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하나님이 진노하든 말든 (경향, 5/9)
미국, 말레이시아, 중국, 홍콩, 대만, 호주. 여기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좀 뚱딴지 같은 얘기지만, 고층 건물 짓기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된 나라들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高)의 건물은 대만의 국제금융센터 빌딩이다. 총 높이 509m에 101층짜리여서 흔히 ‘타이베이 101’로 불린다고 한다. 지금은 대만과 말레이시아, 중국에 추월당했지만 고층 빌딩의 원조는 미국. 1931년에 완공돼 한때 세계의 지붕 노릇을 하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시작으로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조금 견강부회를 하자면, 역시 이들 나라에서는 뭔가 닮은 점이 발견된다. 국가주의와 권위주의, 혹은 패권 추구의 흐름 같은 것이 강한 나라들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중화권 국가들의 중화 의식이나 호주의 인종주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같은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美·中등의 고층건물 짓기 경쟁-
국가주의라면 누구에게 지지 않을 한국에서도 요 근래 고층 건물 짓기가 붐을 이루고 있다. 112층짜리로 계획된 잠실 제2롯데월드를 비롯해 서울 상암동 DMC랜드마크 빌딩, 인천 송도신도시의 트윈타워 등 100층 이상 빌딩만도 6개가 추진되고 있다.
사업용 빌딩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주거용 건물 100개 동 가운데 9개가 국내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홍콩과 미국에 이어 세번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은 고층 아파트 올리기 경쟁으로 열병을 앓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간에는 아파트 높이를 더 올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숨바꼭질이 한창이다.
물론 고층 아파트의 장점은 많다. 같은 용적률이라면 건물을 하늘 높이 올릴수록 동(棟) 간 간격이 넓어져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그만큼 주민들에게는 쾌적한 주거 환경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그것을 위해 건물 층고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기적인 발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고층 아파트는 이웃 아파트의 일조권과 조망권을 해친다. 한강변을 따라 우뚝 솟아오른 아파트가 도시 전체의 부조화를 야기하고, 북한산 자락에 들어선 아파트가 산의 경관을 망가뜨린다는 점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하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용기를 내 한마디 덧붙이자면, 고층 아파트는 타인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유아독존(唯我獨尊)식 사고의 산물이다. 자기 아닌 다른 모든 것은 발 아래에 두고 내려다보겠다는 오만, 그래서 다른 이들은 기어코 자신을 향해 우러러보도록 만들겠다는 내심의 발로이다.
성서 속의 바벨탑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교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바벨로니아 사람들은 신(神)의 문을 만들자, 그것도 하늘까지 닿을 수 있도록 아주 높이 만들자며 바벨 땅의 평원에 탑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벽돌과 회반죽을 만들고, 그것을 옮겨다가 부지런히 탑을 쌓아나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탑이 세워지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 했다. 그 엄청난 탑이 완성되면 사람들이 더 악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국 바벨로니아 사람들을 흩어놓음으로써 탑 쌓는 것을 막았다.
-오만·유아독존식 사고의 산물-
뾰족한 첨탑으로 잘 알려진 서양 중세의 고딕 양식도 건물을 높이 올리면 신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소산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성당 건물을 높이 올리다 보니 벼락을 맞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성당 건물을 더 높이 쌓았다.
그로부터 적게는 6~7세기, 많게는 수십 세기가 흐른 지금도 사람들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하나님이 진노하든 말든, 혹은 벼락이 내리치든 말든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이니까, 그저 쌓기만 하면 된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