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뭇매맞는 노조에 대한 변론 (뉴스앤조이, 5/30)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14 21:19
조회
1369
** 뭇매맞는 노조에 대한 변론  (뉴스앤조이, 5/30)
하종강의 노동운동 예찬서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출판사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노동자인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노동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은 그리 긍정적인 어감을 주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노조는 우리 사회에 해롭다는 인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단식을 하면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지만, 노동자가 용산역 구내에 있는 높이 30m의 철탑 꼭대기에 올라가거나 아스팔트 도로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해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투사들만 하는 게 아니다. SBS미디어넷 직원으로 부당해고에 맞서 노숙농성을 벌이던 손로문 씨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노조운동에 관심 가진 적이 없었어요. 다른 동료들은 처음부터 이건 말도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로 파업에 참여했지만, 나는 그저 동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처음에는 파업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에 눈치가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도 도움이 되는 정당한 싸움인 거에요. 파업하지 않았으면 평생 깨닫지 못하고 살 뻔했잖아요”. 자신이 노동조합원이 되리란 상상도 해보지 못하던 이들이 냉혹한 자본주의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노동운동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종강 소장(한울노동문제연구소)은 20년 넘게 수많은 노동운동판에서 강연하고 노동자들이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 때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하나라도 만들라치면 어김없이 그에게 까다로운 노동법 강연 요청을 하기에, 그는 일년에 300회 이상 노동교육을 다닌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 ‘하종강의 노동과 꿈’(www.hadream.com)에는 기업의 경제성장율 계산법이나 정부 노동정책의 허점을 지적하는 ‘이론’부터 노동운동의 진솔한 ‘현장’이 녹아나는 글들이 가득하다. 노동자들과 함께 울고 함께 분개하고 때로는 간절히 호소하는 ‘감성적인’ 그의 글들을 엮은 책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은 한 권의 ‘노동교과서’로서 모자람이 없다.

노조파업의 화살이 다시 노동자에게로

하종강은 “장애인의 권리가 확대되고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는 것처럼 노동자의 권리가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진보하는 방향”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실제로 유럽 사회에서 공공의료나 무상의무교육 등이 널리 실시된 데에는 수익 창출이나 경쟁 중심의 노동환경에 문제제기한 노동자들의 역할이 컸다. 프랑스에서는 파업이 벌어지면 국민이 똘레랑스(관용) 정신을 발휘해 그로 인해 야기된 불편이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노동자들을 격려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노조가 파업을 하면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되고 화살이 기업과 정부가 아닌 노동자에게 쏠리는 게 현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로 인해 비정규직이 양산된다’거나 ‘현대자동차나 항공사 조종사들은 높은 연봉을 받는 귀족 노조’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과거 노동운동에 동조하던 이들도 지금은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게 과연 타당한 시각일까. 저자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소영세 하청업체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대자본과의 관계에서조차 기득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는 반박한다. “대기업 노조원들 역시 자본 앞에서는 약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업의 인사노무 관리자들에게 ‘우리가 당신을 불법 해고하더라도 대법원 판결을 받고 복직할 때까지는 몇 년이 걸린다’고 위협 받으면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다음 대목을 읽으면 보다 명쾌해진다.

“물론 현대자동차에서 1년에 5천만 원 넘는 임금을 받는 생산직 노동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년에만 14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고 이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모두 3천 시간을 넘었다. 주 42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표준 근로시간보다 무려 1천 시간 정도를 더 일한 셈이다. 반면 지난해 한국 CEO의 평균연봉은 약 2억6천만 원이었다. 제조업 노동자 평균연봉의 18배에 달한다. 작년도 삼성전자 등기이사 7명의 평균연봉은 52억 원이 넘었다. 삼성SDI는 15억8천만 원, CJ는 13억9천만 원, SK텔레콤은 13억 원,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 과연 누구의 고임금을 지적해야 할까.”

또 엄청난 차별을 받는 영세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는 지금보다 확대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득권이 지금보다 낮아지는 것이 한국사회에 유익한 길이 아니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저임금 노동자와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도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저하하는 방식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면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조 길들이기 위한 자본의 덫

그러나 그는 기아자동차 노조간부 채용 비리 연루 사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건, 항운노조 비리 등으로 뭇매를 맞는 노동진영 내부를 향해 “우리 정말 많이 반성해야 한다. 이러다가 망한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함께 끌어안을 수 없다면, 우리는 사회에 아무런 유익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며 “노동운동은 한 달에 몇 백만 원씩 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1백만 원도 채 못 받는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지원금 생활비를 적극 지원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따끔한 질책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지금 노동운동이 가진 문제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노동자들에게 싫은 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다. 기아자동차 채용 비리 사건을 두고 “청렴과 도덕을 생명으로 해야 할 노조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뼈아픈 쓴소리를 하면서도 “자본가들이 노조 길들이기 차원에서 쳐둔 자본의 덫을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하종강은 노동자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지점을 짚어내면서도, 기업은 물론 언론과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동운동이 타락했다고 질타하는 모습에 분개한다. 그런 점들을 빌미로 이 시대에 노동운동 자체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우리 사회에서 노조운동의 근간을 흔들려는 여론몰이나 압력에 대해 강하게 저항한다. 1987년 현대중공업 파업 때 노동자들과 함께 도로에 누워 진압 중인 경찰에게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외치며 눈물 흘렸던 투사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서 노동조합을 질타하고, 명망 있는 시민운동가가 ‘찬란한 시민운동의 승리와 초라한 노동운동의 패배’를 비교하는 게 얼마나 노동자들의 힘을 빼는 일인지 절감하는 그는 오늘에도 여전히 자본과 권력 앞에서 약자인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 그래도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는 굳은 의지를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