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세계교회협의회 자료1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6 01:37
조회
1433
세계교회협의회 자료1(2005년 5월 13일)

선교와 폭력 - 모호한 관계

아테네에서 열리는 세계선교대회의 참가자들은 폭력이 ‘멋지다’는 인상을 떨쳐버리고 있다. 이들은 그 대신 지금 선교와 폭력의 모호한 관계를 밝히려 한다. 하지만 해결책은 간단하지 않다.

세계선교와 복음화를 위한 대회의 한 회의에서 5월 12일, 목요일에 열렸다. “폭력은 멋진 것이 않으며, 그 어떤 매력도 갖고 있지 않다”고 남아프리카 출신의 장로교 여성 선교학자인 티니코 말루레케(Tiniyko Maluleke)는 주장한다. “폭력을 상황에 따라 호감을 갖게 하려는 우리의 문화 속에 숨어 있는 현재의 흐름에 맞서야 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말루레케는 젊은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그 중에 젊은 참가자들이 회의에서 전반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의 형태들을 볼 것이다. 경제적 지구화로 생기는 폭력, 늘어나는 무기생산 확대로 인한 폭력, 환경파괴의 폭력 또는 여성에 대립적인 태도로 인한 폭력.

폭력이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비올라 라헵 같은 팔레스타인 출신의 여성 신학자는 많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폭력과 24시간 매일 배척당한 사람들을 지나칠 수 없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그녀는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상황을 설명한다. “교회의 임무는 폭력의 원인들을 밝히는 것만이 아니다. 교회는 폭력을 능동적으로 그리고 비폭력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깊게 뿌리박힌 모호함

선교와 폭력이라는 모호한 관계에 대한 복합적인 질문을 다룬 회의에서 이번 “폭력극복10년: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회”(2001-2010)는 중간기의 의미로 되새겨졌다.

1998년 하라레에서 개최된 WCC대회에서 한 젊은 독일 대표가 폭력극복 10년을 처음 제안했던 장면이 비데오로 방영되면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7년 후 메노파 목사인 페르난도 엔스(Fernado Enns)가 재차로 WCC총회에서 이것을 새롭게 제창했다. 교회들은 “오늘의 위험스런 세상”에서 폭력을 극복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참다운 고백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교회는 흔히 권력 앞에 무릎 꿇고, 불의와 폭력을 신학적으로 정당화 해왔다. 교회의 선교가 세상의 폭력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교회전통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는 주장 한다.

콜롬비아 출신의 메노파 여 목사인 알릭스 로자노(Alix Lozano)와 몇몇 다른 사람들은 심지어 선교와 폭력이라는 개념은 서로 맞바꿀 수 있어 왔다고 말한다. “콜롬비아에 사는 우리에게...폭력(칼)이란 선교 또는 십자가와 짝을 이루었다”고 로자노는 말했다고 한다. 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체류허가를 미리 받지 못했기에 그녀의 부재중에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이 증언되었다.

그리스도교 증언과 폭력 사이에는 신앙의 근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복잡한 관계가 놓여 있다. “우리는 성서의 본문들을 비판적으로 탐구해야 합니다. 그 속에는 폭력에 관한 설명과 하느님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상이 폭력을 정당화시켜주고 그래서 우리를 도전합니다”라고 라헵은 설명한다.

폭력극복10년 같은 행사의 발의의미는 이렇다. 이로써 교회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신학적 태도를 제거하고 폭력을 행하는 대신 성서 안에서 표현되는 이것을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루레케는 덧붙인다.

두려움과 열정

왜 그리스도인들은 폭력에 굴복하는가? 두려움 때문이라고 카나다 출신의 메노파 여 목사 아네트 플레네르트(Janet Plenert)는 대답했다. 그녀 역시 이 토론회에 참가했다. “두려움은 폭력을 유발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원인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두렵기에 자기보전, 민족적 우위성 그리고 국가의 안정을 위한 설교를 듣습니다.”

두려움은 상이한 방식으로 구별된 상황에서 작동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두려움은 심리적인 무기를 상상하게 만듭니다”라고 라헵은 말한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폭력이 늘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두려움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토론의 대화가 이 문제에 어떤 최종적인 해결을 줄 수는 없었다. 요컨대 애초부터 이 대화가 모든 문제를 밝히는 목표를 염두 하지는 못했다. 실질적인 모호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열정이 필요한 것이다. “폭력극복 10년은 교회로 하여금 재차로 폭력문제를 해결하는데 열정적인 참여의식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루레케는 대회에서 설명했다.

그녀는 참가자들에게 이러한 열정이 “가장 큰 폭력으로 인해 인간들이 배척되는 곳에 하느님의 형상은 이들을 가장 안전하게 해 준다”사실에 기인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라자노는 자신의 개인 증언에서 설명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가난한 자들, 궁핍한 자들, 쫒기는 자들 그리고 추방된 자들 편에 계신 하느님의 의지에 굴복할 때”, “하느님의 선교란 폭력의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대회 시작에 폭력의 상징물을 운반한 젊은이들이 타오르는 촛불을 회의 장소로 옮겼을 때, 하느님 앞에 소망들을 모았고 대회의 주제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성령이여 오소서, 치유하고 화해케 하소서”
(글쓴이 Juan Michel는 WCC방송담당자이며 아르헨티나에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라 플라타(La Plata)에 위치한 개신교교회 동역자이다)(옮긴이: 이 석규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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