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어처구니 없는 독재정치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3:41
조회
539
어처구니없는 독재정치
: 피인마나에로의 수도이전의 배경에 있는 의미를 살펴보면서


2005년 11월 6일 정각 6시 37분, 공무원들을 호송하는 군 트럭들이 랭군을 떠나 만달레이 주에 위치한 말라리아 위험 지구인 한 목가적인 계곡에 새로이 지정된 수도로 향하고 있었다. 재배치되는 공무원들 대부분은 이 이동이 있기 단 3일 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7일 월요일, 버마 정보부 장관 키아우 산 준장은 공식적으로 이 나라의 수도는 피인마나 군에 새롭게 건설된 한 도시가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산 장관은 “수도 이전의 이유는 미얀마 중심에 있는 피인마나는 지리인 면에서 그리고 전략적인 면에서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언론은 그 후 계속하여 2006년 1월 1일까지 이전이 순조로이 되었고 정부부처들이 착착 업무 개시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식 논평을 통하여 수도 이전의 의도를 발표하였다

피인마나에서의 건설작업은 11월 이전이 있기 수개월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이 프로젝트에 관여된 건설업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버마에서는 엄청난 액수인 미화 수백만 달라에 상당하는 액수의 키야트가 기반시설의 건설에 소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30개 이상의 도급 회사들이 고참 장군들을 위한 맨션, 정부청사, 정전 그룹들과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노동조합 연대 개발 협회의 전국 본부, 벙커들, 터널, 대규모 군병원, 아파트, 비행장 활주로, 콜프 코스, 고급 호텔 2동, 대규모 슈퍼마켓 2동, 등의 건축을 위해 동원되었다. 분석가들은 이 비용들이 외국의 원조와, 국내 마약 거래로 들어온 돈, 그리고 강제노역 비용의 상계액 등등으로 지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신수도에 필요한 부지는 이 지역에 실고 있는 수천 명의 주민들로부터 강제 수용되고 있었는 것이다.

건설에 박차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1월 초 수도 이전을 서두를 때는 아직도 정부 종합 청사의 많은 부분은 완전한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였다. 피인마나로 강제로 이주된 공무원들은 큰 강당에 함께 수용되었으며 단 이틀의 음식 밖에 제공되지 않았다. 그런 후 거기서 가장 가까운 식량상점들이 위치한 30킬로미터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자체 공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통신을 위한 기간시설도 미완성상태여서 정부부처의 전 부서용으로 전화선이 단지 3개선밖에 없다.
랭군의 가족들과의 연락이 가능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량을 공수를 요청하고 있다. 이전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여기에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살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없다.”

