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화해

이라크 전쟁과 한반도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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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연
작성일
2003-03-27 00:31
조회
1581
(이 자료는 3월 24일 감리교 일영 연수원에서 있었던 '반전, 평화를 위한 에큐메니칼 포럼'에서 있었던 발제 입니다. 참여자들에 의해 현시기에 대한 좋은 분석으로 평가되어 이 자료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한반도 통일정세의 향방

발제 : 민경우(통일연대 사무처장)

1. 2002년 하반기에서 2003년 초에 이르는 북미 공방
1) 북미 공방의 본질
- 탈냉전 이후 10여 년 이상 북미간에 전쟁을 방불케 하는 공방이 있어 왔다. 2002년 하반기 진행된 북미 공방은 지난 10여 년간의 북미 공방의 연장선하에서 진행되어 온 것이다. 94년 북미 기본 합의에서 미국의 경수로 제공시한이 2003년이었고 2001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스웨덴 페르손 유럽연합 의장에게 약속했던 미사일 발사 유예 시한도 2003년이었다. 2003년은 이북의 입장에서 보면 예고된 싸움이었다.
2002년 하반기 이래의 북미공방은 동북아시아의 탈냉전 기운을 제압하기 위한 미국의 정치적 도발이라기보다는 동북아시아에서 냉전 질서를 해체하려는 이북의 정치적 공세를 기본으로 이를 제어하려는 미국의 구도가 격돌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이북이 2002년 하반기를 기해 대미 공세를 시작한 데에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변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북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차피 치러야 할 격돌이라면 미국이 이라크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시점에 공방을 벌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2) 북미 공방의 전개 과정 및 쟁점
- 10월 초 켈리의 방북 과정에서 미국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궁하고 이북이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북미 공방이 표면화되었다.
* 미국은 이에 대한 증거를 아직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이북의 표현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시인한 것이 아니라 그럴 권리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이북의 전형적인 외교술이다.

- 미국은 한국,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1.14 12월분 중유 제공을 중단하였으며 12.10 이북 미사일 수출선 서산호를 공해상에서 나포하여 초기 강경 국면을 주도하였다.
이에 대해 이북은 12.12 핵동결 해제 선언에 이어 핵 봉인 및 감시 카메라 제거, 국제원자력기구 요원의 추방 등의 조치를 전격적으로 진행했으며 1.10에는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였다.
한편 미국은 2.12 유엔 안보리에 이를 상정하였다.

- 이북은 북미 직접 대화에 의한 불가침 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10.25 외무성) 이에 기초하여 첫째. 다자간 회담을 일체 거부하고 둘째. 불가침 조약 이외의 해결 방안 가령 경제 지원 수준의 중간적 해결책을 부인하며 셋째. 북미 공세의 수위를 조심스럽게 확대하고 있다.(두번에 걸친 미사일 발사, 정전협정 파기 위협 등)
반면 미국은 이라크 전쟁 이후로 상황을 늦추려 하는 한편 다자간 틀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라크 전쟁이 발등의 불이고 다자간 틀로 접근해야 불가침 조약 요구를 제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부에서 시급히 북미 대화에 착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2. 이라크 전쟁의 향방
1) 이라크 침공의 목적과 본질
- 미국의 이라크 전쟁 목적은 대체로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는 중동 지역 정치 질서에 대한 재편이다. 미국은 테러의 온상이 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원천적인 차원에서 제압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사우디, 이란 등에 친미 정권을 수립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중동 지역 정치 질서 재편의 첫 번째 타켓이다. 둘째는 이라크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 이권이다.(이에 대해서는 생략)

- 이라크 전쟁은 이미 군사력을 상실한 이라크를 상대로 벌이는 대량살상극이다. 이라크는 91년 걸프전 이래 10년이 넘는 경제 제재와 지속적인 미.영의 폭격으로 군사력을 크게 상실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은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군사적인 저항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91년 이래 진행된 경제 제재로 이라크인 200만명 특히 5살 미만의 어린이 50만명이 사망했다. 이는 이라크 국민의 10% 수준으로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희생이다.
* 이번 전쟁의 목적이 사담 후세인의 제거라면 바그다드 등에서의 시가전이 불가피하고 반전 운동이 성장하기 전에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기 위해 이라크 전역에 대해 가공할 군사력이 사용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전쟁의 목적과 양상에 비추어 보면 이라크 전쟁은 민간인의 대량 살상을 가져 올 것이다. 이미 군사력을 상실한 나라를 상대로 벌이는 이러한 형태의 전쟁은 전쟁이라기보다는 학살이다.

