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09-02 22:54
조회
3135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심심하면 교과서문제와 신사참배, 그리고 독도영유권문제 등으로 우리들의 신경을 자극해 왔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언제나 끓었다 곧 식어버린 냄비와 같다고들 한다.
이런 우리들에 대하여 일본의 한 언론은“ ... 아이가 무리하게 어른에게 대응하려다가 그 미숙함과 유치함을 드러낸 보기 흉한 모습.... 감정적 언동만 눈에 띄어 이웃이면서도 실로 한심하다.”고 하면서 민족성 운운하며 조롱하였다.

1993년 8월, 코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위안부’를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하는 데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 배경에는, 요시미 타다아키라는 주오대교수가 1992년, ‘종군위안부’자료를 국립도서관에서 발견해, 공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마침내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종군위안부’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 흐름은 1995년 8월 일본의 전쟁책임을 인정한 무라야마 수상의 담화로 이어졌다.
그러자 1993년부터 우익 보수 매파 의원들은 ‘역사검토위원회’ 등을 조직하여 역사 왜곡을 시도하였다.
이 역사 수정주의적 우익운동은 1996년 12월에, ‘새로운 역사교과서 만드는 모임’(약칭‘새역모’)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고 수정된 중학교의 역사교과서, 혹은 공민 교과서를 출판되게 되었다. 이 교과서는 2001년 4월 3일, 문부과학성 교과서 검증에 합격하여, 일본 국내외에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 새 역사 교과서는 극히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는 거의 채용되지 않았다.

흔히들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가까운 이웃 나라이지만 정서적으로는 먼 나라라고 단정해 왔다. 극소수 국수적인 우익 수구 정객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일부 언론들의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면 그렇게 판단될 수 도 있다.
그러나 상술한 것처럼 양식 있는 학자들 뿐 만 아니라 적지 않은 정치가들 까지도 과거를 반성을 하려고 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용사마’로 대표되는 일반 국민들 가운데 일어난 한류 열풍과 눈에 띄게 증가된 시민단체나 중고등학생들의 한·일 교류 등에서, 양국은 지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가까운,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될 희망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양국의 과거 지향적인 일부 세력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발언에 대해 일본의 한 정치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이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는 말은 이상하다. 피해자인 한국이 이 입을 다물면, 일본의 보수우익을 즐겁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일본의 못된 버릇은 또 나오게 된다.”
그의 예견대로 일본정부는 이제 다시 ‘새역모’의 구상에 따라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영토교육 강화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하여 일본의 일반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고 한다.
우리는 ‘새역모’의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았던 일본의 대다수 교육자와 지식인들, 그리고, 반성과 화해의 손을 내밀고 교류를 희망하며 현해탄을 오고가는 일반 시민들의 양심도 믿고 싶다.

60~70개 학교가 일본의 학교들과 자매 결연을 맺어, 매년 상호 방문하는 등의 행사를 진행해왔다는 어느 지지체는 역사왜곡과 영토침범 행위를 단호하게 대처하기 위해 산하 각 기관과 학교 등에 일본여행 및 방문을 잠정 중지하도록 조치하였다고 한다.
이런 대응은 오히려 일본의 국수주의 세력들의 노림수에 걸리어, 선량한 일본시민들을 선동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채우는데 악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오히려 민간차원에서 참회와 용서를 통한 화해의 노력들을 계속한다면, 한·일 양국은 그야 말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될 수 있는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김경남 글 , 국민일보 2008.8.9 “지혜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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