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외국인 노동자는 ‘검은 건반’ (한겨레, 6/26)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7-12 23:44
조회
580
**외국인 노동자는 ‘검은 건반’ (한겨레, 6/26)

1318 책세상/커피우유와 소보로빵

커피우유와 소보로빵. 듣는 순간 입 안에 군침이 돌고 뭔가 달콤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가? 기대와 달리 이것은 갈색 피부때문에‘커피우유’라 놀림 받는 소년과 그를 놀리는,‘소보로빵’처럼 희고 여드름투성이의 피부를 지닌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의 제목이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열 살 난 소년 샘은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의 아들이다. 샘은 갈색 피부 때문에 ‘커피우유’라 놀림 받기 일쑤고, 집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습격을 받아 화상을 입기도 한다. 샘의 아빠 역시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습격을 당할 뻔하기도 한다. 피부색 때문에 차별 받고 폭력에 희생당하는 샘과 그 가족의 고통을 지켜보다 보면, 외국에서 유색인이라고 해서 차별받았던, 그리고 아직까지도 차별받고 있는 우리 동포의 모습이 떠오른다. 반면에 피부색이 갈색이라고 해서, 자신의 집과 일자리를 빼앗으러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외국인을 배척하는 독일인들을 보다 보면, 동남아 출신의 노동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독일인의 시각은 세 가지다. 첫째, 피부색과 상관없이 외국인 노동자와 동등한 인간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둘째,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집과 일자리를 잃어버렸으니 돌멩이를 던져서라도 쫓아내야 한다. 셋째,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니 구경만 한다. 소설 속 선생님의 입을 빌려 작가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입장을 비판한다. 집과 일자리 같은 것 때문에 인간을 향해 던지는 돌멩이 즉, 폭력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폭력을 방관하는 것 또한 폭력을 인정하고 부추기는 셈이라고.

어떻게 하면 외국인 노동자와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차이’가 나는 것을 ‘차별’하지 않고 서로 ‘공존’하게 할 수 있을까? 작가는 해답을 ‘이해’에서 찾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지지하던 보리스의 아빠도 아들과 같은 반인 어린 샘이 폭력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웃을 돕지 못했던 점을 후회한다. 샘의 절친한 친구인 소냐의 아빠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무심한 사람이었으나, 샘의 아빠와 요리라는 같은 취미를 가지게 되면서 샘의 아빠와 친구가 되었다. 샘을 끔찍이 싫어했던 ‘소보로빵’ 보리스는 샘과 함께 과제를 해 나가면서 샘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되고 샘의 고통도 이해하게 된다. 결국 두 친구는 음악경연대회에서 피아노 연주자 자리를 놓고 서로 질시하는 대신, 샘의 왼손과 보리스의 오른손으로 멋진 피아노 연주를 해낸다. 마치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처럼, 함께 있을 때 그 맛이 조화를 이루는 커피우유와 소보로빵처럼.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땅의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은 독일의 경우보다 더욱 서글프다. ‘차이’ 때문에 ‘차별’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실천에 옮기기란 결코 쉽지 않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매우 유용하다. 특히 열 살 난 소년들의 눈과 입을 빌어 이야기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유난히‘민족’이 화두로 떠오르는 6월, 행여 그것이 오히려 함께 살아가야 할 외국인 노동자에게‘차별’의 고통의 기제로 작용하지나 않는지 깊이 헤아려볼 일이다. 박정해/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회원, 서울 성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