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집중탐구한미FTA] 유럽연합 (한겨레, 7/2)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7-12 21:38
조회
1353
**[집중탐구한미FTA] 유럽연합 (한겨레, 7/2)
협상문구 20% “대화·협력”…“부분개방도 좋다”
지원 함께 약속…멕시코에 680억·칠레에 417억

[한-미 FTA 집중탐구: 1부-다른 나라에서 배운다]
유럽연합

“우린 미국식과 달라”…‘협력정신’을 전면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떼제베를 탔다. 프랑스를 경유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 목적지였다. 스위스는 프랑스·벨기에와 달리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다.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때 버릇처럼 약간 긴장됐다. 하지만 여권을 보여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동료와 잡담을 나누던 출입국 직원은 “그냥 통과하라”고 손짓했다.

브뤼셀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아예 출입국 심사대도 없었다. 너무 쉽게 역을 빠져나오니 되레 허무했다. 미국과는 다른 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유럽의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유럽연합의 대외 무역정책이 미국과 다소 차이가 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브뤼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본부에서 만난 익명을 요구한 통상 담당 공무원은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등 미국이 주도해 맺은 미국식 자유무역협정(FTA)은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 등 상대국의 시장을 여는 데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유럽연합은 시장 개방은 물론 협정 당사국간의 사회적 협력을 중요시한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유럽연합이 멕시코·칠레와 각각 맺은 자유무역협정을 보면 그런 설명이 수긍이 가는 대목이 있다.

유럽연합이 멕시코·칠레와 맺은 협정 역시 농업과 제조업의 관세 인하 뿐 아니라 서비스·투자·지적재산권까지 아우르고 있다. 여기까지는 미국이 이들 두 나라와 맺은 협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2003년 발효된 유럽연합과 칠레간 협정문을 보면, 112쪽 가운데 첫 29쪽을 ‘정치적 대화’와 ‘협력’에 할애하고 있다. 정치적 대화 항목은 인권 존중과 개인의 자유, 법치주의 등 민주적 가치를 보호·강화하기 위해 당사국간 정례 정상회담과 주기적 장관급회담, 연례 고위급회담을 개최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시민단체 모임 재정지원까지

협력 분야는 유럽연합식 자유무역협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12쪽 가운데 20쪽이 협력 분야다. △중소기업의 발전을 위한 협력 △남녀 평등에 대한 협력 △고용창출 등 사회적 협력 △지속가능한 발전 등 환경 협력 △시민사회에 대한 협력 등이 포함돼 있다. 시민사회 조항에서는 엔지오(NGO) 등 당사국간 시민단체 대표자들의 정례모임을 촉진하며 이를 위해 재정 지원까지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유럽연합은 ‘협력기금’ 등으로 불리는 재정 지원을 통해 협정 체결 상대방을 돕기도 한다. 유럽연합과 멕시코간 협정은 2000년 10월 발효됐는데, 유럽연합은 2002년부터 올해까지 5620만유로(한화 약 680억원)를 멕시코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2004년까지 법치주의 강화 프로그램에 1500만유로, 치아파스주(멕시코 남부에 있는 반군 거점)의 지속가능한 사회적 발전을 위해 1500만유로, 멕시코 중소기업 지원에 1200만유로를 내놓았다. 유럽연합은 칠레에도 경제협력, 기술혁신, 환경보호, 정부개혁 등을 돕기 위해 올해까지 모두 3440만유로(한화 약 417억원)를 지원했다.

피에르 데프레인 전 유럽연합 통상담당 차관은 “유럽연합은 체결 상대방의 시장이 강해지도록 준비를 시킨다”며 “이를 위해 어떤 산업들은 개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부분 개방을 허용하며 경제적인 지원이 흔히 뒤따른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에 미국은 부분 개방을 좋아하지 않고 전면 개방에 초점을 맞추며 체결 대상국에 전혀 돈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양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사회민주주의적 성향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견제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 지금의 유럽연합까지 발전하면서 몸에 밴 사회통합과 공동체 지향적 성향 등이 지금의 유럽연합식 자유무역협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어떤게 우월한지 판단은 시기상조

물론 미국식과 유럽연합식 가운데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속단하기는 힘들다. 지난 3년간 미국과 멕시코·칠레, 그리고 유럽연합과 멕시코·칠레간의 수출입 증가율 추이를 보더라도 어느 방식이 나은지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표1)

유럽연합은 지금까지 39개의 자유무역협정을 맺었지만 미국식처럼 서비스·투자·지적재산권까지 다룬 협정은 멕시코·칠레와 맺은 것 등 몇개에 그친다. 두 협정은 발효된 지 몇년도 채 안됐다. 유럽연합식은 시장 개방은 물론 시장의 기초를 다지는 데도 신경을 쓰므로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보기도 힘들다.

