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진로모색만 3년…“직업이 취업준비생” (경향, 5/17)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1:18
조회
1475
**진로모색만 3년…“직업이 취업준비생” (경향, 5/17)

‘…안되겠니?’를 유행시킨 청년백수 코미디는 우리시대의 우울한 패러디다. 이들 중 상당수가 20~30대 청년층이라는 게 통계청 관계자의 말이다. 비경제활동인구가 지난달 처음으로 분기 기준 1천5백만명을 넘어섰다. ‘일하지 않는 청년들,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이 넘쳐나지만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터족(Freeter족, Free+Arbeiter)’, 직업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니트족(NEET족,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ning)’ 등 다양한 어휘들만 난무한다. 그들이 장기실업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부도 사회도 무관심하다. 세대갈등과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 달라진 패러다임으로 인한 갈등 등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장기 청년실업자들을 미세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올해 26세인 이가영씨(가명)는 명문대 미술대학 출신이다. 대학 때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2003년 졸업한 뒤 미술 과외와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살았다. 지금은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컴퓨터 학원에서 새로운 디자인 기술을 배우면서 다시 적성을 탐색하는 중이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어요.”

그 모색과 고민의 양상은 다양하며 지금의 사회·세대·가치관 문제와 얽혀 있다. 취업하느냐, 미술 공부를 계속하느냐를 놓고 고민 중이다. 이씨는 “계약직으로 일할 때 느낀 건데 회사라는 게 숨이 막힐 정도로 획일적이고 조직적이었다”고 말했다.

또 직·간접적으로 겪은 회사라는 곳은 능력, 창의성보다는 ‘학연’ ‘인맥’이 우선이었다. 그렇다고 먹고 사는 일을 아예 무시할 정도로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고, 부모에게 계속 의존하는 것도 달갑지 않다.

미술 공부를 한다면 순수미술을 할 것인지, 산업디자인을 공부할 것인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한다. 전업작가가 될 것인지, 유학을 다녀와 교수가 될 것인지 그 가능성과 경제적 여력 여부를 제쳐두고 일단 모든 게 고민이다.

미술학원 강사나 과외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이 치를 떨었던 ‘입시 미술’의 구조 속에 다시 매몰되고 싶지는 않다.

특별한 일 없이 무기력하게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자 부모와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부모는 명문대 졸업장에, 미술이라는 전문 지식을 가진 딸이 아직 진로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을 안쓰러워 하면서도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씨는 “고민을 나누고 싶지만 오래 전부터 부모님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며 “그걸 최근에 깨달았지만 그 벽을 깨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씨의 자기 고민과 모색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이씨는 “내가 원하는 게 ‘돈’ ‘성공’ ‘여유로운 생활’이라면 상관없을 것 같은데 내게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다”라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찾고 싶다”고 말했다. 시계 제로의 안개 속에 서 있는 대부분의 청년실업자들은 이씨와 다를 바 없었다.

〈기획취재부〉

◇ 취업준비생

통계청 자료를 보면 취업준비 인구는 매년 늘고 있다. ‘취업과 실업 등 경제활동에 참가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 인구는 2003년 4월 13만9천명, 2004년 4월 17만3천명, 2005년 4월 22만3천명, 2006년 4월 29만2천명이다. 2003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올 1월은 25만2천명이었다. 올해들어 매달 1만여명씩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