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월드 리뷰] 反美시대의 親美 (경향, 7/4)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7-12 21:38
조회
1268
**[월드 리뷰] 反美시대의 親美 (경향, 7/4)

지난 달 말 미국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조지 부시 대통령과 외교적 언사를 넘어 상당히 뜨거운 애정 표현을 나눴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이런 일에 대해 제3자가 뭐라 할 계제는 아니다. 설마하니 두 사람이 동성애자라서 이렇게 ‘닭살 돋는’ 대화를 내놓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각자 분명한 속셈이 있었다. 고이즈미는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급증하고 이웃 국가들이 일본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붙잡을 친구는 미국 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부시의 환대는 고이즈미가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을 적극 지지해 준데 대한 보답과 중국 견제를 위해 우호관계를 지속하자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일본의 차기 지도자들을 겨냥한 포석이기도 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 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일부 한국 언론의 시각이다. 한 보수 신문은 사설에서 주변 4강 정상들의 활발한 외교를 소개한 뒤 동맹국 정상과의 신의와 신뢰가 중요하다고 썼다. 다른 신문은 한국·중국과의 마찰을 불사하고 ‘친미일변도’의 외교를 하고 있는 고이즈미의 ‘신념’을 평가한 뒤 한·미 동맹의 균열을 걱정했다. 이것은 지극히 문제가 많은 시각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도 해당하지만 동맹국과의 신의·신뢰를 이유로 정당한 명분이 없는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한 것은 옳지 않았다. 또 한국·중국과의 관계야 어떻게 되든 오직 미국과 친하면 된다는 일본의 태도 역시 호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미·일 정상의 ‘닭살돋는’ 대화-

알다시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계 여론은 악화일로다. 지난달 퓨 리서치 센터가 세계 15개국 1만6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7개국에서 이라크 주둔 미군이 이란이나 북한보다 세계 평화에 가장 위협이 된다는 응답이 나왔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반미주의, 즉 미국과 미국인,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반미의 세기’가 될 것임을 알리는 징후들은 많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CFR)의 줄리아 스웨이그는 최근 저서 ‘오발: 반미의 세기에 친구 잃고 적 만들기’에서 전세계의 흐름인 반미를 흥미롭게 분석했다. 그는 지난 몇년 사이에 미국의 군사력은 강해졌지만 강제에 의하지 않고 승복을 끌어내는 ‘소프트 파워’는 현저히 감소했다고 보았다. 또 전세계적 반미 현상의 드문 예외로 동유럽과 인도, 그리고 일본을 꼽았다. 그가 이스라엘을 꼽지 않은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사실상의 동일체로 파악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스웨이그에 따르면 한국에는 ‘친미’, ‘반미’를 비롯해 ‘항미’, ‘용미’, ‘숭미’, ‘연미’, ‘혐미’, ‘비미’ 등 미국에 대한 태도를 표현하는 단어가 8개나 된다. 그만큼 복잡한 한·미관계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광주사태가 한국이 반미주의로 돌아서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분석에는 그도 대체로 동의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 남미 전문가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바로 한국에 친미·숭미주의적 성향이 강고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 성향은 고이즈미류의 용미(用美)론을 뛰어넘는, 거의 ‘원초적 본능’ 차원이 아닌가 한다. 학계와 언론 등에 뿌리깊은 이런 시각들은 때로 미국 무오류의 신앙으로 나타난다. 이런 인식 아래서는 미국만 상수(常數)이고 나머지는 모두 변수에 불과하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 보수교단은 역사적으로 친미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결합·체질화하는 길을 걸어왔다. ‘악의 축’ 개념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부시의 극단적 이분법은 전형적인 기독교 보수파의 세계 인식 틀이다.

-학계 일부 ‘원초적 본능’ 崇美-

미국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미국은 전쟁 중독증에 걸린 나라로 보이지만 워런 버핏 같은 인물이 떠받치는 나라기도 하다. 이런 미국을 보는 외부의 시각도 이중적일 때가 많다. 제3세계 국가 젊은이들은 맥도널드 햄버거를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비난하지만 햄버거 매장은 만원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 정체성의 적이면서 동시에 따라야 할 모델도 된다. 미국은 애증의 대상이다.

이처럼 친미·반미는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선택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도그마적인 친미와 반미일 것이다. 예컨대 한·미관계에 있어 미국과의 공조는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하고 자주의 길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워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된다는 식의 주문들만 쏟아내는 것은 자기 비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