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당 수필(如己堂 隨筆)-II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9-10-21 21:51
조회
709
여기당 수필(如己堂 隨筆)-II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

오른 손에는 성경, 왼손에는 나의 자녀, 이것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사람들의 눈물을 짜내어 그것을 달콤한 땀으로 바꾸고 있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지 않을까?..........
요즈음 거듭 거듭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쓴 책 속에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나의 두 자식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로부터 여러 가지 물품이나 편지가 옵니다.
그런데, 원자야(原子野)에는 비슷한 경우의 아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내 자식들에게만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각각의 사정을 고려한 후 가까운 곳에 나누어 주든가 아니면 나눌 수 없는 물품은 돈으로 계산하여 그것을 모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나로서는 가능한 한 두 자식이 스스로 특별이 유명인사가 된 것을 알지 못하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어린 때부터 이름이 알려져 세상에 끌리어 나간 아이들은 온실에서 갑자기 꺼내온 꽃의 새싹처럼 세상의 파도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의무의 하나는 이 아이를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빈틈없는 인간으로 육성하는 일입니다. 결코 신문 나부랭이에 오르는 일에 눈높이를 맞추어 길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즈음 눈에 띄는 것은 소녀 잡지의 애독자로부터 사인을 해달라거나, 동생이 되어 달라거나, 하는 무서운 편지들이 많이 배달되어 옵니다. 우리들은 일절 답장을 하지 않습니다만 이런 일을 하는 소년소녀들이 많은 것을 알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깊이 생각해보면, 이런 종자를 뿌린 내가 쓴 글들이 나쁜 것입니다.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헌법에도 명기되어 있습니다만, 나는 우리 자식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여, 실은 우리 자식들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성탄절
나가사끼 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언덕에 자몽이 풍요롭게 물들었을 때, 아이들은 이유도 없이 안절부절 하지 못한 모습을 합니다. 서리가 한 번 내리면, 자몽을 가지에서 비틀어 땁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머리보다 큰 황금 빛 과일을 안고 웃음 짓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자몽은 껍질이 두껍고 딱딱합니다. 껍질을 벗기며 야단법석입니다. 겨우 엷은 자색의 알맹이를 벗기어 내어, 몇 개의 조각으로 나누면, 훅 하고 코에 와 닿는 향기______그리운 향기. 아이들은 이 향기를 통해 곧 아름다운 것을 생각해 냅니다. 작년의 <마구간>의 풍경을_____. 그리고 “아기 예수님은 언제 오시지?________” 하고 묻는 것입니다.
이 맘 때가 되면, 밤하늘은 깊은 바다와 같이 말고, 아름다운 오리온성좌(星座)가 한층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것도 어린이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 별입니다. 그 별이 눈에 머무를 때에는,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날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별을 보면서, “아기 예수님은 얼마나 귀여운 얼굴로 오실까? ___________산타 마리아님은 얼마나 아름다우실까?__________”라고 합창하듯 말하고 있는 아이들은 그 옛날, 구세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이스라엘백성들과 흡사했습니다. 아이들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신 아기예수를 맞이하기 위해 글로리아 등 성가의 연습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비파꽃이 피어있는 양지바른 곳에 아이들 5,6명이 모여, 글로리아의 합창을 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으니, 나의 가슴 속에도 청아한 기쁨이 끌어 오릅니다. 그리고, 스스로 “ 고개를 들라. 그대들을 구원하실 일이 가까이 왔노라.”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12월 25일 오전 0시________한밤 중에 천주당에서 아름다운 종이 들려 왔습니다. 밤 미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세상 속에 무엇인가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이 미사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정면의 대제단은 각양각색의 꽃과 전등과 촛불에 파묻혀 사제는 금실 은실로 수를 놓은 가장 좋은 제복을 입고 많은 소년들이 시동(侍童)의 복장을 하고 시중을 들고, 오르겐과 성가대가 연주하는 멜로디는 공기를 신성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볼 눈, 들을 귀에 아름다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영혼을 친밀하게 인도하여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태어나신 깊은 애정, 자상함을 생각한다면 가슴 속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집니다. 