- 전 세계적인 규모의 반전 운동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강력히 견제해 왔다. 이로 인해 미국의 이라크 전쟁 양상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전쟁이 조기에 종결되지 않으면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전 운동에 직면할 것이다. 부시의 실각을 포함한 국제 질서 전체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전쟁이 조기에 종결된다고 하더라도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프랑스.러시아 등과의 외교적 갈등, 유가 폭등.전비 등 경제 문제, 이라크 정정 불안(북부의 쿠르드족, 남부의 시아파 등과의 갈등), 중동 전역으로의 반미 정서 확산 등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현재 상황은 부시가 전 세계적인 규모의 반전 운동에 직면하여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벌이는 정치적 도박이다.

3. 한반도 상황
1) 전쟁이 장기화되면 양상은 북미 공방의 수준이 아니라 미국의 일극적 패권주의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 진행될 것이다.

2) 전쟁이 조기에 종결되면
- 북미 직접대화와 불가침 조약을 요구하는 이북과 다자간 틀을 통해 이북의 굴복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가 정면으로 대립할 것이다.
- 위 공방의 핵심은 미국의 입장이다. 이북은 북미 직접대화를 통한 불가침 합의 이하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북미 공방의 상수이다. 이북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 상황은 전쟁 아니면 불가침 조약이다. 이렇게 보면 선택권은 미국에게 있다. 이라크 전쟁의 결과, 미국 경제의 향방, 미국 정치권의 판도에 따라 미국이 어떤 입장을 보이느냐 여부가 북미 공방의 핵심 변수이다.
-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보론)
- 올 상반기 늦어도 올 하반기 정도에서 북미 불가침 합의로 귀결될 것이다. 문제는 불가침 합의의 수준과 이북의 핵.미사일 등의 처리이다. 전자는 문서 담보, 부시 방북과 공동성명, 국회 비준 등이 있을 수 있고 후자는 형식적인 사찰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정치적 역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불가침 합의가 이루어지더도 이북이 이라크 수준의 사찰을 받아 들일 가능성은 없다. 이라크는 사찰이라기보다는 전쟁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내정간섭이었다. 문제는 이북이 핵 카드를 완전히 상실할 경우 이후의 지렛대가 없으므로 완전한 수준의 핵 사찰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견해 중 주목할만한 것은 북미 공방이 파키스탄 형태로 귀결될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는 미국이 이북의 핵을 묵인하는 대신 이의 수출을 막는 선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시사저널 최근호 남문희 기자의 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이종원 교수의 컬럼 등을 참조하기 바람)

4. 북미 공방 정치 역학
북미 공방은 전쟁 아니면 불가침 조약 체결로 귀결될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정세 분석 자체가 무의미하므로 불가침 조약 체결을 중심으로 상황을 분석해 보겠다.

1) 주한미군의 지위 문제
불가침조약은 북미 쌍방이 상호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북미간 불가침조약이 체결되면 논리적으로 이북을 적대국가, 불량국가로 지목하여 형성된 제 질서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가령 한미상호방위조약, 한미연합사, 군 작전지휘권, 첨단 무기 반입, 작전계획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북이 미국의 적이 아니라면 주한미군은 왜 주둔해야 하는가? 향후 주한미군이 주둔하더라도 그 이유를 이북과의 적대 상황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 찾아야 한다. 가령 동북아시아 또는 한반도의 평화유지군으로 지위를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의 지위를 조정하는 순간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미군 장성이 가지고 있는 현실, 주한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가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이북과의 전쟁을 가상하고 설정된 작전계획 5027, 이북과의 전쟁 상황을 가정하여 반입되고 있는 미국제 첨단 무기 등이 하나하나 조정될 수밖에 없다.

