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필진] 월드컵, 그 열광 뒤에 숨겨진 진실들 (한겨레, 6/9)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28 21:20
조회
1355
“월드컵은 월드컵 경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월드컵은 4천7백만이 하나 되는 거대한 축제였습니다.” “월드컵은 월드컵 4강만의 드라마는 아니었습니다. 월드컵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한국인의 자신감과 긍지를 되찾은 위대한 드라마였습니다.”

위의 문구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공익광고협의회와 KBS에서 만든 공익광고 카피였다. 당시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 광고 카피에 동의했을 것이고, 그 열광과 흥분의 감정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환희와 감동이 4년이 지난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06년 6월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 월드컵은 또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열광의 무대가 되고 있다.

전 세계가 이처럼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월드컵이 인류를 하나로 묶는 대표적인 제전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월드컵은 언제나 “세계는 하나”란 구호 아래 홍보되고 미화된다. 월드컵 개최의 명분 중의 하나는 언제나 전 세계의 분쟁과 갈등을 해소하고 세계인을 하나로 묶어 인류사회의 연대감을 결속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대의명분으로 인해 세계는 한 마음으로 월드컵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월드컵에서는 언제나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에 전 세계가 그것에 열광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지난 200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4강 신화는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자체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실제로 나타났을 때 모두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세계를 열광시킨 위대한 드라마로 평가될 수 있었다.

월드컵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대중의 탈주 욕망을 들 수 있다. 현대 사회 구조 속에서 대중은 억압과 굴레로부터 탈주하고 싶은 욕망에 끊임없이 사로잡혀 있다. 월드컵은 사회적 억압 구조로부터 벗어나 정신적 엑스터시(ecstasy)의 경험으로 이끄는 현대인의 탈주 공간이 되고 있다. 철저한 수비벽을 따돌리고 골을 넣는 순간 전 세계 관중들은 자신들의 탈주의 욕망을 대리만족하는 엑스터시의 순간에 들어선다. 그러니 골에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월드컵이 세계적인 화합의 대제전이요, 각본 없는 드라마이며, 현대인의 탈주 공간이기 때문에 단지 열광해야만 하는 지구촌 축제일뿐일까? 그 열광의 뒤에 가려진 월드컵의 다른 이미지는 무엇일까? 4년 전 이맘 때, 한일월드컵이 한창일 때의 개인적 경험을 기억해 본다.

당시 대구 월드컵구장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같은 조에 편성된 미국과 예선 2차전을 치루고 있었다. 월드컵 역사상 새로운 응원문화가 막 정착되고 있었던 때라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광화문과 대학로 등으로 몰려갔다. 대학 가에서는 기말고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시험이 있던 학생들은 미처 거리로 나가지 못했고, 그래서 총학에서는 대학 강당에 대형 스크린을 걸어놓고 학생들에게 관전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 때 난 대학 도서관에 틀어박혀 논문을 쓰고 있었다.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마지막 일전이었기 때문에 기말고사를 치루고 있던 학생들은 물론이고 온 국민들의 관심은 모두 그 경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험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은 텅 비어 있어 매우 조용했다. 가끔씩 대강당 쪽에서 들려오는 탄성과 환호 소리만이 어렴풋이 귓전에 들릴 뿐이었다. 난 비좁은 연구실에서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대체 월드컵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문화적으로 확대 재생산된 이미지 때문에 월드컵을 비평하고, 그 신드롬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월드컵 관계자들과 그것에 열광하는 관객들은 자체 성찰을 거칠 여유도 없이 형성된 문화적 아비투스로 말미암아 비평을 수용할만한 지적 판단력을 상실해 버렸다. 여기에 경제 제일주의적 세계화의 이상으로 월드컵은 이미 희망의 옷을 덧입고 있다. 사회적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누가 쉽게 그 이면의 부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지난 월드컵 때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 대부분이 이런 비평적 작업에 섣불리 나서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월드컵 이면에 숨겨진 부정적 의미들을 평가할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 때 그렇게 월드컵 신드롬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이미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국내 지식인들의 자체 반성과 월드컵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고, 그 만큼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한 사회 인식이 많이 성숙되어진 상태에서 이번 독일 월드컵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6월의 월드컵 열기 앞에서 우린 보다 성숙한 자세로 그 열광 뒤에 숨겨진 부정적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우선 월드컵은 결코 화합과 평화의 제전이라는 이미지와 동일한 정신성을 구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월드컵은 오히려 내셔널리즘(nationalism, 국민국가주의)의 부흥을 부추긴다. 월드컵이 국가 대항전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열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것을 설명해준다. 국가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잠재적 전쟁기계의 정신적 배경이다. 미셀 푸코가 현대의 세계질서를 평화와 평화 사이의 전쟁이 아닌 전쟁과 전쟁 사이의 평화로 설명했을 때 지적했던 것처럼 국가주의는 언제나 전쟁의 의지를 품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월드컵은 문명화된 전쟁 연습의 다름 아니다. 승리에 열광하고, 패배에 망연자실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린 그런 사회문화적 아비투스를 분명하게 보게 된다. 이번 독일월드컵의 공식구(球)의 명칭인 팀가이스트(Team Geist, 팀정신)에 들어 있는 의미도 결국은 이런 전쟁기계로서의 내셔널리즘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월드컵을 열광적으로 환호할 수 있을까?

