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나가사키의 종-VIII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8-07-25 21:41
조회
1986
9.미츠야마 구호대-2

15일. 성모승천축일에 키바[木場] 천주당(현재의 미츠야마 교회)에서는 새벽 미사가 정해져 있지만, 폭음이 이미 하늘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에, 식은 중지되고, 시미즈 신부님은 성체를 서둘러 가지고 뒤쪽의 방공호로 옮겨 갔다. 우리들은 그때부터 곧 이누즈키[犬繼]지구의 치료에 착수하였다. 오늘 우리들은 점점 체력이 다했다는 느낌이 와, 어쩌면, 우리들이 제일 중상자이지 않을까 하고 말하는 환자에게 답변 한 마디 하는 것조차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정도다. 죽어가는 사람이 속출한다. 오늘은 사위가 부상자로 산을 이루고 있다.
아침 일찍 대학본부에 식량보급을 받으러 나갔던 장로가 다시 저녁 일찍 허둥지둥 돌아 왔다. 쌀부대와 된장통과 통조림 등은 아주 환영받는 분위기였는데, 그 다음 입에서 나온 정보라는 것은!
“전쟁은 끝난 것 같어!”
“.....그렇다면, 조건은?”
“무조건 항복, 포츠담 선언 전면 수락.”
일동 말없이 잠잠하다.
“그렇겠지.” 내가 말했다.
“시내는 대혼란입니다. 그럴 거다, 라고 우겨대는 자와 정말일까 라고 말하는 자들. 정오에 중대방송이 있었습니다. 찍-찍 하는 소리에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짐은....’라든가 ‘짐이...’라는 말씀이 이따금씩 섞여 나와, 저것은 폐하 그분의 목소리라고 하는 자도 있고, 그럴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헌병대가 트럭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정오의 방송은 적측의 선전방송이니 믿지 마, 마지막까지 본토결전이다, 하고 소리치기도 하여, 무엇이 무언지 통 알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말을 하였다고 하여, 곁에 있던 청년에게 야단맞은 사람도 상당히 많은 것 같았습니다.”
모두 기분이 언짢아져, 입을 다물고 상처를 치료하러 간다. 머릿속에는 공차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다. 치료를 끝낸 손을 씻으니 오늘도 또 10시였다. 장로가 짊어지고 온 깡통으로 간단한 저녁을 마쳤다. 위장은 비어있지만 맛이 나지 않는다.

16일. 시한 원자 폭탄이 떨어졌다. 작은 우라늄탄이었다. 시계가 장치되어 있어서, 째깍 째깍하고 소리를 낸다. 5분이 지나면 폭발한다. 그러나 이곳에 떨어져 있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나는 애가 탔다. 이것을 퇴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이 손에 죽창을 쥐고 있다. 이것으로 나는 에잇 하고 소리치며 찔러 봤다. 죽창은 아무런 효과도 없이 힘없이 불어졌다. 그 옆에 죽창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것을 주어 찌르고, 또 주어 찌르고 하였지만 원자폭탄은 단단하여 창들은 힘없이 부러지고 만다. 나는 마침내 애간장이 타, 에이, 얏, 에이, 얏 하고 찌른다. 숨이 가빠지고, 땀이 뻘뻘 흘렀다. 폭탄은 마치 폭발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이미 공포의 심연까지 떨어져 내렸다. 쾅 쾅 하고 굉음이 울린다. 번쩍 하고 빛났다. 확 하고 얼굴에 광선이 와 닿았다. 나는 당했구나 하고 소리쳤다.
“부장선생님, 부장선생님, 괜찮으셔요?”
여성부장님의 얼굴이 나의 동그랗게 뜬 눈앞에 있었다. 마매 짱이 덧문을 열었기 때문에, 내 얼굴에 아침햇살이 비추었다.
“아아, 열이 좀.” 여성부장님이 내 얼굴에 손을 대보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주었다. 일어나려 했으나 나는 현기증을 느꼈고, 다시 오른 쪽 다리가 아파 움직일 수 없는 것을 느꼈다. 여성부장님은 다리를 조사해 보고는 “아아, 상처가 모두 곪아 있네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 말씀을 않으셨어요? ” 하고 나무랐다. “전쟁이니까요. ” 하고 나도 지지 않고 대답했지만, 오늘은 일어나지도 못하겠다. 모두가 내 상처를 치료한다든가 주사를 놓는다든가 하다가, 카와타이라[川平]쪽으로 나갔다. 츠바키야마 군이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시내로 내려갔다. 나는 홀로 신음하면서, 꾸벅꾸벅 졸며 집지키기 역.
