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빵빵빵~ 사랑의 밥 싣고 달려갑니다 (한겨레, 4/26)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2 23:25
조회
529

**빵빵빵~ 사랑의 밥 싣고 달려갑니다 (한겨레, 4/26)

채성태(40)씨는 자신의 봉사활동을 소개하려 한다는 말에 “대단한 일도 아니고 저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다”며 만남을 꺼렸다.

그는 해천이라는 이름의 일식당을 운영한다. 19일 그예 그곳을 찾았다. 서울 지하철6호선 한강진역 3번 출구로 나가 200미터쯤 걸어가니 2층에 해천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일본에까지 이름난 곳이다. 오후2시,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일본인 관광객 10여 명이 홀을 메우고 있다.

가장 바쁜날은 토요일이라고 했다. 주말 손님? 아니다. 장애인 시설을 찾아가 그 자리에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는 ‘사랑의밥차’ 준비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해병대 출신으로 용산경찰서에서 일하는 이들의 모임인 ‘해룡’과 함께 한 시설을 찾았다. 이에 앞선 15일에는 서울시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장애인의날을 앞두고 시청앞 광장에서 연 ‘장애인 개성마당’ 행사에 공동 대표인 영화배우 정준호씨, 방송인 조영구씨 등과 함께 김밥 1340인분을 만들어 나눠줬다. 공연까지 곁들였다.

채씨는 ‘사랑의밥차’ 이전부터 ‘출장요리’ 봉사를 해왔다. 5년전이었다.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누님”의 소개로 한 장애인 시설에 전복죽을 만들어서 갖고 간 것이 시작이었다.

“죽을 만들어 갔더니 식어서 미지근했어요. 대접을 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더라구요. 그런데도 장애인들은 물론 시설을 운영하는 목사님도 전복죽은 처음 먹어본다면서 너무 좋아하시더군요.”

그 뒤부터 아예 시설에 가서 직접 요리를 만들기로 했다. 주말이면 그는 차를 몰고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이고 멀리 전남, 경남 지역까지 전국을 누볐다. 지금까지 그가 찾은 시설만도 100여 곳이 넘는다. 특별히 바쁜 일이 있어서 못하면 다음주에 2곳을 간다. 힘들고 피곤한 일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누는 일에 게을러질까 걱정해서다.

채씨는 봉사활동에도 최고급 재료를 쓴다. 특히 생선은 100% 활어를 쓴다. “제가 만들어 드린 음식을 먹고 한 분이라도 탈이 나면 안하느니 못한 일이 되잖아요?”라고 한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다. 작고 가난한 장애인 시설은 주방 설비도 형편없어 요리를 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고민끝에 생각해 낸 것이 ‘사랑의밥차’다.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 친구들, 동네 친구들, 고객으로 알게된 연예인 친구들 몇몇에게 제안했더니 모두들 좋아했다.

3.5톤 트럭 화물칸을 주방으로 바꿨다. 싱크대는 물론 냉장고, 물통, 가스설비까지 갖춘 전천후 이동주방이었다. 7600만원이 들었다. 좋은 일은 하늘이 돕는 법.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한 친구가 차 할부값을 맡아줬다. 공동 대표인 정준호씨등 연예계의 친구들도 힘을 보탰다. 가운이라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윤정진씨처럼 빠짐없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이들도 생겼다. 부정기적 참여자까지 합하면 100여명이 ‘밥차’를 운영한다.

비용도 만만치않게 든다. 한번 ‘출장’에 50~100만원. 후원금을 보내주는 이들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그가 식당에서 번 돈으로 메운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돈을 쓰면서도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와달라는 곳이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사랑의밥차 가족들은 가장 소외된 곳을 찾아다니고 싶습니다. 그런 곳을 찾는 노하우도 생겼구요.”

해천은 전복요리로 이름난 집이다. 채성태씨가 개발한 전복요리만 20가지. 종류가 많다는 홍콩에도 가봤지만 7~8가지에 불과하더란다.

그가 자랑하는 요리는 전복과 닭을 함께 쓰는 해천탕. 자장면이나 짬뽕처럼 고유명사처럼 불리는, 특허 등록까지 한 일품요리다.

해초죽도 “세계적으로 없는 죽”이라고 했다. 김, 미역, 파래, 다시마, 매생이 등을 넣어 만든 해초죽은 변비와 혈액순환에 특히 좋다고.

새조개 샤브샤브, 우럭젓국, 중국 단둥까지 가서 배워온 도루묵 튀김 등 해천은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든 요리가 많다.

문을 연지 올해로 10돌밖에 안됐지만 해천은 서울에 세 곳의 죽집을 냈고, 곧 도쿄에도 분점이 생기는 ‘짱짱한’ 식당 체인으로 커가고 있다.

그는 우연히 일식당을 시작했다. 안성이 고향인 그는 바다를 좋아해 충남 태안으로 내려가 7년을 살았다. 낚시로 잡은 고기를 직접 회를 떠서 먹다 친구들로부터 식당을 내도 되겠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고 한다.

전복에 대한 믿음도 개업에 영향을 줬다. 그는 태안에서 배로 해녀들을 태워주는 일을 하다 전복을 얻어먹은 뒤 피곤함이 싹 가시는 체험을 하면서 효능을 알게 됐다. 해천의 명성은 일본에까지 알려져 엔에이치케이를 비롯 여러 방송과 신문, 잡지 등에 자주 소개됐고, 일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먹거리 명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