2) 경제적 측면
- 전 세계가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져 들고 있는 조건에서도 중국 경제는 8%의 고도 성장을 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과잉자본의 유입지, 생산의 거점으로서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다. 이 영향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나타나고 있다. 해외 자본이 중국에 투자하여 중국의 저임 노동력과 결합하여 만든 저가의 상품은 전 세계를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해외 자본 투자에 의해 저가이면서도 제품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이러한 부상은 전 세계 경제계의 변수가 될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중국에 대한 기술 우위가 지속되는 기간이 향후 5년 내외일 것으로 보는 충격적인 예상이 우세해 지고 있다.

- 이러한 변화에 따른 대안은 다음의 세가지이다.
첫째. 미국의 입장은 동북아시아에 군사적 긴장과 대결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동북아시아에서 경제협력 구상이 출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대안의 결론은 정치군사적으로 남북의 대치 상태가 계속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 중심의 변방 경제권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둘째.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구상은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과 동북아 경제 중심지 구상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에너지 협력 등을 통해 냉전구조를 해체하며 새로운 차원의 경제적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금융 허브냐 물류.제조업이냐 등의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의 문제점은 위와 같은 진로가 불가피하게 미국의 구도와 충돌할 것이라는 점이다.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을 못마땅해 하고 있는 미국이 군사분계선을 가로질러 가스관, 송유관이 묻히는 것을 허용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셋째는 북러를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 구상이다. 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북러간 경제협력은 철도.도로 연결, 에너지 협력, 시베리아 개발(임업,수산업,농업 등), 이북 산업시설에 대한 기술 협력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발상은 동북아시아에 대규모 새로운 경제협력권을 창출하는 것으로 다분히 탈미적인 색책가 농후하다.
이외에 중국의 경우 중국은 2001년 말 WTO 가입과 서부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구상의 기조는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경제협력 구상은 아세안의 화교자본과의 결합이다.
일본의 경우는 두가지 입장이 공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북러가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경제협력과 결합해야 한다는 현실적 입장과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을 기본으로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9.17 평양 방문은 전자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 위 모든 진로의 핵심적인 변수는 미국의 입장과 태도이다. 주한미군을 지렛대로 하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어느 수준에서 조정되느냐 여부가 동북아시아에서 형성될 경제 협력의 폭과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북미 공방의 결과는 미국의 패권적 지위의 수준과 관련된 문제이다.