꼭 천사의 무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천국의 화단에 끌어 올리어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옆 제단에는 ‘마구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동굴 속에서 양치기들이 예배하고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성 요셉 님과 성 마리아 님 등이 무릎을 꿇고 아기 예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강보에 싸여 여물 통 속에 볏짚 위에서 잠들고 계십니다. 마소가 머리를 내밀고 콧김으로 따뜻하게 해 줍니다.그 아기 예수님의 작은 얼굴은 빵긋하고 웃으며, 불빛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도저히 인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미사가 끝나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옆 재단 앞에 무릎을 꿇고, 이 마구간의 장식을 바라보며, 당시의 모습을 그리워합니다. 이 귀여운 얼굴을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일 년 중에 가장 기쁜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곳에 태어 나셨을까?_______아무리 최하의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가난한 간난아이는 있을 수 없다. 극도의 가난한, 최하의 생활 속에, 무엇보다 놀라운 깨끗함이 있습니다. 그 어떤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이 마구간을 본다면 자신이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들은 또한 성모 마리아님의 가슴 속을 생각해 봅니다. 이 아기예수가 구세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선전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가슴 속에 담아 두셨습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마구간’은 어린이들에게 있어서도, 어른에게 있어서도 아름다운 묵상의 샘인 것입니다.




순 수

개미에게 사탕을 주면 잽싸게 집에 가지고 간다.............그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는 일이다.
그 개미에게 작은 사카린 가루나 둘친(Dulzin: 인공조미료-역주) 가루를 주어도 물어 가지 않습니다. 둘친이나 사카린에는 양분이 없습니다. 그런 쓸모없는 것을 일부러 집에 가지고 가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양분이 없는 것을, 혀끝에 닿으면 단 맛이 느껴진다는 단지 그것 때문에, 비싼 가격에 사들여 , 홀짝홀짝 커피나 요리에 넣어 사용하는 인간들을 알 수가 없어........하고, 개미가 웃고 있을지 모릅니다.
먹으면 독이 되는 물건, 독은 되지 않지만, 별 필요가 없는 물건을 입에 넣으면,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바로 무언가 기분이 나쁜 것을 느껴 토해냅니다. 이것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본능이겠지요. 둘친이나 사카린이 들어 가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적은 양일지라도, 압니다. 감각이 둔한 , 무사태평한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마십니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 중에는, 그것이 신경 쓰여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그 편으로 아무리 사치스런 요리든 커피든, 두 번 다시 입에 댈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웃에 사는 동생의 아이들도, 젖 먹을 때부터 둘친이나 사카린을 입에 대지 않도록 키워왔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것으로 달게 한 과자는 한입 대어보고는 먹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금 맛 나는 것은 먹습니다. 그 동안 동생의 두 살배기 아이가 자기 엄마의 고향에 가서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시골의 마을이었으니까, 사탕도 많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모처럼 왔기 때문이라고 하여, 친척들의 집집에서는 큰돈을 내어 읍내의 상점에서 캔디와 초코렛을 사다 아이에게 주었다고 하는데, 이 아이는 한 입 베어 문 다음에 토해 내고는 다음에는 눈 한 번 주지 않다고 합니다. 모친은 친척들의 모처럼의 친절에 대해, 미안하여 어쩔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친척들은 “ 이 아이는 나가사키에서 맛있는 것만 먹고 자라, 이런 맛없는 과자는 입에 맞지 않을 거야...”라고들 했다고 합니다. 그 과자들은 셀로판으로 된 포장만 아름다운 일본제 모조품이었습니다. 그런 것보다는 곶감이나 구운 고구마를 이 아이는 더 좋아했다고 하니까, 나가사끼에서 별로 사치스럽게 자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리고 깨끗한 혀로 사카린 같은 대용품을 싫어했던 것입니다.
