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다시 고적법(考績法)에 대하여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6-07 21:13
조회
1700
<다시 고적법(考績法)에 대하여>

다산 자신의 기록인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은 자신의 생애를 조리 있게 정리한 자서전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저술에 대한 내용도 소개하고, 그런 저술이 지니는 독창성에 대해서 충분하게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저서를 낱낱이 소개하며 분량도 정확하게 기록해두었습니다.

저서 목록에는 『경세유표』48권 “미졸업(未卒業)”이라는 세글자가 눈에 띄는데, 이는 48권으로 계획했으나 다 끝마치지 못했노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지금 전하는 『경세유표』는 44권으로 되어 있으니, 4권은 마치지 못하고 거기서 해야 할 주장은 『목민심서』로 옮겨놓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경세유표』44권 중에 제11권 전체는 다름 아닌 ‘고적지법(考績之法)’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책 한 권이 통째로 그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면 얼마나 그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었나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차례 설명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만, 고적(考績)이란 공직자들의 업적을 평가하는 문제인데, 다산은 고위공직자들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여 신상필벌의 원리대로 처리하기만 한다면 세상은 반드시 요순시대로 되어진다고 여겼습니다. 고위공직자, 그 중에서 지방의 기초 자치단체인 시·군을 맡는 책임자들에 대한 업적의 철저한 평가야말로 나라의 운명과 관계된다고 믿었던 사람이 다산이었습니다.

11권 첫장 첫줄은 “경관(京官)·외관(外官) 모두의 공적을 연말에 보고하면 그 공적을 평가해서 입춘날에 이를 반포한다”라고 시작됩니다. 공직자들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는 고적제(考績制)가 미비하다면 나라의 정치는 논할 것도 없습니다. 일부 교사들이 교원평가를 반대한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입니다. 요즘 시장·군수·구청장 등에 대한 감사결과가 나와 세상이 시끄러운데, 지자제 시행 이후 첫 번째로 나온 감사결과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비리와 부정은 말할 것 없이 복마전(伏魔殿)이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고적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나라가 어떻게 나라일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라도 다산이 그렇게도 강조한 고적법의 철저한 시행을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수적임을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다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