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야!한국사회] 동일방직 28년 후 / 정희진 (한겨레, 4/24)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2 23:23
조회
589
**[야!한국사회] 동일방직 28년 후 / 정희진 (한겨레, 4/24)

▲ 정희진 서강대 강사·여성학

8회째를 맞는 올해 서울여성영화제 최고 화제작은 여성영상집단 ‘움’의 <우리들은 정의파다>(감독 이혜란)였다. 남성을 포함한 많은 관객이 1978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이 작품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이들의 투쟁은 여성, 노동자라는 특정 계층을 ‘넘어’, 살아가면서 누구나 맞닥뜨리는 문제, 즉, 자신을 억압하는 세력과 대결(해야)하는 인간의 고통과 성장이라는 보편적인 인생 문제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저럴 수 있을까”, 그럼에도 “어쩌면 인간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를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문민정부 이후, 사회운동을 했던 이들 중 일부가 행정부나 정치권의 ‘주류’가 되고 민주화 운동 관련 보상법이 시행되면서(이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다), 이제 민주화 운동은 ‘국가의 역사’가 되거나 개인의 ‘경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념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화 운동은 추억, 회고, 기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념과 공인 과정에서 역사는 누군가의 시각에서 선택적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며, 상대적으로 현재의 문제는 비가시화하거나 해결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일당은 자장면 한 그릇 값이 안 되는 70원이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40도가 넘는 열기 속에서 1분에 140보를 걷는 속도로 일하면서 5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했다. 2006년에 이런 작업환경은 드물겠지만, 회사와 남성 노동자의 남성연대에 의한 성차별은 지금도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다. 동일방직 사쪽은 여성들이 주도한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을 두고서 ‘노노 분규’라며,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물론, 노노 분규는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노사 갈등이자 남녀 갈등이었다. 당시 사쪽은 “남자가 어떻게 여자(위원장) 밑에 있을 수 있냐”는 식으로 남성 노동자의 여성 비하를 부추겨, 어용 노조와 구사대를 만들었다. 문제는, 계급연대보다 성차별 의식이 강했던 남성 노동자들이 사쪽의 사주를 과잉 수행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투쟁은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에 대한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여성운동을 중산층 지식인 중심이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바로 이러한 시각을 가진 사람의 여성관이 계급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고귀한 여성성’을 가진 중산층 여성만을 여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노동운동은 여성운동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노동운동을 분열시키는 것은 여성운동이 아니라 가부장제다. 남성 노동자들이 동료 여성들에게 인분 세례와 구타, 욕설, 물어뜯기와 같은 상식 이하의 행동을 일삼고 그 대가로 사쪽으로부터 돈과 ‘위원장 자리’를 보상받은 데 반해, 여성 노동자들은 오히려 “우리끼리 이러면 안 된다”며 남성 노동자를 감쌌다.

아직도 남성들의 무의식에는, “여자도 이것을 할 수 있다면, 남자라는 존재는 왜 필요한가”, “우리 조직에 여성이 많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와 같은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고는 모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점에서, 단순한 성차별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우월의식은 남성의 정치의식, 계급의식을 약화시키고 지배세력은 이를 이용한다. 그래서 여성주의 시각이 없는 사회변화는 불완전하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남성 노동자(시민)가 여성, 이주노동자와 노동자로서 연대하기보다 주류 남성을 욕망하고 동일시할 때, 어떤 사회운동이 성공할 수 있겠는가?

정희진/연세대 강사·여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