5. 21세기 민족의 진로
2003년 전개될 대결은 대체로 다음의 세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유일 패권 노선에 대한 입장과 태도이다.
농업시장 개방, 교육시장 개방, 금융 허브 구상 등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영속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수립된 것이다. 한편 이라크 파병 결정 또한 미국 중심의 패권 질서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국익을 수호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미국 중심의 정치경제군사적 패권 질서가 영속하고 이를 인정하는 기초위에서 문제를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거부하는 기초위에서 문제를 접근할 것인가는 문제 해결의 방향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미 우리의 환경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편입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입장과 태도에 기초하여 해결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둘째는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를 둘러 싼 각축이다.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의 반전 운동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부시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조기에 종결된다고 하더라도 부시가 이북을 상대로 공세적인 압박 정책을 구사할 내적 지구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반면 부시가 지불해야할 댓가는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상대적인 차원에서 이전 시기의 반전 운동이 전쟁을 막아내야 한다는 수세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이후의 운동은 부시의 패권 정책을 근저에서부터 무너뜨린다는 공세적인 측면이 강해지고 있다.
셋째는 6.15 공동선언을 둘러 싼 각축이다.
우리 민족의 진로는 미국식 일극 패권주의가 타격을 받는 환경위에서 6.15 선언에 기초한 전민족적인 정치 역량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양상이 될 것이다. 6.15 선언에 기초하여 형성될 전 민족적인 역량은 1. 투기 자본의 유출입을 통제하고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을 차단하고 농업과 기간 산업을 보호 2. 비정규직 노동자, 농어민의 생존권, 청년실업, 200만의 극빈자를 구제 3. 전면적인 남북경제협력과 동북아시아 경제협력 구상을 통해 새로운 경제적 비젼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참고) 미국의 대이라크 경제 봉쇄에는 분유, 냉동차, 화학약품 염소, 연필 등이 포함된다. 분유에는 탄저균의 재료가 있고, 염소는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입이 금지된다. 냉동차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돗물을 소독하는 데 쓰이는 염소가 없어 이라크의 상수도 처리 시설이 파괴되어 이라크 어린이들이 콜레라, 이질 등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냉동차가 금지된다면 국제 지원 단체가 지원하는 의약품, 식품들을 해당 지역까지 안전하게 운반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보론)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이북 전역에 대한 공중 폭격과 함포 사격이 진행될 것이다. 아마도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지상에 구축된 모든 산업 시설을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이북의 모든 군사시설은 대부분 지하에 있다. 미국이 지하 군수 시설을 파괴할 군사력을 가지지 않는 한 미국이 조기에 이북을 제압할 가능성은 없다.
이북의 반격은 두가지로 예상된다. 하나는 전방에 배치된 1만여문의 대포이다. 군사분계선에서 서울까지는 40km 떨어져 있다. 이북 대포의 사정거리안에 2500만명의 남측 인구와 37000명 주한미군 대부분이 주둔하고 있다. 이들은 이북 대포의 사정거리안에 있다. 수도권에 과잉 밀집된 제 시설을 고려하면 이북의 대포 공격만으로도 서울은 삽시간에 도시 기능을 상실한다. 다른 하나는 미사일에 의한 일본 공격이다. 주일 미군은 약 4만명으로 대부분 해,공군,해병대로 구성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주일 미군이 개입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동북아에 이미 배치된 미군이외에 50만~70만명 정도의 미군이 필요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북의 미사일 중 노동 계열은 일본에 배치된 미군 및 일본 전역을 사정거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북이 즐겨 쓰는 표현 중에 '전쟁에 자비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북 전역이 황폐화되는 조건에서 서울과 동경이 무사할 것으로 보는 견해는 순진한 것이다. 당연히 이북제 노동 미사일은 한국과 일본의 주요 도시 및 원자력 발전소를 겨냥하여 발사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전쟁 양상은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이 초정밀 첩보무기를 개발하여 이북의 전략 지도부를 조기에 찾아내 이를 지하까지 파고들어가 정확히 궤멸하는 수준의 무기 체계를 가지고 있고 적어도 이북의 미사일을 완벽히 방어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기 이전에는 미국이 전쟁을 선택할 가능성은 없다. 악당의 특징은 잔인하고 냉혹하지만 계산에 밝다는 것이다. 부시를 비롯한 현재의 미국 지도부가 위험하다는 것은 위와 같은 시나리오를 실제로 현실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직은 공상의 영역이다.
94년 상황은 이러한 딜레마를 잘 설명해 준다. 94년 당시 전쟁 모의실험 결과 3개월만에 미군 사상자 10만, 한국군 사망자 49만명이라는 충격적인 결과에 직면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군사적 패배로 불리는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를 전부 합치면 5만 8천명 수준이다. 10만이라는 사상자는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닌 것이다.
94년과 비교하여 클린턴에 비해 부시의 호전성이 강한 것이 문제라면 이북의 군사력 강화(일본이 공격 범위안에 있음), 중러, 한국 등의 외교적 견제 등은 전쟁 억지 요인이다. 94년 당시가 세계 경제가 안정적이었다면 현재 상황에서 중국 등이 개입된 전쟁이 발발하면 세계 경제 전체에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보론)
90년대 후반 이래 동북아시아에는 다음의 세가지 변화의 기류가 태동하고 있다.

