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소년’ 주경야독으로 대학교수 됐다 (경향, 3/3)
“조리사의 세계에서는 ‘기다리며 칼을 갈아라’는 말이 있어요.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실력을 키우라는 뜻입니다.”
대학에 진학한 친구가 부러워 아버지의 안주머니에서 1만원을 훔쳐 가출했던 소년이 주경야독 끝에 대학교수가 돼 강단에 선다.
부산롯데호텔 조리장 김경환씨(45). 김씨는 이번 학기부터 동의과학대학 식품과학계열 전임교수로 자리를 옮겨 후학을 양성한다.
이색적인 이력을 지닌 교수가 많기로 유명한 동의과학대에서 김교수는 화물차 조수에서부터 봉제공장 재봉사, 고압가스 기사 등 조리사라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경력을 지녀 눈길을 끈다. 김교수는 1981년 경북 구미의 오상고를 졸업했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김교수는 “군인 출신으로 강직하시기만한 아버지는 예비군 중대장을 지냈지만 당시 월급으로는 대학진학을 꿈도 꿀 수 없었고 어머니가 행상을 하면서 살림을 꾸렸다”고 회상했다.
고교 졸업 직후 아버지의 돈 1만원을 훔쳐 대구로 무작정 가출을 감행했다. 대학 등록금을 직접 마련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꼭 출세해서 돌아오겠다는 각오 하나뿐이었어요. 외지 생활이 너무 힘들어 후회를 한 적도 많았지만….”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화물차 조수였다. KT&G(당시 전매청)의 배달트럭 조수였다. 1년 조수생활을 마치고 인천의 가구회사에서 잠시 일하다 서울의 봉제공장에 취업했다. 다림질부터 시작해 마름질까지 배우며 봉제공으로 적응할 때쯤 향수병이 찾아들었다. 만 4년을 부모 형제와 연락도 없이 지내 고향과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 담긴 아버지의 답장에 김교수는 집으로 돌아왔고 인근 고압가스학원에 등록해 자격증을 따냈다.
조리사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군대에서 우연하게 본 국방일보의 경주호텔학교 모집 공고였다. 전역 후 경주호텔학교에서 견습생활을 마치고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근무하면서 야간전문대에 진학했다. 방송통신대에 편입해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낮에는 조리실력을, 밤에는 이론실력을 키워갔다. 하루 4시간만 자고 강행한 주경야독이었다. 97년에는 부산롯데호텔로 직장을 옮긴 뒤 부경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김교수는 “요즘도 실 감는 공장에 다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풀어진 마음을 다잡는다”면서 “저의 젊은 시절이 어려운 사정에 처한 청년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