“부장선생님!”
츠바키야마 군이 돌아 왔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신문지 한 장을 나에게 건낸다. 나는 그것을 받으면서 슬쩍 보고 말았다. 결코 보아서는 안 되는 문자를, 이 수년 간, 이 문자를 보지 말라, 하고 싸움을 계속하여 온 문자.
“폐하께서 종전을 결단하셨다.”
일본은 패하고 말았다.
왁! 하고 목소리를 높여 나는 울기 시작하였다. 눈물은 넘쳐흘러 코를 막았다. 20분, 30분,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기를 계속하였다. 눈물은 말랐지만, 역시 흐느껴 울고 있었다. 츠바키야마 군도 다다미에 쓰러진 채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고 있다. 저녁 빠른 시각에 구호에 나갔던 동아리들이 돌아 왔다. 그 얼굴을 보고 다시 나는 왁 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운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해가 지고, 달이 떴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그러한 채, 밥도 짓지 않고, 차도 마시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유와 같이 하얗게 흐려져 텅 빈 것 같은 머리를 눈물의 바다에 잠군 채, 울기를 계속하다가, 주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져, 잠 속으로 빠져 들고 말았다.

17일.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남았구나.” 미닫이를 열고 산을 바라본다. 미츠야마는 태연하게 옛날과 다름없고 흰 구름이 오고가는 것 마저 깨닫지 못한다. 영고성쇠(榮枯盛衰), 또한 한 조각의 구름인가, 신국불멸(神國不滅)이라는 부동의 신념은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맑은 여름 아침의 하늘은 방자하고 거리낌 없이 날아다니는 미국 비행기에 완전히 맡겨 버리고. B29의 깜짝 놀랄 만한 기체가 미츠야마 산을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날아 사라졌다.
이미 전쟁은 끝난 것이다. 우리들은 진 것이다.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어 딩굴며 지내자 하고, 아침식사를 끝내고 모두가 데굴데굴 이리저리 구르며, 구름을 보고, 숲을 보고, 비행기를 보고 있었다. 전혀 무엇인가를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찻잔도 접시도 그대로 이로리 옆에 늘어놓고 있었다.
환자로부터 심부름하는 사람이 우리를 불으러 왔다. 나라가 망했는데, 환자는 무슨 환자야. 오늘은 일억이 울고 있는 것이다. 한 두 사람의 환자의 생사가 별 문제인가, 그런 환자를 도와준다하여, 오늘 일본이 다시 일어 날 수 있을 것도 아닌데. 거절해, 거절해, 박정하게 거절하고 만다. 오늘은 모두가 울컥하여 무엇이 있다면 싸움을 걸고 싶은 기분이 되어 있다. 심부름 온 사람은 아아 그렇습니까, 하며 힘없이 말하고 풀이 죽어 돌아갔다. 나는 누은 채, 쓸쓸한 그의 뒷모습이 양하(?荷; 생강과의 여러 해 살이 풀-역주) 밭 가운데로 사라져 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 나, 마매 짱에게 지금 그 심부름 온 사람을 다시 불러 오도록 부탁했다. 심기가 일전하였다. 한 사람의 귀한 생명이야말로 돕지 않으면 안 된다. 나라는 패했다. 그러나 부상자는 살아 있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의료구호대의 사명은 남아 있다. 일본은 망했다. 그러나 의학은 존재해 있다. 우리들이 할 일은 지금부터이지 않을까? 국가의 흥망과는 관계가 없는 개인의 생사야 말로, 우리들이 원래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적군과 아군의 구별은, 본래 적십자에는 없는 것이다. 일본이 개인의 생명을 너무 간단하게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한 꼴을 보게 된 것이 아닐까? 개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여기에 나의 설 곳을 세울 하나의 초석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기기 위한 부상이었었는데, 지금 패하고 부상당하여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무엇보다도 잔혹한 비탄의 못에 빠뜨려져 있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할 사람은 우리들 말고는 없다. 