1. 정치군사외교적인 차원에서
90년대 초중반 형성된 동북아시아의 국제 역학은 한미일 군사동맹이 이북을 압박.포위하고 중러가 미국의 패권 정책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던 형국이었다. 이런 가운데 남북관계는 긴장과 대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러한 구도의 붕괴는 대체로 99년 중반기부터 시작된다. 99년 6월 김영남 위원장의 중국 방문, 조러관계 개선 등으로 조중러간 연대가 강화된 점, 99년 8월을 계기로 북일 수교회담이 재개된 점, 이북이 유럽 등을 포함한 전방위 외교를 펼치기 시작한 점 등이다. 이러한 변화의 정점에 있었던 것이 2000년 6.15 선언과 10.12 조미 공동코뮈니케이다.
부시 정부의 출범으로 조중러간 연대는 유지된 반면 남북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조일 관계는 양 극단을 오가고 있다.
결국 남북관계 개선, 북일 수교로 상징되는 동북아시아의 탈냉전의 키는 북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 경제적인 차원에서
1) 97년 아시아 통화위기가 발생하면서 동북아시아 국가간의 경제협력 구상이 재부상하기 시작하였다. 한중일+아세안간의 논의가 축적되면서 다양한 경제협력 구상이 모색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WTO 가입과 서부 대개발 등으로 동북아시아 경제협력 구상에 소극적이다. 중국은 WTO 가입에 따른 아세안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중국+아세안을 묶는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시아 에너지 협력, 동북아시아 개발 은행 설립 등을 핵심 정책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중심지 국가 건설을 제창하고 있다.
일본은 90년 후반 AMF 구상, 미야자와 플랜 등으로 적극성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02년 9.17 조일 정상회담은 조러가 중심이 된 유라시아 경제협력 구상에 합류하려는 고이즈미의 결단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를 힘있게 추진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드러내고 있다.

2) 90년대 후반 이후 눈부신 발전은 조러간의 경제협력의 급부상이다. 양국은 철도도로 연결, 에너지 협력(시베리아 유휴전력의 사용, 원전 건설 등), 시베리아 개발(농업.임업.수산업 등), 이북 공장 설비의 현대화에 대한 기술 지원 등이다.
이북은 조러간의 경제협력을 남북관계 접목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보여 주고 있는 친북적인 태도와 중국의 경계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3) 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을 계기로 유럽통합시장을 건설한 유럽연합은 93년경부터 아시아 지역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96년 시작된 아셈은 유럽과 아세안의 대륙간 대화로 주목의 대상이다. 2000년 유럽연합과 이북과의 수교 열풍은 유럽연합의 아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3. 미국의 세계전략과 동북아 정책
1) 90년대 중반 이래 출현하기 시작한 미국의 21세기 세계 전략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 미국의 유일 패권을 확고히 지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서는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첨단 무기 개발 특히 실전용 소형 핵 폭탄, 군사비 지출 등), 러시아.중국 등을 제압.견제하며(러시아와의 전략핵무기 감축, MD), 테러단체.불량국가에 대한 선제 공격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외교보다는 군사력을 위주로 호전적인 세계 전략은 첫째. 유엔 등 다자기구를 무시한 일방주의 둘째. 이북과 중동의 정치 질서에 대한 인위적인 전복(이라크를 시작으로 동북아시아의 이북, 중동의 사우디.이란 등이 타켓이다) 전략으로 세계 질서에 파란을 불러 오고 있다.

2) 동북아시아의 관점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첫째.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대중국 강경정책과 일본과의 동맹 정책 강화와 둘째. 전반적인 군사력 재편 움직임이다.
클린턴 시절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부시 행정부 초기 경쟁 관계로 수정했던 미국은 9.11 이후 중국에 대해 다소 신중한 접근을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인권.대만.일본 문제 등에서 강경 기조 위에 있다. 반면 미일 동맹을 미영 동맹 수준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하에 일본의 군국주의화는 위험수준을 넘어 서고 있다. MD 체제 편입, 테러대책 특별법, 유사법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은 중무장한 군대를 전진배치하던 전략을 수정하여 경량화된 첨단 전력을 중심으로 미군 전력을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한, 주일 미군을 중심으로 전진배치된 형태에서 일본, 필리핀, 괌 등을 연결하는 중국에 대한 원거리 포위망을 구축하려 한다. 이렇게 되면 중무장한 지상군 배치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미 군사관계가 재조정될 것이다. 최근 주한 미 지상군 재비치 움직임은 이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전력 재배치 전략은 남사군도 분쟁 등 서태평양 지역을 장악하려는 기도와도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