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버마 이야기-실제 경험한 이야기(나우센데이 투)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3:37
조회
688
실제 경험한 이야기-버마 이야기 8
민중의 함성
(나우 센데이 투의 글)

이 글은 버마 카렌주 테나세림군에 있는 강제 이주지역과 국내 난민(IDP)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글이다. 버마 군사독재, 즉 <국가 평화 발전 위원회>(SPDC) 통치 하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이 글은 그들이 경험한 이야기이다.

국내 난민 지역

SPDC는 IDP의 지역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강제적으로 집을 떠나와 사는 버마 백성이다. 비록 그들은 자주 옮겨 다녀야 하지마는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해 나가는 자유인이다.

IDP의 지역과 강제 이주지역의 사람들은 가끔 최근 상황에 대한 정보와 군대의 움직임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들을 교류하기 위해 서로 왔다 갔다 한다. 강제 이주 지역에 위치한 카 플라 마을의 지도자인 사우 타 파우 콰씨는 IDP의 지역을 방문하여 버마 군인들이 자기에게 한 일들을 설명했다. “ 버마 군이 카렌 민족 연합군과 전투를 한 후인 11월에, 우리 마을에 들어 와서 우리가 KNU에 대한 정보를 자기들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고 우리를 벌했지요.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햇볕 속에 3시간을 세워 두었답니다. 그 날은 무척 더운 날씨 속이었지요. 우리는 마을 지도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우리도 햇볕 속에 세워두었지요. 군인 한 사람은 총으로 나를 때렸지요. 그리고 여럿이 달려들어 나를 묶더군요. 그리고는 머리를 때리고 처박고 하다가는 내 허벅지를 칼로 찔렀어요. 그들은 나에게 KNU에 관한 정보를 고지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어요. 그들에게 맞은 사람은 여자 애 두 명을 포함하여 다섯 사람이었어요. 앞날을 위해서 나는 그들과 형제자매로서 평화로이 살고 싶어요.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 마을 사람들을 고문한답니다.”

사우 타 파우 콰씨가 자기 가족들과 함께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동안, 이런 사건들과 그 외에 다른 인권 침해가 발생하여 많은 마을 사람들은 자기 집을 버리고 도망하여 국내 난민이 되곤 하였다고 전해 주었다. 그들은 버마군이 찾아 낼 수 없는 지역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거주지를 옮겨 다녔다. 그들은 자기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벼농사를 지었다. 버마 군에게 발각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상존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항시 마을 사람들이나 반란군으로부터 군의 움직임을 알아내려고 한다. 군이 IDP들이 숨어있는 지역에 접근할 경우, 그들은 도망간다.

나우 크트레이는 울면서 자기가 과부가 된 사연을 설명한다.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냇가 에서 남편 사우 세에 프라우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남편은 버마 군대의 상황에 관 소식을 얻기 위해 외출했지요. 그 때 총소리가 들렸는데, 남편과 아이들이 내 쪽으로 달려 왔지요. 그때 남편은 아이들에게 외쳤어요. ‘아무 소리 말고 달려라.’ 아이들이 내게 왔을 때 총소리가 또 났어요. 남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어요. 그들이 남편을 쏜 것이지요. 나와 아이들은 다른 산으로 도망갔어요. 우리에게는 먹을 것이 없었고 아무 것도 덮지 못하고 바위 위에서 잤어요. 논일 하려 들어 갈 때면 울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고 머리에는 온갖 생각으로 가득해요.”

마웅 차우 민이 이끄는 104 경보병대대가 사우 세에 프라우를 죽이고 그의 가족도 죽이려고 했다. 동 대대 소속 병사들은 사우 크와의 집을 불태웠다. 사우 크와와 그의 가족들은 병사들이 집과 재산을 불태우기 직전에 한 장소로 도망가 숨었다. 거기에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1997년부터 밀림에서 IDP로 살아오고 있는 사우 크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에는 버마 군대가 이곳까지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벼농사를 지으며 가족들과 한께 살 수 있었지요. 그런데, 2005년 11월 버마 군대가 이곳에 들어 와 마을 사람 한 사람(사우 세에 프라우)을 죽이고 우리 집을 불태우고, 찹쌀 세 광주리를 포함하여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웠답니다. 그들은 나의 기타와 카셋을 가져갔어요. 나는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을 생각입니다. 논 옆에다 조그만 오두막이나 지어 살려고 합니다.”