우리들이 그렇지 않으면, 하면서 비칠비칠 일어났다. 그렇다면 나도, 하며 모두 일어났다. 활기가 우리들 가운데 다시 가득 차오고, 안면피부가 저절로 긴장한다. 전쟁이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핑계 없이 잘하자, 라는 그런 강요받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사람은 우리 말고는 없다고 하며, 스스로 나서서 나왔던 것이다. 온 몸은 말할 것도 없이 피곤하고 또 피곤하지만, 간호를 태만하게 하지 말자고 결심을 하자, 부상의 통증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파란 별의 마크도 선명하게 전투기가 머리 위를 스치듯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큰 집단을 이루어 길을 걸으면서, 미국기가 날아 갈 때 마다, 의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18일에는 연합군 상륙, 부녀자는 피난하라는 선전물이 날아다니고, 가재도구를 짊어진 일본인들이 허둥지둥 달리는 둥, 애처로운 것인지 우스운 것인지 형용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그 후 몇 주간인가 항복후의 혼란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주변에 소용돌이를 쳤다. 우리들은 천애무일물(天涯無一物), 빼앗길 것 하나 없이 단지 도움을 일밖에 없는 많은 수의 부상환자들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순회 진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동해보다 아침 해가 먼저 떠오르고 아침구름 높이 솟은 후지산으로 상징되는 일본은 멸망하였다.
야마토[大和] 민족은 최저의 나락에 밀리어 떨어뜨려졌다. 우리는 살아서 수치를 당할 뿐인 것이다. 원자폭탄으로 이 세상을 하직한 친구들이야 말로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들의 내적 고민은 깊어갔다. 매일,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달빛이 밝은 초저녁에는 녹음 속으로 나와, 뒷문 밖의 산차화(山茶花)에 내리는 비소리가 들리는 밤에는 이로리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용기를 내 보이며 토론을 한다. 우리들의 갈 길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그러나 낮에는 세상의 혼란으로부터 초연하여, 변함없이 한 사람의 생명을 문제로 하여 진료에 전심했다.
공포스러운 원자병은, 계속하여 우리들의 환자 가운데에, 혹은 건강했던 난민들 가운데에, 그리고 우리들 자신에게도 발현하였다. 그 어떤 증상은 이전의 방사선실험에서 예상되었던 바였는데, 오히려 우리의 예측이 적중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기분마져 들었지만, 어떤 병상(病狀)은 예상외의 시기에 홀연다발(忽然多發)하여, 우리들을 곤혹시켰다. 우리들은 지금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이 10월 8일까지의 2개월 동안, 미츠야마 구호반을 개설했던 것이다.
반원은 하나 둘 병상에 쓰러졌다. 원자폭탄의 상처와 과로, 영양부족 등은 우리들의 체력을 극도로 소모시켰다. 시선생은 백혈구가 2분의 1로 줄어들었다. 모리우치[森內] 군은 일반(溢斑)이 생겼다. 여성부장은 머리가 빠졌다. 쓰러진 사람은 끙끙거리며, 빈방을 지키고 있었다. 진료를 하고 돌아 온 친구들이 철야를 하여 간병하여 주고, 새벽이 오면 다시 작열하는 계곡의 길을 , 하루 평균 8Km의 거리를 변함없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 지구에서 저 지구로 순회하였던 것이다. 누어있던 자가 겨우 회복하여 일어 난 때에는, 간호했던 친구가 열이 나 쓰러졌다.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주사를 주고, 주사를 맞고, 목이 마르면, 멀리 골짜기에서 바윗물을 받아 왔다. 밥이 맛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환자의 집에서 받은 두 개의 돌배를 호주머니에 넣어 돌아왔다. 주사약을 가지러 왕복 60리의 산길을 걸어 나가사끼까지 나갔다.
