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에 봄은 오건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새 달이 시작되면 신문 사회면에 계절을 상징하는 사진과 함께 그 달의 주요 국경일과 기념일, 절기 등을 소개하는 기사가 상자로 실리곤 했다. 가령 3월이면 나물 캐는 처녀나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이, 잘 연출된 상투적인 구도의 사진 속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식의 절기 기사는 더 이상 신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훨씬 자세한 기상정보나 꽃소식을 얻게 된 데다 우리 생활에서 농사가 점점 주요 관심사가 아닌 것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은 정치인들의 진부한 연설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는 이제 낯선 고전문학의 한 구석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반만년 역사 콘텐츠, 농경문화는 소멸하는가
그뿐인가. 나물 캐는 처녀도, 책보따리를 동여메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도, 소 몰고 밭 가는 농부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우리 기억 속의 농촌은 이제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농사짓는 마을로서의 농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도 앞으로 이삼십년 후에는 사라지고 없을 터이니, 결국 농촌은 한민족의 집단적인 기억에서도 지워지고 말 것이다.
농민의 멸종, 농경문화의 소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비극적 종말이 오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쌀 수입 개방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하면서 요즘 돌아가는 사태는 점점 더 불길한 징조를 드러내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농사에 대한 무관심과 농민에 대한 적대감이다. 이러다가는 이른바 반만년 역사의 실체적 내용(콘텐츠)인 농경문화는 ‘지우기’ 자판을 누르듯 망설임 없이 폐기처분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서유럽 같은 이른바 선진국의 농촌도 피폐와 곤궁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대다수 국민들이 농업을 업신여기고 농민을 버린 자식 취급하지는 않는다. 유럽인들은 높은 실업률과 막대한 사회보장비용 때문에 애를 먹으면서도 경쟁력 없는 농업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휴경보전금을 지급하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게다가 많은 도시인들은 틈만 나면 근교의 주말농장에서 채소를 가꾸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농사를 소중히 여기고 한없는 애정을 쏟는다.
나물 캐는 아가씨 대신 골프 치는 아가씨가?
그래도 올 봄에는 수지타산은 아예 포기한 노인들이 습관적으로 들녘에 나와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그러나 머지않아 논밭에서 사람의 자취가 사라진 ‘침묵의 봄’이 오면, 나물 캐는 아가씨 대신 골프장에서 공을 치는 아가씨가 봄을 상징하는 상투적인 동영상으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 정지창
· 영남대학교 독문과 교수
· 전 민예총대구지회장
·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등
출처:<다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