남북의 논의는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된 셈이다.

정동영 전 장관이 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했던 사실은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서 몇 가지 중요한 시사를 하고 있다.

첫째, 6.15 공동선언에 이어서 다시 한 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합의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상회담은 여전히 살아 있는 과제이지만, 현재의 정세 때문에 땅 밑에 잠복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여건만 무르익으면 정상회담은 언제든지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세가 변하면 정상회담에 대한 남북의 합의는 다시 표면위로 올라설 것이다.
셋째, 남북 최고위급의 특사가 서울과 평양을 공식 방문한 가운데 정상회담을 논의하였으므로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는 통로는 이미 확보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상회담은 조건만 성숙된다면 실무적으로는 쉽게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제정세가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 사이에서 정상회담을 약속했지만, BDA문제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해지자 남북의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이다.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고,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합의하며, 민족 공동번영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야할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에서 정상회담에 대해 남북이 이미 합의하였다는 사실도 정상회담이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희망한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한다. 아무런 조건이 없이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만 한다고 해서 정상회담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전략적 고찰이 필요하다. 이런 고려가 없는 정상회담은 사진 찍는 정상회담이 되어버릴 것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북미관계가 남북관계가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무수히 많이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그해 10월에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미국의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워싱턴과 평양을 교차로 방문하였다.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탔으나 부시행정부 취임 이후 ‘악의 축’ 발언으로 다시 냉각되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여 부시대통령과 회담하였다. 이 회담 결과 부시대통령의 대북강경정책이 확인되었다. 이런 결과는 곧바로 남북관계로 이어졌다. 북한은 그해 3월초로 예정되었던 5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중단하였다. 이후 6개월 동안 당국 간의 남북관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그 후, 2002년 10월에 미국의 켈리 국무성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하여 고농축우라늄(HUE) 문제가 불거지면서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였다. 남북관계에도 이 여파가 크게 미쳤다. 2003년 1월에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임동원 전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반도에서 냉전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본질이 북한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립이기 때문에, 북미대립이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남북관계가 북미간의 적대적 대결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면 좋겠지만,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압도하면서 발전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서로‘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 엉켜서 발전할 수밖에 없다.

2.13 합의 이후 북미관계가 두드러지게 변화하면서 전반적으로 한반도 냉전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2.13 합의 이후 북미 사이에 아주 초보적인 대화가 열리고 있을 뿐이다.
남북관계를 보더라도 철도 도로 연결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 않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쌀·비료 지원과 같은 인도적 조치들도 독자성이 없이 2.13 합의 이행에 연결되어 있다. 아직 작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전으로 남북관계가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상태이다. 북미관계의 변화에 남북관계가 끌려가는 모습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발전하는 상황이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 북미관계가 보다 성숙되어 한반도 주변정세가 안정되고, △ 남북 사이에서도 정상회담을 개최할 정도로 대화와 협력이 진전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남북 정상회담 개최는 북핵문제를 푸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 것이며, 남북관계를 공존공영의 확고한 반석위에 올려놓게 될 것이다.

아직 조건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으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상회담 논의는 2%가 넘치고 있는 논의이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정상회담은 여론몰이로 개최되는 것도 아니고, 정치쟁점으로 만들어서 좋을 것도 없다. 정상회담은 시기와 상황이 중요하다.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를 과열시키는 순간부터 정상회담은 무지개가 되어버린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쓸수록 우리는 좋은 것을 망치는 구나”라는 리어왕의 독백이 떠오른다.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때, 북한과 일본은 정부차원에서 여러 차례의 비밀접촉을 통해서 정상회담을 준비했다. 일본은 보완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에게도 접촉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미국에 고이즈미 수상의 방북을 알린 것은 공식발표 3일전이었다.
고이즈미 수상의 방북을 추진하던 일본 관리들은 “도중에 정보가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모두 파산이다. 미국도 방해하려들 것이다”고 생각했다.(후나바시 요이치, “김정일의 최후의 도박”, 47쪽) 일본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가도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방해할까봐서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던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는 이미 광범위한 합의가 되어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여론이 반대여론에 비해 월등히 많다.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크기 때문에, 실제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비공개적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물론 정상회담 개최를 남북이 최종적으로 결정한 이후에는 공개적으로 초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당연하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과열된 논의를 식히고 차분히 앞으로 정세변화에 대비해야한다. 북미관계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한차원 더 끌어올리고, 2.13 합의를 충실히 이행해서 부시 대통령이 작년 11월에 하노이에서 언급한 남북미 3자 종전선언과 같은 조치에서 진전이 생기면, 남북정상회담은 당연히 열리게 될 것이다.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무르익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대선에 악용되는 또 다른 북풍(北風)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세를 변화시키는 것은 북풍이 아니라 태평양 건너편에서 불어오고 있는 미풍(美風)이라는 사실이다.
2.13 합의 이후 온갖 낙관적인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다. 북미수교를 비롯하여, 남북미 종전선언, 남북미중 4개국 정상회담 등 각종 정상회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어느 하나도 확정된 것은 없지만, 이러한 낙관적인 예측들의 진원은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미관계가 변화하면 남북관계는 필연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권 때에는 북한이 남한을 배제한 채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구사한다며 북한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래서 94년 제네바 합의를 비롯하여 북미합의를 할 때는 항상 남북대화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북미관계가 변화하는데 남북관계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오히려 우리의 운명을 다루는 과정에서 우리가 소외된다고 질책해야 마땅할 것이다. 지금은 북풍을 염려할 때가 아니다.

