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향의 눈] 춤추는 국가경쟁력 (경향, 5/16)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1:18
조회
1232
**[경향의 눈] 춤추는 국가경쟁력 (경향, 5/16)

현대인들은 ‘통계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과학적 통계가 인류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통계 숫자에 대한 맹목적 숭배는 자칫 현실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미래에 대처하는 안목을 흐릴 수도 있다.

통계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요동치는 정치권의 현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대선 당시의 ‘노풍’ ‘정풍’, 이번 서울시장 후보경선에서의 ‘오풍’ ‘강풍’이 그 예다. 하지만 아무리 정확한 통계라도 예측력에는 한계가 있다. 역대 정권마다 출범 초기 지지율이 치솟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언제든지 실망과 분노로 돌변할 수 있는 게 여론이다. 그러함에도 정치지도자들은 통계와 수치의 뒤에 숨은 함의를 눈여겨 보지 않는 탓에 민심을 잘못 읽기 일쑤다.

-세계국가별 순위 ‘반쪽 진실’-

일찍이 미국의 통계학자 대럴 허프(1913~2001)는 통계가 사람들을 어떻게 현혹시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표본, 평균, 오차, 그래프, 지수 등 모든 형태의 통계를 예시하며 조사방법과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사실과 동떨어진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통계를 제대로 해석하고 옥석을 가리려면 누가 발표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조사했는지, 숨겨진 데이터는 없는지, 쟁점이 바뀐 것은 없는지,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지를 따져보는 등 자신의 ‘주관’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얼마 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에서 발표한 세계경쟁력 지수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61개국 중 38위로 지난해보다 9단계 하락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IMD는 세계경제포럼(WEF)과 함께 해마다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하는 기관이다. 이들의 연례보고서는 조사대상과 방법을 놓고 신뢰성 논란이 있지만 국제적 잣대로 그 나라의 현상을 진단하고 순위를 매겨 정부나 기업에 자극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

그러나 언론의 과잉반응은 국가경쟁력 순위 추락이 마치 총체적 국력의 추락인 양 착시(錯視) 현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정부도 국가경쟁력 순위가 올라가면 정부의 치적인 양 자랑하다가 떨어지면 조사의 신뢰성 운운하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여왔다. 국가경쟁력 순위를 현정부의 성적표와 직결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국가경쟁력 순위가 들쑥날쑥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WEF의 경우 2004년에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전년보다 11단계나 떨어진 29위였다가 2005년에는 12단계나 뛴 17위로 발표했다. 또 2003년의 경우 IMD는 한국이 전년에 비해 8단계 하락, WEF는 7단계 상승으로 평가했다. 한 나라의 경쟁력이 해마다 몇 단계씩 춤을 추듯 등락하고 평가 주체마다 평가가 엇갈리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은 앞서 허프가 말한 ‘상식’의 잣대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국가경쟁력 순위의 추락은 정부행정효율과 기업경영효율 분야가 각각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특히 데이터 자료보다 기업인 설문조사 결과가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경쟁력이란 것을 경제활동뿐 아니라 삶의 질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대한다면 이들 기관의 조사는 어차피 반쪽 측면만 보여주는 셈이다.

-내용 연구 취약분야 대책 우선-

이번 조사에서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의 덩치 큰 강국이 하위권에 포진한 반면 홍콩, 스위스, 핀란드, 싱가포르, 아이슬란드 등 강소국(强小國)이 상위권을 점했다. 경제대국이지만 노사문제 등 복잡한 사회갈등 요인 때문에 효율성이 낮은 나라들이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따진다면 순위 하락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취약한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이 무엇인지 ‘내용’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대책 마련보다 ‘순위’만 갖고 호들갑 떠는 것이야말로 자신감 잃은 우리 사회의 경쟁력 지수를 말해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