피인마나가 멀리 떨어져 있고 개발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옮겨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탄 스웨마져도 수도가 북쪽으로 옮겨 갈 때 랭군에 남아 있기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단지 군부 내 고위층과의 연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국가 평화 발전 협의회>(SPDC)는 공무원들이 퇴직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다 잡힌 자들은 긴급조치 5호 J에 위반한 죄-반역과 불복종-로 처벌당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 이주하는 공무원들 중 6배의 급료를 약속받기도 했다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정부 공무원들에게마저도 먹을 식량을 공급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외지로 서둘러 수도를 옮기려 한 이 어처구니없는 일에 대해 국제 언론 매체나 망명 언론에 종사하는 관측통들은 그 이유에 대해 이러저러한 가설들을 내세우고 있다. 가설들 대부분은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절대 권력의 고삐를 거머쥐고자 하는 군사정권의 욕구가 뒤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의 틀을 따르자면, 군사정권이 바다로부터 침공(아마도 미국의)에 대해 보다 확실한 안보를 취하고자 한다는 설; 혹은 여러 소수민족 집단들과 대결하기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 민주화운동 반체제 인사들을 정치적 의사결정구조의 핵심에서 소외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설: 혹은 반체제인사들을 대중적인 봉기로부터 격리시켜 놓기 위한 것이라는 설 등등이 있다.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인 측면과 관련성이 덜한 가설은 인도, 중국, 태국을 연결하기로 계획되어 있는 범아시아 초고속도로의 건설을 위한 피인마나의 전략적 위치를 강조하는 것이 있다. 또 다른 주장들은 상부 버마의 건조지대가 이 나라의 문화와 역사의 심장임을 강조한다. 이곳이 식민지 시대의 후유증을 최종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수도이었어야 한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수도를 왜 옮겨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왜 지금 옮겨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시기에 관련된 설도 여러 가지가 있다. 탄 스웨와 관련된 점성술사들의 예언들이 작용하였다는 설들도 있다. 이런 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관측통들은 SPDC가 첫 이주 출발 시점을 11월 6일 6시 37분으로 하고 11개 정부부처에 11번째 달, 11번째 날, 11시에 피인마나에서 업무개시를 하도록 명령했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어떤 관측통들은 이번 이주가 전국회의 내부의 전개되는 일들과 같은 시점에 있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 다른 설은 국제사회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 때문에, SPDC가 현상유지를 할 상실한 때문이라 점을 들고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에스문드 투투와 바크레이브 헤이벌의 요구로 “ 평화에의 위협”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판된 점, 버마에 대한 UN 안보리의 개입이 요청된 사실, 2005년 12월 16일 안보리에서의 버마에 관한 브리핑이 있었다는 사실 등이 이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므로 피인마나로 옮기는 시간을 서두르게 된 것은 군사정부에 대한 국제 사회의 행동을 염려한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피인마나에로의 이주에 대한 원인들과 시기설정은 이런 모든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설들 어찌 보면 인도적이고 정치적인 관심들과는 동떨어진 그리 중요치 않는 것들이다.
이번 수도이전의 중요성들이 무엇이냐에 대해 보다 신중히 고려가 처음부터 있어야 했다. 수도이전의 영향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민주화 운동 세력들의 반대의 입장이나 소수민족들의 입장이 고려되었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정치적 자유화를 이끌어 낼 국제사회의 점점 커가는 간섭도 고려되어야 한다. ASEAN과 군사정부의 관계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쟁점들은 SPDC의 수도 이전의 동기가 무엇인가 가정하는 것 보다는 버마 내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더욱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피인마나로의 수도이전이 버마의 반체제 민주진영에 미친 결과들은 <민주주의 전국동맹>이나 다른 정치적 반대파들이 2003년 데파인 학살 사건 이래로 점점 다소 중립적 성격을 띄어왔다는 사실 등 최근의 정황 속에서 볼 때 별로 중요치 않는 것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LD는 신수도에 당사를 두는 일에 제한을 받을 것이며 그에 따라 SPDC의 “향후 일정표” 에 설명되어 있는 정부의 새로운 구조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이런 시각은 피인마나로 이전한 군정보부가 최근의 활동과 앞으로 계획된 활동들을 조사하기 위하여 11월 24일 피인마나 지구 NLD 지방 당원들을 소환했다는 정보에 의해 확인될 수 있을 것 같다. NLD는 새 수도 이전 때문에 군사정권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일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 또한 본부를 랭군 밖으로 이전할 뜻이 전혀 없다고 했다. 시민들과 일부 정당들은 회의가 열리고 있는 멀리 떨어진 그곳으로의 여행에 제약을 받고 있다. 만약 국민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판단한다면, 피인마나로의 수도이전은 실제 버마 민주화 운동의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수도의 이전에도 불구하고 반대당들이 여전히 억압받는다면, 민중봉기는 고립으로 말미암아 더욱 분명히 제약받을 것이다.