4. 시민사회의 과제

2.13 합의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정세의 큰 변화를 전망하고 있지만, BDA 송금지연에서 알 수 있듯이 예측하지 못한 복병들이 등장하여 발목을 잡는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부시행정부의 정책 추진력은 약화되고, 최악의 경우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전환이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와 같은 상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2008년까지 대북정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걸림돌들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도 그 역할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안보와 관련된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주요 행위자는 항상 정부였다. 6자회담 진행과정에서도 부시행정부를 비롯한 6개국 정부가 주요 행위자가 됨으로써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시민사회는 정세변화를 지켜볼 뿐이다. 좋은 결과에 대해서는 박수치고, 나쁜 결과에 대해서 비판하는 한정된 역할만을 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판짜기’가 시작되고 있다. 정전협정이 만들어낸 한반도의 ‘53년 체제’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판’에서 살아갈 것인지를 정하게 될 것이다. “냉전과 대결의 ‘판’이냐, 평화와 공존의 ‘판’이냐”와 같이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이다. 또 이와 같은 변화를 누가 이끄냐에 따라 머지않은 미래에 만들어질 새 무대의 주인공이 누가 되느냐도 결정될 것이다.

6자회담 진전과정에서 남북관계는 보조적인 역할로 국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될수록 당사자인 우리의 몫과 역할이 줄어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질서를 강대국의 논리가 주도하게 될 것이고, 시민사회의 참여는 여전히 제약될 것이다.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었던 구한말과 해방정국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 정세변화에 시민사회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지는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어진다.

한국전쟁 이후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결과를 가지고 심판하는 역할을 뛰어넘어서 방향을 제시하고, 긍정적인 요인들은 촉진시키고, 부정적인 요인들은 완화하고, 합의된 성과는 지켜내는 사회적 힘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활동방향으로 몇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첫째, 한반도 평화체제를 공론화하는 것이다.

2.13 합의의 이행과정에서 ‘53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 평화포럼을 통해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가 논의되는 것과 발맞추어 우리 사회내부에서 평화체제에 대한 공론화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내용 및 두 가지의 상호관계에 대한 토론도 활발히 진행되어야 한다.

평화협정 체결뿐만 아니라 남북사이에서도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이미 1991년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대규모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와 통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 군 인사 교류와 정보교환, 대량 살상무기와 공격 능력 제거를 위한 단계적 군축 등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학술적인 논의도 필요하고, 대중운동도 필요하다. 현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대표성, 전문성, 기동성을 가진 각계인사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이다. 정세변화의 본질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하며, 필요한 시점에 여론조성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1년에 세계사적인 탈냉전의 물결속에서 만들어진 ‘한반도 통일을 위한 평화군축협의회’(평화군축협의회)가 모델이 될 수 있다. 각계인사 200여명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평화군축선언’을 하고, 이후 ‘평화군축협의회’를 결성하여 탈냉전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국면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였다.

둘째, 정세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책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여론형성을 주도해나갈 수 있는 역량이다. 이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앞으로 정세는 한반도 비핵화를 고리로 하여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관계 진전, 동북아 다자안전보장체제 마련 등 상당히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사안이 맞물리면서 변화할 것이다.

