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논문

사학법 개정과 순교정신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7-01-11 23:20
조회
1575
사학법 개정과 순교정신.hwp

사학법 개정과 순교정신

채수일(기사연 기획위원장, 한신대)


한국 개신교 보수진영의 지도자들이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여 삭발 투쟁을 시작했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순교자적 투쟁’의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예장 통합측 총회장 이광선 목사는 ‘우리의 삭발은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에 순교로 맞섰던 신앙의 선배들을 이어 일사각오로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총 대표회장인 박종순 목사는 ‘군사독재정권도 교회의 목소리를 이렇게 무참하게 무시하거나 짓밟지는 않았다’며 ‘한국교회가 그동안 힘을 합하지 못해 사학법이라는 사탄의 계략에 빠졌던 것이다. 불의한 세력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학법 개정이 과연 순교자적 투쟁을 할 만큼 당사자들에게는 심각한 사안일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사학법 개정이 ‘신앙과 선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인지, 개정 사학법이 ‘사탄의 계략’인지, 사학법 개정에 대한 지지자들은 모두 ‘불의한 세력’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일이다. 어쨌든 사학법 개정은 교회 안에서도 찬반입장으로 교회를 분열시켰고, 지금도 서로 다른 입장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러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나서서 쟁점이 되었던 개방형 이사의 선임과 파송 문제에 대한 절충안을 제시하였다. 개방형 이사의 추천권한을 종교사학이 소속된 종단이나 교단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절충안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개발독재 밑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을 때, 정작 큰 소리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했어야 할 시기에는 삭발투쟁은커녕, 목소리 한번 크게 내보지 않았던 집단과 사람들이 순교자적 각오로 사학법 개정을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이 보면 결국은 사학에 대한 기득권 다툼으로 보이는 사학법 투쟁이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위한 순교자적 투쟁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인상이 오해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기독교 학교에서 일한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교육을 통한 기독교 정신의 구현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배, 성서연구, 비폭력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방법보다 기독교 교육의 이념이다. 도대체 무엇이 기독교적 교육 이념이고, 그 이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사학법 투쟁과 최소한 병행되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의 사학법 투쟁이 기득권 지키기가 아니라, 오늘 한국사회의 교육현실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기독교적 교육이념을 지키는 것으로 받아드려졌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교육문제를 근본에서부터 문제 삼고 개혁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기독교 사학은 차라리 정부로부터의 모든 특혜는 물론 간섭도 거부하고 공교육과 선명하게 구별되는 교육이념과 방법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사학법 개정투쟁에서 폐교까지 각오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은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 기독교 사학이 더 진지하게 대결하고 씨름해야 할 과제는 기독교 정신을 가진 사람교육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조는 어떠해야 하는지 하는 것이다. 신분상승으로서의 대학입시와 취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기독교 사학이 내용으로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사학법 투쟁은 단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보수 우파 기독교의 정치적 저항으로만 기록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한국 기독교 안에서 우리 시대 기독교 교육의 이념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왜 기독교 사학이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되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