월드컵은 세계화의 경제논리에 의해서 부추겨진 대중문화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난 월드컵에서 등장했던 거리응원, 수많은 월드컵 관련 용품들, 월드컵을 상징화한 선전문들, 나아가 월드컵의 사회학적 의미에 대한 해석들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현대 상업주의 문화의 산물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사실 월드컵을 세계의 축제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세계화의 경제 논리에 충실한 상업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월드컵은 대중들의 스포츠 문화이기 이전에 상업주의의 산물이다. 그 이면의 진실을 가리는 수단으로 대중스포츠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뿐이다. 이런 숨겨진 의도를 알기에 그 열기에 편승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더 심각한 부정적 진실이 숨겨져 있다. 월드컵은 현대인의 탈주욕망을 이용해 대중의 일탈을 부추기고, 이데올로기의 순결을 포기하도록 이끄는 마법의 힘을 발휘한다.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현실적 아젠다에 충실해야 할 대중들을 탈이데올로기화시키는 간단한 장치가 바로 월드컵이다. 그래서 월드컵 앞에서는 시험이나 업무와 같은 가장 중요한 일상의 과제도 능히 유보된다. 일상의 업무를 잠시 접어두고 거리로 뛰어나가게 하는 힘이 바로 그 마법인 것이다. 결국 세계를 이끄는 소수의 엘리트들은 월드컵이라는 장치를 통해 대중의 일탈을 이끌어내는 마법의 정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정치적 의도를 간파한다면 어찌 그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 수 있겠는가?

지금, 사회를 이끌고 있는 모든 언론과 문화 매체들, 대중의 욕망과 문화적 아비투스, 나아가 세계화라는 시대정신까지도 우리를 월드컵의 열광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주체로서 우리는 그 시류에 무비판적으로 이끌려져서는 안 된다. 월드컵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 두 의미들을 잘 살펴서 구분해야 한다. 월드컵의 긍정적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부정적 진실들을 파악해 그 열광적 현상에 매몰되지 않는 정신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현실로부터의 무비판적인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개혁과 변화를 통한 불합리로부터의 탈주이다. 따라서 월드컵의 열광을 통한 엑스터시만으로는 그 과제를 완수할 수 없다. 월드컵의 환희와 감동이 아무리 열광적으로 체험된다 할지라도 우리의 사회적 과제는 늘 우리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월드컵에 집착하는 열정을 우리 시대의 과제를 완수하는 일에 쏟아 부어야 한다. 합리적인 의식을 가지고 2006년 월드컵에 참여할 수 있는 성숙된 문화시민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