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자료

독일의 선교정책-세계선교대회에서 가진 에큐메니칼 경험들

작성자
기사연
작성일
2006-05-26 01:37
조회
1468
독일의 선교정책 - 세계선교대회에서 가진 에큐메니칼 경험들(2005,5,13)
(프리드리히 다겐하르트)

“동독에서 선교활동은 오늘날 교회일치적일(에큐메니칼) 수밖에 없다”고 막데부르크(Magdeburg)의 악셀 노악(Axel Noack) 감독은 인정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일정한 선지식 없이는 신앙고백들 간에 차이들에 대한 어떤 이해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교회를 마주하고 사는 세속인간에 대한 자리매김은 이전부터 종종 거론되었다: “당장 중지하라, 머리를 서로 반대로 두고 자들은.”

“선교란 다른 교회들을 위해 일할 새로운 동료가 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노악 감독은 자신의 주 지방 교회의 업무에 의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말은 항상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그는 심정을 털어 놓는다. “나는 나의 교회를 사랑하고 당연히 우리의 새로운 신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오이쿠메네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우리로 인해 기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에큐메니칼 정신의 분명한 경계를 인정한다. 즉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지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13차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한 25명의 여남들 중 한 사람인 악셀 노악 감독은 60개가 넘는 웤샾 가운데 하나인 “독일에서의 공동의 선교”에 대해 연설했다. 이 대회는 아테네에서 5월 9일에서 16일까지 개최되었다. 이 워크샾에서 105개 국가들과 대형 종교단체들에서 파송된 대표자들은 자신의 경험들을 교환했다. 그들은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협력들”을 위한 인식들과 비전을 공동으로 추구했다.

순전히 세계선교대회의 의미에서 볼 때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협력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여기서 세례에 대한 선교전략을 세우면서 각 지역의 공동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공동체들은 선교가 오로지 ‘밥상공동체’의 의식으로써 개인적이고 구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노악은 이렇게 강조했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많은 교회들이 한발 더 나아갔다. 그런 다음 ‘세례의식’이란 단 한 번의 행사가 아님을 알게 했다.

디트리히 베르너(Dietrich Werner)는 “선교사적인 직관으로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협력공동체”를 이해한다. 그는 함부르크의 브레클룸(Breklum) 부근의 교회공동체와 가까운 그리스도교의 삶의 공동체인 북 엘베(Elbe)강 근처의 선교센터에서 일하는 이번 세계대회의 대표자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그는 대영제국의 침례교 목사이며, 세계대회의장인 루트 바톰스(Ruth Bottoms) 여사를 지목한다. 그녀는 그 지방의 작은 에큐메니칼 공동체에서 살며 사목하고 있다. 그 공동체 내에는 중독증에 걸린 실향민 또는 노년에 휴식을 원하는 자들이 체류한다. 베르너에 따르면 함부르크에 있는 “빵과 장미”라는 봉사바닥공동체는 집 없는 난민을 위해서 거주를 제공한다.

헤른후트(Herrnhut) 형제단이 독일에서 선교를 위한 제3의 길을 개척했다. 형제단은 먼 거리에 두루 퍼진 나라들에 266년 간 선교사역을 해 온 이후로 중 유럽에 “첫 선교정착지”를 열었다. 아테네에 같은 대표자로 참석한 페기 미한(Peggy Mihan)은 목사 남편인 폴커 미한(Volker Mihan)과 더불어 부란덴부르크(Brandenburg) 주의 코트부스(Cottbus)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다. “정거장”이란 명칭은 청소년의 거리인 주요교통요지로 ‘열려 있는 집’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전 인구의 15%가 그리스도교 교회신자인 코트부스에서 페기와 폴커 미한은 첫 해를 보냈다. 이 해에 그들은 이 도시가 필요한 것을 위해서 사람들과 접촉하고 선전했다. 그들이 새로운 경쟁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후에 이웃한 개신교 교회와 가톨릭교회 그리고 자유교회와 협력하는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관심한다. 도시에는 이들을 위한 어떤 운동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다. 자유시간과 주말에 즐길 수 있는 창조적인 작업 또는 여학생을 위한 자전거달리기 등이 좋은 대안들이 있다. 등산객을 위한 성서모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제안들은 “부담이 적은” 것이지 “성서를 가지고 집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정거장”은 교회에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거리에서 고민들과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열려 있다.

이러한 일들이 독일에서 선교를 위한 몇 몇 사례들이다. 그래서 아테네에 세계선교대회가 개최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민교회의 복구”와 “뼈를 깎는 체제성찰”에 의해서 새겨진 상황 속에서 새로운 진전이 마련되었다. 디트리히 베르너는 입증한다.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교회들의 에큐메니칼 협력공동체가 구체화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수효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는 덧 붙여 말한다. “우리 독일에는 꾸준히 늘어나는 교회들의 자기 자신의 비전이 아직도 부족하다.”
(필자 프리드리히 다겐하르트는 신학자이면서 기자로서 현재 독일의 북 엘베 지역 개신교-루터교 연합 교회에 특수 강도사이며 제네바에 있는 WCC대변인 자격으로 있다.(www2.wcc-coe.org/pressreleasege.nsf/index) (옮긴이: 이 석규 연구원)