나는 무엇이든 대용품이나 혼합물을 싫어합니다. 옷은 순면이나 순모만 입고, 그것이 없으면 종이옷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종이도 구할 수 없으면, 차라리 맨몸으로 지내겠다는 생각입니다. 올 여름에는 바나나 잎으로 몸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글씨는 쓴 종이도 화지(和紙 -일본 종이)면 화지, 양지(洋紙-서양 종이)면 양지. 양지로 만든 긴 종이 정도는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색가루를 사용하여 아름답게 염색한 노랑무, 식용 색소를 사용한 생강 절임, 묽은 차, 우구이스 떡(鶯餠-팥소가 든 찰떡에 푸른 콩고물을 묻힌 일본 떡; 역주)-----등은 싫습니다.
내가 대용품을 싫어하는 기분은 동생의 아이가 사카린이 든 캔디를 토해낸 것보다는 복잡합니다. 아이들은 사카린이라는 물건을 토해 내는 것이지만, 어른인 나는 그뿐만 아니라, 그런 속임수를 쓴 사람의 마음을 싫어합니다. 아이들의 싫다는 반응은 본능적입니다. 나의 싫다는 반응은 본능 외에도 심리적인 요소가 더해져 있는 것입니다.
나처럼 대용품이나 속임수를 슨 물건을 싫어하는 사람은 최근 세간에 적지 않을 것입니다. 까다롭게 말하면서, 억지를 부려도 소용없어요. 아무리 뒷맛이 나쁘더라도 입에 넣을 때에 달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을까! _______너무 깊히 생각하지 말고, 그때 그 장소에서 맛있는 물건을 손에 넣으면 즐거운 인생이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술이 없어서, 쓴 칭키, 요도 칭키를 마시고, 가솔린을 섞은 연료를 마시며, 메칠 알콜 까지 마시는 사람도 있으니까 둘친 등은 비교할 것이 못됩니다.
내가 두 아이들을 데리고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후처를 맞으라고 권면을 받은 일이 몇 번인가 있었습니다. 홀아비 생활은 정말로 괴로운 일입니다. 여기에 도와주는 여자가 한 사람이 있다면________하고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후처를 맞게 되면 나의 가정은 일단 정돈될 것입니다. 어찌됐든 편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여성은 나의 처가 되는 것이니까, 내게 있어서는 대용품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라는 점에 있어서는 어떤 구애됨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장에서 부모를 올려다 볼 경우에는 전혀 달라집니다. 나에게 있어서 정식 처인 그 여성은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모친의 대용품입니다. 아무리 달콤하게 키워 준다 한들, 둘친입니다. 뒷맛이 나쁜 사카린입니다. 아무리 달콤하게 말한다 한들, 아무리 친 자식들에게보다 깊은 애정을 주고받으며 일생을 보냈다 한들, 본능적으로는 녹아들지 않은 것이 하나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후처를 맞아들일 마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남겨 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부친 한 사람과 모친 한 사람이라고 하는 순수한 추억만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습니다.”------하고 나는 거절하였습니다.
이 “순수한 부모에 대한 추억”라는 말을 특히 결혼 전의 젊은이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녀의 결합이 부부로서만 끝난다면 모르지만 곧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그 아이들도 자신들의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자기의 하여야 할 일을 되돌아 봐 주십시오. 몇 사람이든 상대를 바꾸어 사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할 경우, 얼마 안 있어 태어 날 아이는 순수한 부모에 대한 추억을 갖지 못 한 채, 일생 채워지지 않은 마음을 품고 지내게 될 것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수 천 만의 유산을 전해 준다고 해도, 허전한 일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컨대 쿠바의 각설탕이 아니더라도 흑설탕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 사람이야 말로 나의 좋은 반쪽이라고 정해 오직 하나의 사랑을 부어주지 않는다면 다른 이성(異性)의 상대가 달콤한 말로 낚으려 하다고 한들 듈친이나 사카린, 한 입 맛을 보지 않듯이 손을 내밀 일이 없을 것입니다.