어떤 분석가들은 수도 이전이 반란지역들을 보다 엄격하게 통제하겠다는 군사정부의 의도를 내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수도이전이 군부 내의 공격적 성향의 증대가 원인이라 할지라도, 수도 이전으로 말미암아 군대의 재배치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또한 그 이유 때문에, 수도이전이 되었다고 해서 잔존해 있는 반란군들의 근거지인 험한 지역에 쳐들어가고자하는 도전들이 줄지도 않을 것이다. 수도가 이전 되었다고 해서 인권침해 사건들이 꼭 줄거나 늘거나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이유도 또한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수도가 멀리 떨어져 있고 통신 역시 잘 소통되지 않음으로 해서, 지방군의 자주성이 증대될 것이다. 이 때문에 최소한 중앙 당국이 피인마나에서 효과적인 통제권을 다시 확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전국적으로 독립적인 군사 정책을 점점 더 확대해야 할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전통적으로 불간섭주의 정책을 유지해 온 ASEAN 내부로부터의 SPDC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보다 뚜렷해질 것이다. 2005년 12월 12일-13일 개최된 ASEAN 11차 정상회담 동안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은 버마의 정치상황에- 실망을 표시하였다. 피인마나에로의 이전이 이런 변화하고 정서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비록 수도이전 때문에 자기들과 SPDC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한 ASEAN 지도자들의 성명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말레시아의 관리들은 버마의 수도이전을 “곤혹스러운 일”이라고 했으며, 이 나라의 외상, 니에드 하미드는 버마는 ASEAN의 짐이요 장애라고 했다. 태국의 외상도 비슷한 말을 했다. “수도이전으로 ASEAN 회원국들은 크게 놀랐으며, 많은 회원들은 이 일을 걱정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태국 수상 탁신 시나와트라는 항상 버마군사정권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왔었지만, 12월 에는 SPDC의 종잡을 수 없는 태도에 “불편한 감정”을 심기지 않았다. 이런 염려 때문에 ASEAN은 이 나라의 민주화에로의 변화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대표를 1월 초에 버마에 파견할 것을 서둘러 결정하였다. ASEAN의 관리들이 자기들의 이 사명을 시작하기 직전에, 버마 관리들은 새 수도 이전 작업에 시간과 역량을 다 소진하고 있어서 대표단을 접견하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피인마나로의 수도 이전을 ASEAN이 최근 느끼고 있는 버마에 대한 좌절감의 원인이요 자기들의 보다 단호한 정책으로의 변화에 대한 원인이라고 하는 것이 지나친 것일지 혹은 주제넘을지 몰라도, 수도 이전 건은 군사정권의 예측 불가능함과 변덕스러움에 대한 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의 염려를 더욱 강화시켜주는데 일조한 것 같다.

더 큰 국제 사회는 ASEAN 보다 더 관용적인 것 같지는 않다. 랭군에서 주재하고 있는 외교관들은 군사정권이 전 수도를 떠난 후 SPDC를 어떻게 접촉할 것인지 당황해 하고 있는 것 같다. SPDC도 빠른 시일 외교사절들의 재배치에 마음 쓰는 것 같지는 않다. 버마 당국은 외교관들이 2년 내에 피인마나에 대사관들을 건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외교관들은 군사정부와 단절된 채로 랭군에 버려져 있다. 한 공무원은 외국의 외교관들의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급하면 팩스를 이용하면 되지요”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랭군에 있는 국제 자선 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UN도 마찬가지로 정부 부처를 피인마나로 이전한 일은 그들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없게 방해받을 것이라는 염려를 피력하였다. 피인마나로의 이전의 결과로 외교관, UN기구들, 그리고 원조 단체들이 느끼고 있는 분노는 미얀마 군사전권이 불안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에 상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국제적 여론들의 증대에 기여할 것이다. 12월에 버마의 인도주의적 상황과 정치상황을 UN 안전보장이사회에 브리핑했다는 사실은 이런 시각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피인마나 수도 이전의 결과들은 SPDC가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충동적인 정치 군사적 행위를 함으로써 지역적, 국제적 견해를 무시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수도의 위치가 민주화 운동과 소수민족들에게 장해가 될지 몰라도, 이 일은 현 체제가 지금의 국제사회의 안정된 일원으로 기능할 능력이 없다는 국제적 여론을 강화시킬 것 같다. 버마군사정권이 이웃나라들과 더 넓은 국제사회의 염려들을 무시하면 할수록, UN 안전보장이사회의 개입의 개연성은 더 커질 것 같다.





**참고
역사적 배경

1942년,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을 발발하여 세력을 동남아시아를 팽창해 나가 버마를 지배하고 있던 때,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의 아버지인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은 피인마나를 버마 독립군 본부의 주둔지로 선택하였다. 이 지역은 일본군과 영국군 양쪽을 모두 격퇴하고 이 나라의 독립을 굳건히 하는 본거지가 되었었다. 피인마나는 버마 독립군의 산악 수비지구요 중심적인 본거지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난다 키나우 투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