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지하드냐 십자군이냐? 그리스도인과 모슬렘 간에 긴장이 완화될 수 있을까?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6 01:39
조회
1397
지하드냐 십자군이냐? 그리스도인과 모슬렘 간에 긴장이 완화될 수 있을까?(Alexander Belopopsky, 2005년 6월 14일)

지난 몇 년간 바그다드에서 보스니아까지 일어난 소식을 전하는 대중매체들이 문명들의 충돌에 대한 예측을 더욱 강하게 했다. 이러한 충돌은 종교의 부조리에 따라서 나타난다. 지하드나 십자군 같은 단체의 개념들이 공공의 담론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많은 사회들에서 특정한 신앙공동체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있다. 그 동안 사람들은 그리스도인과 모슬렘이 서로 대적해야 하는 저주를 받은 인상을 갖는다.

이러한 넓게 확대된 관찰에도 불구하고 모슬렘과 그리스도 지도자들에 관한 노선이 존재한다. 이들은 충돌을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사물에 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 중 몇 몇은 종교-상호간의 대회에 관해 논의한다. 이 대회가 곧 세계교회협의회가 올 해 6월 초에 제네바에서 개최한 행사이다.

>우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현재의 상황은 모든 종교공동체에게 비판적으로 내 보이는 시간이다. 양 측에게 커다란 불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리스도교-모슬렘 간 관계는 빈번히 경쟁하는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렇기에 양 측은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야한다”. 제네바에서 이슬람학을 가르치는 타릭 라마단(Tariq Ramadan)은 보충해서 말한다. “종교에 관한 이러한 이해는 그렇지만 피상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함께 협력하기 위해서 다른 길을 모색해야한다”.

싸이드 모하메드 알리 압타히(Sayed Mohammed Ali Abtahi)는 이란의 전 부총리였으며 이란의 카타미(Khatami) 총장의 가까운 고문이다. 그는 라마단을 책임지고 있다. “모슬렘과 그리스도인 배후에는 길고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 이들은 서로 여기에서 폭력으로 맞부딪치고 있다. 이러한 충돌은 아직도 이들을 서로를 맞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상황은 변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한다. 현재의 충돌은 신자들 간의 그리고 국민들 간의 것이 아니다.”

>“전지구화 된” 충돌

“전 세계에서 모든 다른 것처럼 충돌과 대립적인 자각이 확대되고 있다. 이것이 문제다. 타렉 미트리(Tarek Mitri)는 말한다. 그는 레바논 출신의 이슬람 전문가이자 그리스도교 사회학자이다. 그는 이 전에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종교-상호간 대화를 위한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레바논의 과도정부에서 일했다.”

“이슬람 세계의 이념적인 사고모형은 서방세계를 자기중독증적이고, 유물론적이고 지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와 상응해서 이슬람은 서방에서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이고 팽창주의적으로 평가된다”. 미트리는 설명한다.

지구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지구적으로 이주민이 늘어나는 시대에 그러한 생각은 매우 쉽게 적대성을 일으킨다. 그것은 “지구화한” 충돌이라는 결과로써 틀에 박히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트리는 2001년 9월 11일에 뉴욕에서 일어난 사태의 전 세계적 시청효과를 제시한다.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에 미군투입과정에서 이웃한 파키스탄의 소수 그리스도교인에게 보복의 위협을 받게 한 사실도 제시한다.

모하메드 알리는 자신의 국가적이고 종교적인 책임과 나란히 개인 웹싸이트를 운영하고 있다(www.webneveshteha.com/en). 그는 제시한다. “의사소통매체의 힘은 종교 지도자를 긍정적으로도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의사소통기술학의 변화는 질문에 대답하도록 모든 사람을 강제한다. 현대의 상황 아래서 우리는 대화하도록 강제 된다”.

>소외과정에 대응하기

대회참여자의 시각에 따르면, 모든 종교에는 대립해서 경계 짓기에 대응하고, 대화와 이해를 위한 공동의 마당을 마련하는데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이 있다. 어떻게 이러한 관심을 방해하는 생각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이 있다. 서로 간의 소원의 과정에 맞서고 충돌을 “탈-지구화”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대립적인 이해 그리고 공통성이 동시에 생겨난다. 공통성은 공동의 삶을 위한 근거를 세워준다. 미트리는 말한다. “특수한 지역적인 충돌요인으로 세심한 작업은 쉽게 해결하게 한다”. 종교공동체의 지도자는 다른 종교들의 충돌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과 모슬렘은 자신의 공동의 토대와 관심을 인지해야 한다. 미트리는 말한다. “만약 우리가 평화, 정의 그리고 화해를 위한 기본조항을 비판적인 참여의 토대를 위해 만든다면 우리는 우리의 동력을 모든 인간을 위한 행복, 존엄 그리고 평화를 공동으로 증진시키는데 사용할 수 있다. 원래 이러한 기본조항은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동의 근거를 다시 세우기

라마단은 다음과 같은 입장에 신뢰한다. 그리스도인과 모슬렘은 함께 일하고 시민사회와 자신들의 신도들과의 고유의 담론에서 비판적인 도전을 제기한다는 것. 그래서 민중들의 참다운 욕구를 더 잘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 스스로도 정신적으로 굶주리고 있다. 우리는 역동적으로 진행시켜야 한다. 이것은 곧 지역의 인간과 공동체를 의지하고 우리 사회에서 가치의 전달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교의학적인 종교로의 복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종교는 공공의 영역을 수용한다. 중요한 것은 가치와 도덕적인 인식과 지식을 이동시키는 결합이다. 질문은 이렇다. 보편적인 가치를 토대로 한 윤리 위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서 어떤 것을 밝혀낼 수 있을까?

모하메드 알리 압타히는 실제적인 상황에 대한 실천적인 대답을 구하고 있다. 그는 생각한다. 세계에 종교-상호간 대화센터는 자신의 임무를 더 잘 연합해야 하고 중복을 피해야 한다고. “종교-상호간 대화는 고유한 신앙 안에 내재된 깊은 결합과 모순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지만 창출할 수 있다. 어떤 최소의 가치가 모든 종교에 공통적이고 만인을 위해서 필수적인지. 그것들은 신, 사후세계 그리고 정의 등이다”.

라마단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힌다. 종교-상호간 대화는 보통 신학적이거나 사회정치적인 주제에 집중한다.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도전 앞에 도전을 함께 겪고 있다. 우리 세계는 점점 변해가고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창조적인 진전을 요청한다. 이 도전은 우리의 정시적인 교훈을 현실과 묶어 준다. 우리는 이론적으로보다는 세상과 마주해서 더욱 실천 지향적이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나의 판단으로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 우리는 공동으로 나누고 기여하고 이로써 서로 잘 익숙해져야 한다.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이러한 진전이 주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바른 질문을 하도록 함께 도울 수도 있다.(알랙산더 벨로포프스키는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 정보 팀의 조정자이다)(www.wcc.-coe.org/pressreleasesge.nsf/index)(옮김: 이 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