버마 군사정부는 자기네 군대가 IDP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공언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버마 군대의 병사들이 숨어사는 사람들을 찾아 안전하게 마을로 데려간다면 모르겠지만 이제까지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23세의 카렌족 청년 사우 트하 세에는 버마 군대가 자기가 살던 IDP 지역에 왔던 일을 되풀이 하여 증언한다. “제가 화장실에 갔을 때인데, 총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버마 군대가 논 가운데에 있는 나의 집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보았지요. 우리 가족은 집안에 있었는데 45세인 저의 아버지 나우 메에 세에와 11세의 누이동생 나우 메에 크웨에는 살해당했습니다. 어머니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요.
군인들은 남자 아홉 명과 부상당한 나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여성 12명을 강제로 마을로 끌고 갔다. 마을에 도착하자 병사들은 여성들은 모두 풀어주었지만, 남성들은 도중에 모두 죽였어요.“

KNU 지역 지도자는 사우 타트 세에의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포함한 살해된 11명을 말고도 지난 해 7월 10일에, 윈 나잉 대위가 지휘하는 군인들은 “벼가 담긴 광주리 200개를 부수고 모든 집안에 있는 돈을 다 빼앗아 가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각 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액수의 돈을 강탈해 갔는지도 몰랐으나, 한 가정에서는 10만 키아트를 잃었다고 한다.

이 지역의 KNU 지도자는 버마 군대가 IDP를 잡아 죽이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그는 IDP로서 밀림에 사는 것과 강제 이주 지역에서 사는 것을 비교해 본다면, 밀림에서 사는 것이 훨씬 자유가 많다고 말했다. 강제 이주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짧은 시간 외출할 수밖에 없으며, 만약 외출이 잦다거나 외출 시간이 길어지면, 혹시나 KNU와 접촉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그들을 구타한다.

강제 이주 지역의 내부

강제 이주 지역 내부의 생활은 몹시 힘들다. 그들은 완전히 버마 군의 통제 하에 있다. 그들은 버마군인들이 정한 곳에서 살아야 하고 버마군인들이 명령한 일을 해야 한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강간한다. 그들은 이런 처우에 대해 댓구하거나 반항할 수 없다. 그들은 예라고 대답하고 하라는 대로 해야 할 뿐이다.
지난 해 강제 이주 지역의 세 주민이 미얀마 군인들에게 살해되었다. 나누 바우 바우(가명) 는 10월에 미얀마 군대가 KNU와 싸우기 위해 전선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군인 중에 몇 사람이 부상당했다. 그들은 그것이 KNU의 소행인 것을 알지 못했지만, 마을로 돌아 와서 미사일 하나를 발사한 후 마을의 전 주민들의 회의를 소집하였다. 여성들과 아동들은 모두 자기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군인들은 그들을 왜 KNU 소식을 신고하지 않았는가 이유를 대라고 남자들을 심문하였다. 나우 바우 바우의 17세 되는 아들은 친구들하고 강에서 목욕을 하느라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같은 마을의 다른 여성인 나우 와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남자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우리는 집안에 있어야 했어요. 나의 조카와 걔 친구들은 미얀마 군인들이 회의를 소집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강에 목욕을 하러 갔었데요. 내 조카는 이름이 사우 마우 데에인데 어린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어요. 걔는 17세인데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들과 목욕을 간 후로는 걔들을 볼 수 없었어요. 우리는 걔들이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는데, 마을의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총성도 듣지 못했어요. 내 생각에는 걔들은 고문을 당한 후 살해된 것 같아요. 군인들이 집에만 있으라고 우리에게 명령했기 때문에 우리는 외출하지도, 농사지으러 논에 나가지도, 목욕을 하러 나가지도 못했어요. 우리는 집에만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

버마 군의 지배하에 잇는 마을 주민들은 군인들이 명령할 때 마다 원칙 없는 세금을 내어야 했고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이것은 모든 마을에서 일어나는 진실이다.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은 논에 일하러 나갈 때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허가를 얻지 않아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벼를 수확하지 못하여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식량을 거둘 수가 없다. 식량을 사기 위해 그들은 이웃으로부터 돈을 빌려야 하고 그래서 결국 빚을 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일은 버마의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태어 날 곳을 선택할 수 없고 일생 우리가 당해야 할 고생들을 스스로 정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나라가 없으면, 우리에게 속한 것들(토지, 집 그리고 돈)을 잃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인간임을 확신할 수 없으면 우리의 마음, 육체 그리고 영혼은 항상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생명은 동물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글을 쓰기 위한 인터뷰 내용은 BI 비디오 제작 실무자가 수집한 한 것이다. <주간 BI>는 버마의 변화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최근 사건들의 전자 뉴스 요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