시민사회는 이러한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정책대안과 상호관련성, 이행순서 등을 연구·개발해야 한다. 이렇게 생산한 정책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형식으로 정부와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정책의 수준은 높고, 형식은 세련되며, 시기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1988년 2월에 있었던 ‘한국교회평화통일선언’(교회선언)과 2001년 5월에 있었던 ‘부시대통령에게 드리는 글’(대 부시편지)을 발표한 것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교회선언’은 한국사회에서 통일논의를 촉발시키고 그 방향을 제시하였다. ‘대 부시편지’는 당시 미국 조야에서도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셋째, 국제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와 한반도 문제의 다자적 접근이라는 현정세의 큰 특징이다. 이에 비춰볼 때 국제연대 강화를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국제사회와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2.13 합의를 이행하는데서 미국 의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테러 지원 국가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에서 북한을 제외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미국의 대북지원에 이르기까지 의회가 다뤄야할 사안이 많이 있다.

미국 의회가 이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북미관계 개선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가령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미국 의회를 방문하여 전·현직 상원외교위원장(공화당 루가 의원, 민주당 바이든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미국 의회 대표단의 방북을 협의하여 이루어진다면, 미국 의회도 북핵문제 해결의 한 주역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2차 북핵위기가 조성된 이후인 2003년에 한국의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미단’을 구성하여 미국의회와 조야에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한국시민단체들의 의사를 전달한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또 시민단체 차원에서 6자회담을 추진을 시도해볼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몽골 등의 시민단체들이 참여하여 5월말에 몽골에서 열리는 ‘무력갈등예방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쉽(GPPAC) 동북아지역회의’를 민간 6자회담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간 6자회담을 추진하면서 국회 차원의 6자회담과 결합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현재 4자 정상회담, 6자 정상회담, 남북미 정상회담 등 각종 정상회담에 대한 추측만 무성하다. 다양한 국제연대는 여러 가지 형태의 주변국 정상회담 가운데 한반도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회담을 개최하는 여건을 만드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 한반도 문제는 6자회담이라는 다자논의 속에서 플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로서 남과 북의 역할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남과 북의 노력이 부족한 채 한반도 문제가 국제화되면, 주변 국가들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북핵문제가 전부가 아니다. 남북 사이에도 고유한 영역이 있다. 개성공단 본공단 분양을 서두르고, 침체된 금강산 관광도 활성화시키며, 철도·도로 연결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남북 사이의 군사대화도 활성화하여 군사적 대결을 완화해야하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계속해야 한다.

아울러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해서 합의사항들에 대한 세부적인 이행방안을 심도 있게 토론해야 한다. 특히 6.15 선언 2항에 따라서 통일논의를 활성화하여 통일의 발전경로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기반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통일논의를 활성화해야 준비 없는 통일을 예방할 수 있다. 통일논의 활성화는 현재 진행 중인 모든 현안들을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모아내게 될 것이다.

올해 6.15 통일대축전은 남북 정부의 지원속에서 평양에서 열린다. 6.15 통일대축전의 성공적인 개최도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의미 있는 일이다.

다섯째, 2.13 합의의 쟁점사안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이다.

대표적으로 일본 정부에 요코다 메구미 유골사건에 대해 공정한 진상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 북한은 자신들이 납치해서 사망한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을 2004년에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일본정부는 이 유골이 가짜라고 발표하여, 일본인 납치문제가 악화되는 한 요인이 되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6자회담에서도 쟁점이 되어서 2.13 합의의 원만한 이행을 막고 있다.

요코다 메구미 유골이 가짜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북한은 부인하고 있다. 또 일본정부가 요코다 메구미 유골이 가짜라고 밝힌 것에 대해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는 2005년 3월 17일자 사설에서 “일본정치인들은 정치를 위해 과학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4년에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을 전달받은 일본정부는 3개의 기관에 감정을 요구했다. 2개의 기관은 감정불가 판정을 내렸고, 다른 한 기관은 “확정적이 아니다”, “샘플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인정했다. 일본정부는 이를 가지고 감정결과 DNA가 다르다고 발표했다. (최재천, “한국외교의 새로운 도전과 희망”, 335-336)

이러한 의문이 있기 때문에 북한과 일본이 인정하는 공정한 3국 감정기관에 재조사를 의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여야의 대선후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요구해볼 수도 있다. 비중 있는 정치인들이 나선다면 일본 여론에 대한 호소력이 그만큼 클 것이기 때문이다.

1999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 100주년 기념 평화회의’에 참가한 NGO들은 ‘신외교’(New Diplomacy)라는 개념을 주창하였다. 정부만 외교의 주체가 될 때 지구촌의 평화를 이룰 수 없으므로 민간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였다. 반대로 정부차원에서는 여론에 대한 정부정책 홍보를 강조하는 ‘퍼블릭 디플로머시’(Public Diplimacy)가 강조되기도 한다. 두 개념 모두 외교에서 민간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바뀌는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외교, 안보, 통일 분야에서도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