가문과 가족

가문_________은, 지금까지 일본인이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가족을 괴롭히는 점도 있습니다. 가문을 위해서는 눈물을 삼키며 희생을 하라든가, 혈통이 끊기지 않도록 애인을 둔다든가 하는 일이 사회 속에서 보통 행해져 왔습니다. 즉 가문이라는 것이 주가 되고, 가문을 위해 가족이 있다고 일본인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잘 생각해 보면 혈통을 가지고 횡으로 연결되는 가문보다도, 현재의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이 가족 쪽이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혈통을 아름답게 자손에게 전해, 가문의 이름을 높혀 가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된 가문에서 연결되어, 지금의 세상에는 완전히 뒤떨어져 있다면, 나 때문에 가족이 일생 불행하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선조의 영혼을 오히려 슬프게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일가의 주인은 가족에게 올바른 행복을 가져다 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족에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가문의 이름으로 가족의 올바른 자유를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또한 부모들이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라고 하면서, 가정을 생각하지 않으며,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들 일본인들은 가문에 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그 아름다운 면을 넓힘과 동시에 나쁜 면을 고쳐야 합니다.
자주 듣는 말입니다만, 가톨릭이 올바른 종교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우리 가문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종교가 있어서 개종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름만의 가문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는 이 사람은, 정말로 안됐습니다.
나의 영혼은 나의 것이지, 가문의 것이 아닙니다.



지불
전기료는 벌써 내셨나요?------
이미 내셨군요. 매월 정확히 납부하지 않으면, 곧 바로 전력회사에서 종업원이 와서 전류를 끊어 버리고 마니까요. 정전은 곤란합니다. 깜깜한 것만큼 싫은 것은 없습니다. 밝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므로-----밝은 생활, 깜깜한 것이 없는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전등이 매일 밤 켜져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기료는 매일 꼭 지불하십시다.
정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패전 후에는 전력사정이 나빠, 자주 정전이 되었었지요. 그 당시의 일은 생각하는 것만이라도 마음이 어두어집니다. 그렇지만 달밤에는 그래도 낫습니다. 저녁식사 등은 달빛 아래서 먹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달님에게 감사합니다.”
그러자 제가 놀리는 말로,
“해와 달 중에, 어느 쪽이 더 고맙니?----”
하고 물었습니다.
우스운 옛날농담이 되었습니다, 이 질문은----.
거기에 대한 대답이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은 물론 달이어요.-------- 해는 밝은 대낮에 나오기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해요.----거기에 비하면, 달은 어두운 밤에 나와, 밝게 해주지 않아요?----”
이 대답이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곧 알 수 있습니다.
이해는 하겠습니다만, 매일 해의 고마움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별로 감사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해의 조명료를 지불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전기료는 매달 정확히 지불하면서, 그것보다 감사해야 할 태양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요?
원시민족 가운데에는 태양을 신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태양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은 없습니다.
요사이는 저급한 지식인도 , 태양은 하나의 천체라고 알고 있어, 태양으로부터 광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감사 같은 것은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태양에서 광선이 나온다.---그것은 그러합니다만,-----그 더 심오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태양에서 광선을 발산시킨다든가, 천체를 규칙 정연하게 돌린다든가, 그 원인이 없으면 안 되는 그 다음의 원인, 그리고 그 다음의 원인----등 점점 더 깊숙한 속을 생각해 본다면, 가장 근본이 되는 제 1 원인까지 도착해 갈 수 밖에 없겠지요.----
우리들은 거기에 하나님이라고 하는 살아계신 분이 계셔서, 천지만물 모든 것을 지배하고 계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태양을 만드시고, 또한 지구와의 거리를 정하시고, 태양에서 빛이 나오게 하여,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에, 정확히 적당할 정도의 빛과 열을 보내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에게 우리들은, 매일의 태양료를 지불하고 있는가요?
전기회사에 지불할 돈은 우리들이 노동 등의 희생에 의해 손에 넣은 것입니다. 전등보다도 밝고, 수수료도 지불하지 않는, 그리고 고장도 없는 태양의 빛을 매일 사용하게 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 사례로서 희생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들이 받은 은혜는 태양의 빛만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아주 아주 엄청난 것들입니다. 아마도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은혜가 인간이 알고 있는 은혜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사례는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사례를 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사례라 해서 몇 만 엥, 몇 백만 엥의 돈이 아닙니다.
---감사와 찬미와 희생과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