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국민 생명권 짓밟은 제약사·시험기관·당국 (한겨레, 4/26)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1:12
조회
1400
**국민 생명권 짓밟은 제약사·시험기관·당국 (한겨레, 4/26)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전문 의약품의 약효 시험이 조작됐다는 정부 발표는 놀랍고 충격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조사 결과, 최초 허가 의약품(오리지널)과 약효가 동일함을 입증하는 생동성 시험기관 11곳 중 4곳에서 조작 사실이 확인됐고, 나머지 기관이 제출한 자료도 원본과 일치하지 않았다. 조작 수법도 대담하다. 기존 결과를 그대로 베껴 기록하거나 아예 임상시험조차 하지 않았고, 조사를 피하려 원본을 파기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들 기관이 전체 시험의 90%를 맡고 있다니, ‘약효 조작’ 행위가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얘기다.
나아가 영리 기관뿐 아니라 공신력 있는 대학 연구소까지 조작에 간여했다고 하니 믿기질 않는다. ‘제2의 황우석 사태’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불량 의약품’은 국민의 생명권을 짓밟은 상상할 수 없는 범죄다. 약효가 떨어지면 단지 치료가 늦어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간질약 등은 흡수율에 따라 치명적인 부작용을 부른다. 최종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해당 기관과 가담자한테는 형사처벌과 면허취소 등 최대한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일은 보험 약가를 경쟁사보다 높게 책정받으려는 국내 제약업계의 치열한 경쟁에서 비롯됐다. 시험을 맡긴 제약사와 시험기관 사이의 짬짜미 의혹 역시 검찰 수사로 철저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근본 원인은 당국에 있다. 값비싼 오리지널 약 처방을 줄이겠다며 복제약 생산을 장려하면서 관리감독은 전무했다. 제약사 돈으로 시험을 수행한 기관이 제출한 서류만 보고 지금까지 버젓이 승인을 내줬다. 이번 조사도 구체적인 내부 고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보험 재정을 아끼겠다며 국민 생명권을 내던진 당국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지금까지 생동성 시험을 거쳐 보건당국의 승인을 받은 복제약은 4천여 가지에 이른다. 의약품 전반에 대한 불신을 막기 위해서라도, 추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시판 중인 복제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해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국내 제약업계가 신뢰를 회복하는 건 그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