피에르 데프레인 전 차관은 “지금으로서는 이미 발효한 지 10년이 넘은 미국과 멕시코 간의 나프타 외에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평가가 성급할 수 있다”면서 “멕시코는 나프타 이후 경제성장이 있었지만 빈익빈 부익부도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발전과 맞물려야 플러스 요인이 될 뿐”이라면서 “자유무역협정이 결코 기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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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유럽식…남남식…
자유무역협정 방식 천차만별

자유무역협정(FTA)은 애초 당사국간 제조업 위주의 관세 인하와 철폐를 뜻했다. 여기에 더해 비회원국에 대해 공동관세를 물리면 ‘관세동맹’, 자본·노동 등 생산요소의 회원국간 자유로운 이동까지 아우르면 ‘공동시장’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투자·서비스·지적재산권 등 생산요소의 이동이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되는 등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서 이러한 구분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유럽연합도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세계무역기구는 자유무역협정 대신 지역무역협정(RTA)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유럽연합은 최근 칠레·멕시코 등과 맺은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을 공식적으로는 ‘연합협정’(Association Agreement)로 부른다.

세계은행은 2005년 연례보고서 ‘글로벌 경제전망’에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 주체별로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식 △유럽연합이 맺고 있는 유럽식 △개발도상국간에 체결하는 남-남식으로 구분했다. 보고서를 보면 남-남식은 상품 교역에 치중하지만, 미국과 유럽식은 서비스·투자·지재권 분야에도 많은 관심을 갖는다. 남-남식은 회원국간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요구하지만, 미국식과 유럽식은 쿼터 등을 통해 엄격히 제한하려 한다.

미국식과 유럽식에도 차이가 있다. 서비스시장의 경우 유럽식은 협정문에 열거한 품목만 개방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식은 모두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되 일부 품목의 예외를 인정하는 수준이다. 투자자한테 현지인 고용과 현지 부품 사용 등의 의무를 지우는 것을 미국식은 금지하지만, 유럽식은 관련 규정이 없다. 미국식은 유럽식과 달리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식에는 지속가능한 발전, 시민사회, 인권, 협력기금같은 조항이나 개념이 없다.

자유무역협정은 정해진 모델이 없다. 미국식 모델 뿐 아니라 다른 모델의 장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인터뷰/ 유럽연합 농민단체협 사무국장 미셸베르거
“미, 지적재산권 강조하지만 농산물 지적재산권은 외면”

시몬 미쉘-베르거 유럽연합농민단체협의회 사무국장은 “미국이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조하지만 정작 ‘농업분야의 지적재산권’은 외면하면서 해적판 농산물을 많이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농민단체협의회는 어떤 구실을 하고 있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정책 파트너로 참가한다. 자유무역협정 등이 진행되면 회원국 농업에 끼칠 영향을 평가한다. 어려움에 빠지는 부분이 뭔지 살피고 유럽연합 집행위 차원에서 보조금 등 지원정책을 펼 수 있도록 로비한다.

-농업 협상 때 유럽연합과 미국의 주안점이 다른 게 있는가?

=유럽연합은 지리적표시제(GI)를 중요시하는데, 미국은 이 부분에 관심이 없다.

-지리적표시제란?

=보르도 포도주나 페타 치즈처럼 수백년간 특정 지역에서 독특한 방법과 많은 경험을 통해 얻어낸 맛 좋고 몸에 좋은 농산물에 지역의 이름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농산물의 지적재산권이라고 봐도 되나?

=그렇다. 그런데 미국은 지재권을 보호하면서도 지리적표시제는 침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와인업체들이 샤블리나 보르도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상표 도용은 공산품의 해적판보다 잘못된 것이다.

-유럽연합이 미국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또 있다면?

=농산물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식량안보, 환경 보호, 경관 조성, 농촌 개발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미국은 또 유전자변형식품(GMO)을 갖고 20년 동안 유럽연합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유럽연합 소비자들은 유전자변형식품에 대체로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유럽연합이 식품의 안전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 역시 위장된 교역장벽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높은 안전기준은 역내 구성원들이 선택한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만 ‘지속가능’한 농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당장은 넓은 땅 등 좋은 농업 환경을 갖고 있지만,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등 지속가능한 농업을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