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집중탐구한미FTA] 캐나다 ① 위협받는 공공서비스 (한겨레,5/29)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4 21:19
조회
1818
**[집중탐구한미FTA] 캐나다 ① 위협받는 공공서비스 (한겨레,5/29)

미 ‘기업소송’에 캐나다 공공부문 흔들

캐나다는 해마다 유엔이 발표하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에 빠짐없이 10위권 안에 드는 나라다. 지난해 유엔이 발표한 순위에서도 5위에 올랐다. 풍요로운 자연뿐만 아니라 탄탄한 공공서비스와 사회보장제도 덕분이다. 캐나다의 500여개 텔레비전 채널 중 90% 이상이 미국 채널이지만 캐나다 사람들이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고 느끼는 데는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자부심이 큰 몫을 한다.

그런데 1989년 캐나다-미국 자유무역협정과 1994년 멕시코를 포함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이 발효되면서 사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환경보호를 위한 정부의 공공정책과 규제가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나프타에 규정된 ‘기업-국가 소송제도’를 무기로 미국은 캐나다의 환경과 공공서비스 영역을 거칠게 흔들고 있다.

석유첨가제 금지엔 “협정위반”

#1. 지난 24일 캐나다 토론토 주택가. 캐나다의 우정사업을 담당하는 공기업인 ‘캐나다 포스트’ 소속 집배원이 가정집 잔디밭에 서 있는 우체통에 편지를 배달하고 있다. 그에게 미국의 다국적 소포배달업체인 유피에스(UPS)와 캐나다 연방정부가 캐나다 포스트를 놓고 벌이고 있는 법적 다툼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런 사건이 진행 중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캐나다 포스트는 아무 문제 없이 200년 동안이나 일(편지와 소포 배달)을 해왔는데 그게 유피에스의 영업이익과 무슨 상관이냐”고 의아해했다.

나프타 제11장 분쟁해결 조항에 따르면, 자유무역협정 상대국 정부의 규제나 정책이 기업의 영업활동에 방해가 되면 해당 기업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를 비롯해 200개국에서 소포배달사업을 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다국적 기업인 유피에스는 지난 2000년 이 조항에 따라 캐나다 연방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캐나다 포스트의 자회사인 소포배달업체가 이 회사의 우편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게 특혜라는 주장이었다. 유피에스는 “캐나다 연방정부가 캐나다 포스트의 독점적 지위를 뒷받침하고 있어 소포배달사업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지 못하게 막고 있다”며 1억6천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은 현재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7년째 계류중이다.

#2. 1998년 7월 미국의 화학제품 기업인 에틸은 캐나다 정부를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 제소했다. 에틸이 생산하는 석유첨가제(MMT)를 캐나다 정부가 팔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나프타의 투자자 보호 규정에 어긋난다는 게 이유였다. 에틸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무려 2억5천만달러. 문제의 석유첨가제에 포함된 성분은 1920년대부터 이미 환경과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캐나다는 물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판매가 금지된 제품이다.

나프타 중재기구는 캐나다의 환경규제 정책이 에틸에 영업손실을 끼쳤다며 캐나다 정부가 에틸에 1300만달러를 물어주라는 결정을 내렸다. 배상액은 그해 캐나다의 환경 프로그램 운영예산과 맞먹는 액수였다.

캐나다 환경법단체 켄 트레이노 연구원은 “나프타 11장이 캐나다의 환경정책을 간단하게 무력화시켰다. 캐나다 법정이었다면 적어도 기업의 이윤과 공공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재기구에서 다뤄지기 전에 이미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압력을 넣어 정책을 무력화시키거나 정부가 정책을 결정할 때 나프타에 위반되지 않는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나프타 11장에 근거한 중재 사건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나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서 다뤄진다. 캐나다 역시 멕시코나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수가 적지 않다. 멕시코에서 도박장을 운영하려 했던 캐나다의 선더버드사는 멕시코 정부의 도박장 폐쇄 조처에 항의해 2002년 8월 1억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현재 소송이 진행중에 있다. 멕시코에서는 대부분의 도박장이 불법이다.

미국의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이 2005년 2월 집계한 자료를 보면, 나프타 11장에 근거해 미국, 캐나다, 멕시코 기업이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요구해 진행중이거나 이미 마무리된 사건은 모두 42건이다. 미국은 15건, 캐나다는 9건, 멕시코가 18건 제소를 당했다. 이 가운데 미국 정부가 패소한 사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캐나다 노동조합연맹 국제담당 실라 켄츠는 “나프타 11장은 민간기업이 정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해 투자보호라는 잣대로 공공성까지 위협하도록 보장해주고 있다”며 “나프타에도 환경과 노동에 관한 조항이 있지만 투자자의 이익과 대립될 때는 ‘이빨이 없는 무력한 조항들’”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