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버마에 드리운 공포정지, 단절된 민주주의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3 23:40
조회
664
버마에 드리운 공포정치, 단절된 민주주의

서론

버마 국민은 국제사회를 계속 무시하고 법치주의와 민주적 과정들을 명백히 거부해 온 비타협적인 군사정부의 철권정치 지배하에 있다. 이 사실은 1996년 11월에 행해진 SLORC(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의장, 탄쉬웬 대장의 연설에서 입증된다. 그는 SLORC이 만든 대중조직인 「연합 연대 발전 협회」(Union Solidality and Developement Association)에서 연설을 했는데 그는 그 연설에서 “우리는 미얀마에 맞는 질서 있는 민주주의를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제약 없는 행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인권과 같은 피상적인 것들에 우선권을 준다면 이 나라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상의 언급은 이전에 SLORC의 서기의 한 사람인 킨 니운트 준장이 1995년 10월 당시 유엔 미얀마 특별보고관인 요조 요코타 교수와 만난 자리에서 표명한 바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요조 요코타 교수가 정당들이 전단을 배포하는 것을 제약하는 것과 표현의 자유의 부재에 대해 질문했을 때, 킨 니운트는 “잠정적으로 그러한 활동은 이 나라에서 널리 향유되고 있는 안정과 평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는 이에 더하여 “이 나라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는 아직 적절하지 않습니다”고 답했다.
군부는 “단절과 청산”(cut and clear)전략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은 반대당의 정치 지도자들과 직접 대결하거나 종족들의 반란 요새들을 공격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전략은 반대파들의 본부를 그 지원 진지로부터 단절시키는 전술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따라 아웅산 수키와 같은 반대당 정치 지도자들을 일반적으로 직접 위협하기보다는 (11월9일에 폭동 진압 경우를 제외하고)윈 레인과 같은 그녀의 측근 인사들이나 동료들을 구속하고 괴롭히는 방식을 취한다. 수키의 매주 강연을 듣기 위해 모여드는 군중들도 역시 해산되고 있다. 더욱이 대단위 군사 행위보다는 소수 종족들의 생존에 필요한 무역로들을 차단하기 위해 보다 소규모의 공격 행동들이 진행되고 있다. 다른 군사 행동들은 시민들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들이 소요자들에게 식물이나 정보를 제고할 수 없게 마을들로부터 쫓아내어 SLORC이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캠프로 몰아넣고 있다.
SLORC의 외무부장관, 우온 기아우는 1996년 9월27일 국회 앞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즉 “버마내에서 대대적인 억압조치가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들은 근거가 없다. 현재 이 나라에 퍼져 있는 평화와 안정은 중요한 진전을 성취할 수 있게끔 해 주었다”
온 기아우가 이러한 주장을 하지만 민주 인사들과 전국민주연맹(NLD)대표들은 NLD창립 8주년 기념 대회 개최마저 열 수 없게 방해받았다.
랑군 여러 도로에서 시위한 후 1996년 12월2일 밤에 구속된 미얀마 학생들의 사례는 미얀마에 억압 조치란 없다고 한 온 기아우의 주장과 명백히 상치한다. 랑군 공과대학생 1,500-2,000명 가량이 월요일밤 늦게까지 거리를 점령하고 인 세인군 소재 공과대학 교정에서 3마일 떨어진 랑군대학교까지 행진하였다.
12월4일 외국 신문과 통신사에 근무하는 미얀마국적을 가진 자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 미얀마외신 특파원 클럽(FCCB)은 회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요미우리 신문의 사진기자 우 미요 탄씨의 감금과 구타에 관한 항의문을 발표했다. 39세의 우 미요 탄씨는 1988년 피끓는 민중 항쟁이 발발했을 때 주요한 역할을 했던 바로 그 악명 높은 론 흐텐 전투경찰에 의해 12얼3일 오전 4시에 쉐다곤 파고다에서 머리와 상체를 무수히 구타당했다. 그는 당시 경찰 차에 강제로 태워져 키야이크카산 경기장으로 끌려갔다. 그는 자신이 공식적인 기자증을 소유하고 있었고 쉐다곤 지역에 들어갈 허가를 받았음을 당국에게 확신시킨 후 이미 론 흐케인이 비상 방어선을 철수시킨 시간에야 석방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머리 부상으로 인세인 종합병원에 입원중이다.
시민들, 특히 학생들의 새로운 항거들은 SLORC과의 대결을 하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증대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그들의 공포정치는 점차 침식당하고 있다.
한편, SLORC의 전국 회의가 이미 국회 내에서 3명의 부통령을 선거하는 조치들이 승인되었다. 3인 가운데 한 사람은 군부 대표여야 한다. 대통령이 이 3명 가운데 선출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채택된 규정들은 20년 동안 계속 미얀마에서 살지 않은 사람,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 외국에서 태어난 자식의 부모들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두 번째 조치들은 다이우 아웅산 수키가 장래 미얀마에서 정치적 역할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명백하다.
경제 개혁에 관한 언어의 변동을 미심쩍은 눈으로 보고 있는 서구 국가들을 달래려는 시도의 하나로 온 기아우는 UN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첨언하고 있다. 즉 SLORC은 “중앙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에로 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제 개혁들을 추진해 왔다. 사적 투자와 국내 기업 활동이 장려되어 왔다. 과거 4년동안에 경제는 평균 82%성장률을 기록하였다. ” 그는 계속하여 이 모든 것은 국민의 고용 기회를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 나라의 생활수준의 굉장한 향상을 가져왔다“ 고 덧붙였다.
하지만 랑군 안에서의 평가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현실은 온 기아우가 색칠한 것보다 훨씬 더 우울한 그림일 뿐이다. 방문객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버마 내에서 살고 있는 약 4천600만명의 인구(신뢰할 만한 인구조사가 없으므로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가운데 5%만이 개혁, 투자 등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다. 이런 이익을 얻고 있는 집단에게는 대다수 버마인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게 현재의 제도를 개혁하려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버마인들은 소득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빈곤선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따라서 부패와 뇌물 수수의 수준이 점점 더 심각도를 더해 가고 있다. 생활 비용이 아주 높다. 예를 들어 차 한잔이 70키야트이다. 월 평균 소득은 1,000키야트에서 1,500키야트 사이이다.
버마가 미쯔이사의 원유에 관계된 외채를 갚지 못함으로써, 점점 줄어가고 있는 비축 원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있다. 1996년 9월 랑군에서의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50키야트에서 110키야트로 인상되었다. 랑군 이외 지역에서의 인상률은 더욱더 컸다.
SLORC는 최근 UN인 버마 특별보고관으로 라즈수머 랄라 판사를 지명한데 대해 국내 문제에 대한 “주제넘은 참견” 혹은 “부당한 간섭”으로 간주하고 있다.
전 특별보고만 요조 요코다 교수는 SLORC과 자신의 활동에 간섭해 들어온 것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사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