나는 9월 20일에 위독해져, 완전히 절망상태에 빠졌다. 원자병이 발현하여 고열이 1주일간이나 계속되었지만, 히다[飛田]라고 하는 산 위의 취락에서 왕진의 요구가 와 어쩔 수 없이, 가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름 없는 한 시민을 위해 받치는 것이야 말로 참 생명의 희생이지 않을까,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나서 보았는데, 발이 옮겨지지 않아, 도중 카와토코[川床] 부락의 준신[純心] 수도회의 참호 안의 숙사에서 쉬었는데, 원장님으로부터, “전 몰라요, 몰라, 그렇게 늘 무리하니까...”하고, 주의를 받으며, 겨우 왕진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겨우 당도하자마자 덜컥 바닥에 누어, 그때부터 돌을 골짜기에 차 떨어뜨린 것 같이 병세가 진행된 것이었다. 괴로운 혼수에서 문득 제정신으로 돌아와 보니 호흡이 이상하다. 스스로 내 호흡을 들어 보니, 시엔스토크 형이 아닌가? 임종 수 시간 전에서부터 시작되는 특별한 호흡이다. 나는 “시엔스토크로구만.” 하고 말했다. 배게 맡에 앉아 있던 사람은 토미다[富田] 선생이었다. 원래 교실에서 연구 중 소환되었었는데, 어느 새인가 와 주신 것이다. 선생은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며 “아하”하고 말씀하셨다. “먼 거리를 선생님, 죄송합니다.”하고 나는 손을 뻗었다. 모리다[森田] 여성부장 선생의 얼굴이 보였다. “선생님, 괜찮으시니까, 안정하고 계셔요.”하고 여성부장님은 힘주어 말하며, 팔에 주사를 놓아 주었다. 이 고통의 정도로 판단한다면 코라민 주사인 것 같다. 그렇다면 맥박도 약할 것이다. 가슴 속에 공차(空車)가 회전하는 것 같은 불안한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여성부장님이 괜찮다고 말해 주었으니까 괜찮을 것이지. 머리도 움직이지 못하고, 눈도 뜰 수 없으나, 웬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소곤소곤 말을 한다든가, 웅성웅성 소란이 일어난 것 같은 기척이 있다. “시선생님은?” 나는 힘없이 빠져 물었다. 여성부장님이 “ 지금 잠시 여기 안 계신데, 곧 돌아오실 것예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래요?“ 라고 말하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하여 또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시선생은 이 시기 나를 돕겠다는 일심으로 고야노[古屋野]교수를 방문하기도 하고, 초 교수에게 묻기도 하고, 가게우라[影浦] 교수에게 구걸하기도 하여, 온갖 지혜와 약품 등을 구할 양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종걸음으로 돌아 다니셨던 것이다. 나의 증상에 대해 물으니 어느 선생도 그러한 상태라면, 이미 절망적이라고 말씀들 하셨다는 것이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친구들이 달려 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나 한 사람의 이 생명을 돕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계신 것이다.
다가와[田川] 신부님이 와 주셨다. 나는 최후의 일을 각오했다. 그리고 정말 언제 죽어도 좋다는 상태에 있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그때가 오후였던 것 같았다. 나의 친구들은 모두, 배게 맡에 있었다. 나는 기뻤다. 또다시 경련이 일어나면 끝장이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심장은 아주 괴로웠다. 미닫이가 열려 있었다. 삼위일체의 상징인 미츠야마[三ツ山]는 태연한 모습이다. 하늘은 이미 초가을답게 그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태양은 빛나고 가을 구름은 하늘 높이 사라지고 없구나.

나는 두 번 말을 남기고 다시 그대로 최후의 혼수상태에 빠져 들었다. --- 그로부터 1주일 후 내가 위독 상태에서 빠져 나온 때, 이것을 기적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들을 묶어 놓은 우정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던가. 밤은 칸데라에 불을 켜고, 벌레가 떼 지어 모여드는 이 일헌가(一軒家)에, 죽은 친구의 명복을 비는 것이었다. 타카미[高見]씨로부터 돈오(頓悟)의 감을 받는다면, 이노우에 군의 동글동글한 눈이 생각나고, 하라다 씨로부터 진수제(鎭守祭)의 떡을 받으면, 하마 군을 그리워하고, 바구니 집의 아주머니기 꽈리를 영전에 바치면, 야마시타 군의 빨간 코가 눈에 떠오르고, 마츠시타 씨로부터 고구마를 얻어 오면, 오오야나기 군이랑 요시다 군이 그 때 밭에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하고 후회하고, 후지모토군이랑 카타오카 군이랑 오자사 [小笹] 군이 우리들과 함께 이렇게 밥을 먹고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며, 마침내 눈물을 머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