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보존

[필진] 학생운동과 이상 (한겨레, 3/25)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3:00
조회
380
**[필진] 학생운동과 이상 (한겨레, 3/25)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하는 요즘, 대학가 한켠에서는 등록금 동결을 위한 단식이 진행되고 있다. 취업을 위한 수험서와 고시서적이 판을 치는 대학 도서관. 각종 인턴사원 모집과 취업설명회 광고 등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 게시판. 이런 대학의 보편적 모습과는 달리 학생운동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다른 광경도 눈에 띈다.

‘운동권학생회’하면 으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대학생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현실적이지 못하고, 정작 신경써야 할 학생 복지는 외면하며 언제나 ‘통일’, ‘평등’, ‘자주반미’ 등 거대 담론에만 치우쳐 있는 집단. 이런 추상적가치담론에만 주의를 기울이다보니 ‘보통(?)’ 학생들과의 괴리현상이 생기고 괴리는 소외를 낳게된다고 보는 대학생들이 주류임은 부인할수 없다. ‘민주와 참여’를 배우는 대학에서 각종 선거의 투표율이 높아야 정상이지만 의외로 낮은 참여율을 보인다면 아이러니다. 대학 강단에서의 배움과 학생의 직접 삶과의 불일치가 생긴다는 얘기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이 사회로 진출하기 전의 마지막 단계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면 이런 현상을 보이는 근거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학생들의 ‘냉소’가 그 주 원인임은 자명하다. 예를들어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학생회의 움직임이 있을때, 문제는 이에 대한 지지의 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소수에 불과한게 현실이다. 학생의 의견을 모아 추진하는 학생회에 정작 학생들의 지지가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 문화의 근본적 문제점이다. 민주도는 참여도와 비례하며 낮은 참여도는 곧 민주의 퇴행이기 때문이다. 즉 배우는 바람직한 가치와 배움의 실천이 서로 따로노는 괴이한 현실. 이게 우리 대학의 현주소다.

대학을 현사회로 보고 학생회를 국회로 치환하여 생각해보자. 국회는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고 의원은 국민의 선거로써 선출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생회장은 학생들의 선거로써 선출되고 학생들의 의사를 대변한다. 만약 국회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국회는 힘을 위한 투쟁터로서만 그의 존재 의의를 가질 것이며 정작 가까워야 할 국민들과는 함께하지 못하는, 국민들의 냉소와 의원들의 권력욕만이 지배하는 각축장이 될 것이 뻔하다. 국회와 국민들과의 관계는 학생회와 학생들의 그것과 같으며 이 둘의 관계는 밀접해야 한다. 서로 밀접하고 소통이 원활한 관계. 이것이 이상이다.

현실의 모습을 보면, 영 그렇지않다. 등록금인상을 반대하는 학생회장의 ‘투쟁’. 단식도 마다하지 않는 학생회장의 투쟁방법을 보는 학생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않다. 즉 물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이 지배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가치관으로 단식의 현장을 바라보면, 그럴만도 하다는게 보편적 정서다. 대학 운동문화의 순수성을 담보할 수 있으려면 운동 주체의 순수함과 그것을 바라보는 객체들의 순수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고 이러한 믿음의 암묵적 합의가 존재해야 하는데, 현 대학사회에서는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것 같아 씁쓸하다. 모두 취업에 집중하고 취업을 위한 자신만의 갈길을 가다보니 주체의 순수한 행위(학생운동의 순수성)도 왜곡되어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학생회와 학생과의 괴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자가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동안 한국대학사회의 소위 ‘운동권문화’를 상기해봤을때, 학생회는 보다 친근하게 학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운동 노선은 확고히 하되 운동방법에 있어서는 구태를 벗어야한다. 방법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학생들은 강단에서 배운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킬 줄 아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사회 진출 직전의 단계의 시점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 대학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